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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즈 May 03. 2019

글_02

영수

나는 출근 전 인스타그램으로 내가 사는 동네에 그녀가 왔다는 소식을 보았다. 이미 그녀는 전부터 공지를 여러 번 했지만 그게 오늘일 줄은 몰랐다. 반가운 마음에 충동적으로 그녀를 보러 가도 되겠냐고 물었다. 와도 좋다는 그녀의 말에 서둘러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이 목적지에 다다르는 동안 속으로 수없이 ‘그냥 여기서 내릴까.’ 하며 갈등했다. 마음을 헤집는 고민만큼 많은 사람 틈에서 하차했다.

혼자서는 걸어본 적이 없는 길을 휴대폰 내비게이션에 의지해서 바쁜 걸음으로 걸어갔다. 갑작스러운 기회에 설레지만 떨린 마음으로 그녀가 불러준 장소에 도착해 톡을 보냈다. “어디야?” 옆으로 사람 네다섯 명이 지나간 후에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근처 파스타 집인데 금방 그 앞 카페로 갈 거야.”

나는 다시 한번 인터넷을 켜고 카페를 검색했고 가장 가까운 곳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까지도 머릿속엔 ‘이대로 돌아갈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한편으로는 ‘오면서 땀 많이 흘렸는데, 나 몰골은 괜찮은 건가.’ 하고 긴장된 마음으로 문을 열고 두리번거리며 그녀를 찾았으나 어쩐 일인지 보이지 않았다. 사실 태은과는 오늘이 첫 만남인 셈이다. 인스타그램을 둘러보다 그녀가 올린 게시물이 마음에 들어 팔로우하고 댓글을 남기다 친해진 게 계기였다. 우리는 ‘좋아요’와 댓글에서 점차 개인적인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로 발전했다. 그녀는 잘 알지 못하는 나의 하루를 궁금해했고 나 또한 그녀의 고민과 걱정을 함께 나누는 것이 좋았다. 목소리는 여러 번 들었지만, 현실에서 눈을 마주 보고 이야기한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혹여나 그녀가 내 모습을 보고 마음에 들지 않을까 걱정했고 또 나도 그녀를 실제로 만나고 실망하게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초조한 마음을 뒤로하고 주문한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단숨에 들이켜고 나자 긴장된 마음은 카페인으로 더 쿵쿵 뛰었다. 계속 창밖을 바라보며 그녀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자 마음속에서는 SNS 뒤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다시 피어났다.

그녀에게 다시 톡을 보내 아무래도 내가 지점을 착각한 것 같다고 했더니 그녀는 자신이 있는 카페의 외관 사진을 보내왔다. 길만 건너면 되는 거리였음에도 그는 횡단보도의 신호가 억겁의 시간 같았고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나에게로 주목된 듯이 시선 둘 곳을 찾질 못했다. 왠지 어디선가 그녀가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았고 그 거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그녀 같이 느껴져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드디어 신호가 바뀌고 한 블록만 더 가면 그녀가 있는 카페가 있다. 창 너머로 태은이 보이는지 두리번거렸지만 밖에서는 안이 투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정말 카페 안에 있는 것인지 나만 현실에 나와 있고 그녀는 핸드폰 액정 속에 그대로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워지고 있었다. 심호흡을 두어 번 하고 도착했다는 연락을 하자 출입문 쪽으로 다가오는 그녀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눈빛으로 서로를 확인하고 난 어색한 미소를 띠며 그녀를 맞이했다. 그녀가 그곳에 있었으니 맞이한 쪽은 태은이라고 해야 하겠지만 이 순간을 상상하고 정말로 만나고 싶어 기다린 것은 나였는지도 모르겠다. “안녕?” 하며 그녀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안녕, 오랜만…. 아 아니, 만나서 반가워” 결국 바보같이 실수하고야 말았다. 그녀는 그러는 내가 귀여웠던 건지 소리 내서 웃으며 “그래, 오랜만이지?”라고 재치 있게 받아쳤다. 그래서 그녀가 좋았다. 늘 활기가 넘치고 유머로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해 주었다. 태은과 이야기하면 재미있어서 좋았다.

사실 만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생각도 않고, 그리워만 하던 그녀가 무작정 보고 싶어서 한달음에 왔음에도 막상 얼굴을 보니 무척이나 보고 싶었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악수도 아닌 손끝만 잠시 잡았다 놓는 것밖에 하지 못하였다. 나는 출근 때문에 그렇게 돌아왔지만 짧은 만남의 여운은 그녀를 다시 만나고 싶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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