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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글로제이 Sep 09. 2018

결속 감자전,

틀린 게 아니고 다른 거야.

    결속 감자전의 날이 밝았습니다. 결속 감자전이 뭐냐고요? 원문 그대로 얘기하면 Solidarity Mashed Totato입니다. Solidarity가 결속, 연대란 의미를 가지는데요. 가족, 친지들이 연대의 시간을 가지는 의미로 같이 음식을 만들고 돈을 내고 그 음식을 사 먹으면서 모아진 돈으로 도움이 필요한 가족을 돕는 행사입니다. 오늘은 아프신 짝꿍의 할머니께 필요한 약을 사는데 필요한 돈을 모으기 위해서 가족들이 모이기로 했습니다. 


    짝꿍의 어머니가 온 가족이 모여서 단합의 시간도 가질 겸 좋은 취지로 자원해서 음식을 준비하시기로 했습니다. 오늘의 메뉴는 감자전과 샐러드 그리고 고기 조금. 여기서 말하는 감자전은 으깬 감자에 간을 하고 동그랑땡처럼 만들어서 부친 에콰도르 음식을 말해요. 에콰도르는 감자, 유카, 플랜테인이 많이 나서 가정요리에 단골로 등장하는 재료입니다. 어머니가 벌써 어제저녁부터 감자전과 고기를 준비하셔서 오늘(일요일) 우리는 가서 샐러드를 만들고 감자전 부치는 걸 도와드리기로 했습니다. Solidarity란 단어가 저에겐 생소하긴 하지만 에콰도르에서는 이런 가족행사들을 많이 진행한다고 해요. 


    아침 일찍 시장에 가서 샐러드용 양상추와 비트 그리고 부침용 야채 기름을 샀습니다. 그리고 짝꿍의 조부모님 댁으로 향했죠. 약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이 마을은 광고폴로(Guangopolo)라는 곳인데, 키토보다 따뜻하고 조용한 동네입니다. 짝꿍의 외가 친지들은 모두 이 마을 출신입니다. 가장 먼저 도착한 우리는 마당과 거실을 청소했습니다. 워낙 시골이고 조부모님 이분이 사시는 집이라서 오래된 시골 냄새가 폴폴 납니다. 뒷마당에는 20마리도 넘는 닭과 병아리들이 뛰어다니고 고양이 한 마리, 개도 두 마리나 있습니다. 청소가 끝날 즈음 감자전이 도착하고 하나 둘 가족들이 도착했습니다. 원래 단합/결속의 날은 다 같이 음식을 만들고 나눠먹는 게 정석이라고 하는데, 다들 바빠서 어머니가 혼자 음식을 준비하셨다고 하네요. 40인분은 되어 보이는 감자와 고기를 보니 고생하셨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간 죄송한 마음이 드는 게 아닙니다. 미리 알려주셨으면 감자전 만들기에 동참했을 텐데 하는 뒤늦은 후회도 밀려오고요. 하지만 이렇게 된 거 감자 부침이라도 열심히 해보렵니다. 


