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참 진 맑을 아 Jul 22. 2020

뿌리 깊은 삶


어렸을 적 살던 동네는 여중과 남중으로 분리되어있는 학군이었다.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여중, 왼쪽으로 돌면 남중 그리고 그 맞은편에는 남고가 있는 길이 나의 등굣길이었다. 그러한 갈림길에서 붕어빵 가게가 중심을 지키고 있었다. 시험기간에 일찍 가서 공부를 하려고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서서 그 길을 지나도 언제나 아저씨는 그 자리에 나보다 먼저 계셨다. 아침부터 붕어빵 먹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을 정도의 생각은 머리가 다 큰 어른이 된 지금이 아니어도 그때도 할 수 있었다. 언젠가부터 우리들끼리는 아저씨를 '길거리 수호신'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수호신이 파는 붕어빵은 적지도 많지도 않은 3종류였다. 슈크림 맛, 피자맛, 단팥맛 이렇게 3가지였는데 나는 주로 단팥맛을 선호했다.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도 그 맛을 주로 먹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아저씨는 어느 날부터 신메뉴로 단팥을 활용한 풀빵도 팔기 시작했다. 3년 동안의 중학교 생활을 마친 나는 옆 동네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면서 더 이상 수호신 아저씨를 볼 일이 없었고 자연스레 친구들과 끊긴 연락으로 인해 그 추억을 회상할 일도 없었다.


그 날은 장마철도 아닌데 폭우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버스 정류장 지붕 아래에 몸을 피하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무심코 바라본 건너편에 익숙한 가판대가 있었다. 자세히 보니 붕어빵 아저씨였다. 지금의 학생들은 더 이상 붕어빵을 사 먹지 않아서 대학가 근처로 옮겨온 것 같아 보였고 그 상황이 한눈에 읽히는 사실이 서글펐다. 한편으로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이어가고 있는 아저씨가 멋져 보였고 강인해 보였다. 아저씨처럼 뚝심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그 순간부터 다짐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력과 운에 의해 우연이 연속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받는 스포트라이트에 가려진 꾸준한 노력으로 견고함을 다져서 단단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나는 더 주목하고 싶다. '우수한'이라는 수식어를 칭송하지 않고 '우직한'이라는 매력에 더 박수를 보낼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죽음이 남긴 심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