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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 진 맑을 아 Aug 04. 2020

섞여진 음계들

 


베란다 유리창을 거세게 두드릴 정도로 내리는 폭우 속 아침에 나는 불현듯 큰 결심을 한다. 악기를 연주하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나 갖고 있었는데 스산하게 내리는 빗소리에 이유 모를 용기를 얻었고 그렇게 나는 멜로디언을 구매했다. 


3남매 중 장녀로 태어나서 이것저것 안 해본 것 없이 커온 탓에 피아노 학원도 꽤 오래 다녔었고 지금 보면 경악스러운 하얀색 폴리 천에 큐빅 꽃들이 잔뜩 박힌 드레스를 입고 무대 위에 올라가서 연주를 하고 상을 받는 콩쿠르 대회에도 나갔었다. 나의 악기 경험 기행은 딱 거기까지였다. 건반 위에서 현란하게 움직이며 피아노를 연주하던 내 손은 어느덧 엄지만을 이용해 음원을 재생해서 듣는 행위로 간소화되었다.


6.5평 남짓한 내 거주 공간에 그랜드 피아노를 들여놓기에는 실질적 공간의 여유는 물론 마음의 여유, 경제적 여유도 없었다. 아쉬움은 넣어두고 37개의 건반을 가진 멜로디언을 선택했다. 오선지의 악보 속의 음표들을 다시 마주했고 내 손에서 탄생한 그 리듬들이 나쁘지가 않았다. 우연히 접속한 웹사이트에서 가수 권진아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진심을 담은 노래라는 헤드 카피 하단에 "내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진심이다."라는 짧은 문장이 쓰여 있었다. 이미 유명한 노래지만 내 정서로 재해석하고 악보를 보느라 떠듬떠듬 천천히 누르는 건반들로 인해 탄생된 음계들은 새로웠고 편안했으며 그것이 바로 진심이 담긴 음악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음악은 정말 멋진 매개체이다. 재생되는 시간은 양치하는 시간과 흡사한 3분인데 그때의 분위기와, 감싸 돌던 공기 및 함께 했던 사람들까지 생생하게 기억시킨다. 오랜 시간 나를 지켜주는 음악을 더 즐기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게 요즘의 나의 기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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