    한 시간쯤 지나자 친척들이 하나 둘 방문합니다. 아마 미리 연락을 해 두셨던 거겠죠? 접시에 감자전 3개 고기 몇 덩어리 그리고 샐러드를 넉넉히 담아서 한 사람당 한 접시씩 배당합니다. 한 접시당 가격은 2달러입니다. 제가 생각할 땐 너무 저렴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에콰도르에서는 적당한 가격이라고 하네요. 가족들은 한 접시씩 받아 들고 거실로 가서 얘기를 나누면서 음식을 먹습니다. 시어머니는 계속 부엌에서 거의 혼자 도맡아서 요리를 하시네요. 저는 샐러드를 만들고 고기를 볶는 일을 맡았습니다. 저희 부부도 한 접시씩 사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분위기가 묘하게 돌아갑니다. 시어머니 심기가 불편해 보이기도 하고, 친척들이 부엌에 와서 머라 머라 하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스페인어를 알아듣지 못하니 답답은 한데, 짝꿍도 여기저기 다니며 심부름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보기도 그렇네요. 거실에서는 또다시 술판이 벌어졌습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촌이 맥주를 잔뜩 사 와서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돌려가며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짝꿍은 그다지 술을 즐기는 편도 아니고, 집에 갈 때 운전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사양을 했습니다. 그런데 또 이 술주정꾼 사촌이 우리 착한 짝꿍한테 술 좀 마시고 운전하는 게 뭐 대수냐며 결혼하고 겁쟁이가 되었다고 한 소리했나 봅니다. 짝꿍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네요. 에콰도르에서는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해도 걸리지만 않으면 자랑거리가 되는 곳입니다. 한국 문화에 익숙한 저와 짝꿍이 술을 거부하면 억지로 권하거나 종종 기분 상하는 얘기를 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술을 안 마시거나 고기를 잘 안 먹는 걸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나마 짝꿍의 어머니와 페드로 삼촌 정도만 이해를 해주고, 나머지는 짝꿍이 결혼하고 이상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오늘도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짝꿍이 음식을 다 먹기도 전에 마당으로 나와서 피곤한 표정으로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렇게 묻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나와서 피곤하지 않아? 집에 갈래?" 저는 바로 알아차렸죠. 아...... 짝꿍이 집에 가고 싶구나. 사실 저도 정확히 이해는 못하지만 오늘따라 가족들 분위기가 무겁고 불편하게 느껴졌던 차였어서 생각도 안 하고 집에 가자고 대답을 했습니다. 대부분 가족들은 다 식사를 마쳐갈 무렵이라 친척 친지들에게 인사를 하고 먼저 조부모님 댁을 나섰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짝꿍은 한숨을 푹 내쉬며 한동안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에콰도르가 후진국인 이유는 경제가 낙후되었기 때문만은 아닌 거 같아. 사람들 사고가 낙후되었어. 왠지 이 나라는 앞으로도 발전하려면 먼길을 가야 할 것 같아 맘이 아파."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에 무슨 일이 있었냐고 재차 물었더니 자초지종을 얘기해 주었습니다. 가족들이 모여서 음식을 만들고 돈을 모아서 힘든 가족을 돕는 취지로 결속의 날을 가지는 건데, 일은 어머니 혼자 다 하시고, 정작 친지들은 음식을 먹으러 와서 음식이 짜고 별로 맛이 없다느니, 밖에 나가면 더 싼값에 더 맛있는 음식을 판다느니 하면서 불평을 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아무도 남은 음식을 사 가려고 하지 않아서 감자도 고기도 많이 남았다고 하네요. 그래서 어머니가 기분이 많이 상하셨답니다. 그리고 예상했던 것처럼 술꾼 사촌이 짝꿍에서 또 술도 안 마시고 고기도 안 먹는다며 pussy라면서 기분 상하는 소리를 했답니다. 온 가족 앞에서. 단합도 안되고, 화합도 안되고,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 대한 존중도 없으니 발전이 더딘 게 아니겠냐면서 희망이 없는 것 같아서 답답하답니다. 


    가끔 짝꿍이 에콰도르는 발전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얘기를 하곤 했는데 이렇게 한숨을 푹 쉬며 어두운 표정으로 얘기하는 모습을 보니 저도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제 걱정은 에콰도르의 미래나 발전에 대해서가 아니라 짝꿍에 대해서입니다. 아마도 짝꿍은 한국의 편리하고 신속한 시스템만 경험하고 진짜 그 사회의 문제점은 미처 경험하지 못하고 에콰도르에 온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국이 안전하고 선진적인, 이상적인 사회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사실 한국에서 진짜 몸을 부대끼며 사는 사람들은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부르고 희망이 없는 사회라며 개선을 촉구하는데 말입니다. 제가 진짜 안타까운 것은 어느 국가, 어느 사회나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가 있고 장단점이 있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해야 하는데 짝꿍이 국가나 문화의 차이를 좋고 나쁨으로 구분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해외 어딜 나가도 한국처럼 어딜 가나 친절하고 신속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국만큼 안전한 나라도 없지요. 하지만 그만큼 한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최고의 서비스, 최고의 퀄리티, 일등만이 살아남는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미 높지만 계속 더 높아지고 있는 물가로 서민들은 더 이상 더 나은 미래를 꿈꾸지 않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죠. 이에 반해 에콰도르는 한국 같은 서비스도, 체계적인 시스템도 없습니다. 오히려 물가에 비해서 공산품은 비쌉니다. 자체 생산되는 제품이 별로 없고 다 수입에 의존해야 하니 좋은 제품들은 너무 비싸고 그렇지 않은 제품들은 품질이 너무 떨어집니다. 그 대신 국산 식료품은 아주 저렴합니다. 사치하지 않으면 한 달 50만 원 정도면 살 수 있습니다. 조금 부지런을 떨면 여러 가지 기회들이 무궁무진합니다. 하지만 여기는 문화가 한국처럼 더 비싼 집에서 더 좋은 차를 타야 잘 산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비싼 차 좋은 집에 살면 부러워하지만 그렇게 살지 못한다고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적당히 벌어서 편안히 살면 됐다고 생각합니다. 문화가 다른 거죠. 한국에서 치열하게 살다 에콰도르에 오니 답답한 것이 아주 많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편합니다. 


