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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글로제이 Aug 06. 2021

확진

코로나 시리즈 1

드디어 한국이다! 를 외친 지 채 하루가 되지 않아 다시 집을 떠났다.

생활치료센터(이하 생치)라고 불렀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자가 면역을 증대시켜 치유하는 시스템.

엠뷸런스를 타고 지정된 생치로 이동했다. 한참을 기다렸다 개별 서류와 마스크가 든 봉투를 받고 엑스레이를 찍고 나서야 배정된 숙소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약 4평 남짓한 공간에 침대가 두 개. 두 사람이 함께 지내야 한다는데 둘 다 양성이 나온 상태에서 잠잘 때를 제외하고 마스크를 쓰고 지내야 하는 환경에 과연 생활치료가 될까 싶다. 하지만 난 양성이니까 참아야지.

한국에 올 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경유하면서 우리 냥이들 때문에 구경도 못하고 콕 박혀 있었는데 확진이라니... 나와 같이 온 동행들 모두 음성인데 나만 양성이라니... 출국 전 받은 PCR 검사도 음성이었는데...!! 를 속으로 외치며 도대체 어디서 감염이 된 거야를 수백, 수만 번 속으로 읊조려 보았지만 무슨 소용이 있나!

난 긍정적이니까 또 금방 적응하겠지.

들어올 때 가지고 온 모든 옷과 물건은 퇴실 시 모두 소각 처리된다고 했다. 무슨 에볼라인가 싶은데... 또 나 때문에 누군가 감염되면 안 되니까 시키면 시키는 데로 해야지. 퇴실 시 사용할 옷은 봉투로 3겹 포장해서 제출했다. 관리실에서 고이 보관했다 퇴실 시 다시 준다고 한다. 신발도 가장 저렴한 쪼리에 버릴까 말까 했던 누가 줬는지도 모를 냉장고 바지, 엄마 티셔츠를 입고 추리하게 나왔는데 나의 룸메는 나름 깔끔한 원피스를 입고 오셨다. 조금 부끄럽구먼... 하지만, 이미 한국에 나오기 전에 많은 옷을 주고, 버리고 나온 터라 더 이상 버릴 옷도, 심지어 입을 옷도 없다는 현실에 난 수긍할 수밖에...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확진이 될 거라 예상하고 나오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우리가 묶을 309호 실 앞에는 두 개의 파란색 큰 봉투와 하얀색 의료폐기물 통 두 개가 놓여있었다. 봉투에는 각자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었다. 아마 개인 생활 용품 이리라.

방에 들어오자마자 봉투를 펼쳤다. 침대보, 한 벌의 이불, 깨끗한 수건, 샤워 및 세안 도구, 휴지 등이 들어 있었다. 처음 받은 서류 봉투에 들어있던 설명서에 따르면 우리가 사용한 모든 용품들은 사용 후 소각된다고...

이 침대보, 이불, 수건 다 너무 아깝다. 꼭 소각을 해야 하나. 서울 구치소(?)에서는 재활용한다던데 여긴 아닌가 보다. 그래도 아까운 건 아까운 거.


후덥지근한 날씨에 바로 에어컨을 켰다. 온도는 25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도록 고정되어 있었지만, 방이 워낙 작아서인지 금방 시원해졌다. 아무래도 우리는 지금 바이러스 그 자체니까 이 방을 치우는 것도 꺼려지겠지... 생각해도 방 청결 상태는 너무 아니었다. 여기저기 여자 머리카락이 굴러다니고 책상이나 선반 위에는 먼지인지 뭔지 모를 가루들이 사정없이 묻어 나왔다. 바로 소독 티슈로 여기저기 닦아 보았으나 차마 남이 흘리고 간 그것도 분명 확진자였을 사람의 머리카락을 하나하나 치우자니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뭘까 이 억울함은. 그다지 큰 잘못을 한 거 같지 않은데 누군가의 고자질로 일이 커지고 나 혼자 독박을 쓴 거 같은 묘한 기분.


같이 들어온 룸메는 말이 별로 없으시다. 우리 둘 다 따로 가족들과 전화를 하거나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인터넷으로 본 방에는 티브이도 있고 하던데 여긴 없다. 음료수는 2리터짜리 생수 6통. 두 사람이니 삼일이면 사라지겠지?


식사 시간이 되자 안내방송이 나왔다. 배식 담당자가 배식을 진행할 예정이니 절. 대. 문을 열지 말라는 방송이 엄청난 크기의 볼륨으로 흘러나왔다. 그것도 약 8가지 다른 언어로.... 그리고 약 20분 후 이제 문을 열고 식사를 가지고 들어가라는 방송이 나왔다. 다시 한번 8가지 다른 언어로. 하루에 약 4~5번 정도 이 방송을 들어야 하는데 작은 방에서 하루 한 시간은 이 방송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조금 답답한 기분. 방송을 녹음해서 언어 공부라도 해 봐야 하나. 이건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난감하다.


저녁식사로 나온 도시락은 나쁘지 않았다. 정말 나쁘지 않은 정도. 오리훈제 볶음과 골뱅이 무침, 정체를 알 수 없는 돈가스 같은 비주얼의 튀김 등이 반찬으로 나왔는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입맛이 돌질 않았다. 그래도 난 잘 먹으니까 건강히 나가는 것을 임무라고 받은 듯 결연히 밥을 입에 넣었다.


아직 시차 적응이 안돼서 밥을 먹고 나니 급격히 졸음이 쏟아졌다. 낮에는 그나마 이동하고 하느라 정신을 차리고 있었는데 인터넷도 잘 안되고, 식사는 했고, 할 수 있는 일은 침대 위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거라서 참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헉 하는 기분과 함께 눈을 떠보니 벌써 깜깜한 밤이 되었다. 저녁 9시. 정신 못 차리고 다시 잠들까 봐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속옷을 빨았다. 사실 동거인이 있어 빨래를 널어놓는 것이 조금 부끄럽긴 했지만, 그래도 퇴소 시 다 소각당할 생각에 속옷을 몇 개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에 매일 깨끗한 속옷을 입으려면 어쩔 수 없지.


이 작은 공간에서 내일은 무슨 일 무슨 생각을 하게 될지 흥미가 진진하네.

일을 하려고 영화용으로 쓰던 갤럭시패드를 들고 왔는데 그마저도 인터넷이 원활하지 않고 타자 치는 게 불편해서 앞으로 속을 좀 썩이지 싶다. 그래도 나는 적응하겠지. 오늘은 첫날이니 일찍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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