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별거 아니지만 기분을 좋게 하는 것들이 있다. 주방 세제 통에 리필 액이 알맞게 딱 들어갔을 때, 버스에서 하차 후 횡단보도 보행자 신호가 바로 바뀌었을 때와 같은 순간들 말이다. 나에게는 행주를 삶는 일이 그러하다.
일상 속에서 분노가 차오를 때 누군가에게 얘기를 털어놓아야만 심신의 안정을 되찾을 수 있다고만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내 악한 감정이 소멸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옮겨간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못한 채로 말이다. 관계의 텐션에 있어서 청자를 나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행주 삶기로 감정을 다스리기 시작했다. 펄펄 끓는 물에 과탄산소다 한 스푼을 넣으면 거짓말 같이 하얘지는 행주를 바라볼 때 묵혀둔 생각들도 함께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든다.
마음에 빛깔이 존재한다면 무슨 색일 것 같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지개처럼 화려한 색깔일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가지고 있는 색이 많으면 다른 색을 받아들일 수 없기에 언제나 깨끗하고 순백한 흰색이어야 한다고.
삶는 과정을 통해 삶을 되돌아보는 일은 계속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도 마음을 정화하는 일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