    그런데 짝꿍은 이미 좋은 사회와 나쁜 사회에 대한 기준이 생겼습니다.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게 된 거죠. 경제에만 초점을 맞추면 서열을 나눌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돈만 가지고 살진 않잖아요. 우리는 경제만 가지고 사는 게 아니고 문화와 관계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한국사회가 급격하게 발전하면서 많은 부작용이 생겼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 부작용을 "포기 세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국만 그런가요? 가깝게는 일본의 젊은이들도 히키코모리 세대를 양산했고 중국은 심각한 환경 공해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오는 부작용과 문화 정체성의 상실은 이미 전 세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사회에서 살아가든 행복은 나의 책임입니다. 내가 속해 있는 곳에서 행복하지 않으면 그 어디에 가서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완벽한 사회는 없으니까요. 물론 행복의 기준은 스스로 만들어가야겠죠. 그렇다고 그냥 체념하고 사회의 불합리를 불감하고 포기하란 의미는 아닙니다. 결국 어떤 사회라도 나의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행복지수가 높은 유럽의 선진국에 살면서도 불행할 수 있고, 아무리 못살고 경제적으로 낙후된 나라에 살아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단지 짝꿍이 경제와 생산성의 기준에서만 행복지수를 판단하지 않기를 바랄 뿐인 거죠. 짝꿍의 행복은 제 행복이기도 하니까요. 


    가족 친지들이 연합하는 의미의 결속의 날에 저는 또 한 번 행복의 기준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요새 한국이 실업률과 물가가 계속 고공 행진하고 있어서 다들 살기가 힘들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있는 사람들과 없는 사람들의 차이가 너무 커서 상대적 박탈감이 너무 크다고요. 저는 에콰도르에서 하루하루 살고 있는 평범한 아줌마입니다. 짝꿍이 정부 기관에서 일을 하지만 정부가 돈이 없어서 내년에 또 한 번 크게 인원 삭감이 있을 예정이랍니다.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죠. 그래서 빨리 언어를 배워서 한국 음식 장사라도 시작해볼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도 한때는 왜 나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지 못했나 한탄하며 나의 감정과 시간을 낭비했던 때가 있습니다. 그땐 마음도 표정도 항상 우울하고 불만이 가득했죠. 지금은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니 오늘 하루를 알차고 즐겁게 지내는 것만 생각하고 오늘 하루에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앞날은 아무도 모르니까요. 여유가 좀 있어서 베풀면서 살 수 있으면 더 좋겠다는 마음은 항상 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만큼만 하려고 합니다. 


    오늘 저녁은 짝꿍과 이런 얘기를 좀 해야겠습니다. 우리에겐 불평을 하고 들어줄 수 있는 가족이 있고, 오늘 하루를 살아낼 수 있는 힘이 있고, 외로움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습니다. 오늘 하루 내게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얼마나 많은지, 감사할 거리가 얼마나 많은지, 행복이 꼭 물질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나누고 싶습니다. 한국의 치열하고 빠듯한 삶에 지쳐있는 분들, 그런 한국에서 태어난 걸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있답니다. 우리가 받은 가장 위대한 유산은 귀족 사회에 편입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진정한 인격체로 사랑과 행복의 가치를 알아가는 게 아닐까요. 고전 명작이 괜히 고전이 아닌 거죠. 오늘 하루 살아있어서, 이런 생각을 나눌 수 있어서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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