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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글로제이 Jul 11. 2018

에콰줌마의 행복찾기

첫 캠핑의 맛 (1)

지난 주말에는 에콰도르에 도착하고 처음으로 캠핑에 도전했습니다. 사실 제 짝꿍이 에콰도르에 가면 매주 주말마다 산에도 가고 바다에도 가기로 약속을 했었거든요. 그런 게 그게 맘처럼 되나요. 도착하고 나서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 친척들 인사 다니고, 살 집 구하러 다니고, 이것 저것 할 일이 많다 보니 두 주가 훌쩍 지나버렸습니다. 사실 아직도 주말에 해야 할 일이 잔뜩 쌓였있습니다. 아직까지 짝꿍 없이 혼자 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제가 하고 싶은 일이나 사야 할 것이 있어도 주말까지 기다려야 해서 더 그럴 수도 있지요. 


그래서 아직 캠핑을 가긴 좀 무리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캠핑 도구라곤 2인용 텐트 하나가 딸랑이고 저의 상식에서 필요한 코펠이나 침낭 등등 필요한 게 너무 많은데 아무것도 없이 그냥 가는 건 너무 멘땅에 헤딩인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짝꿍에게 '딸랑 텐트 하나 있는데 이거 가지고 캠핑 가는 건 너무 무모한 도전 아니야? 가서 고생만 할게 뻔해.'라고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슈퍼마켓에서 장 다 보고 나서 계산하려는데 어린 아들이 사탕을 하나 들고 너무도 아련하고 간절하게 사탕을 갈구할 때의 그 눈빛을 기억하시나요? 짝꿍이 바로 그런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네요. 캠핑 가자고.


그래서 무작정 출발했습니다. 산이니까 춥겠지 싶어서 두꺼운 잠바도 두 개 챙기고요. 집에 있는 과일은 종류별로 하나씩 다 가방에 넣고, 한국에서 사 온 이쁜 돗자리도 챙깁니다. 물론 신발도 더러워져도 되는 운동화로 갈아 신었지요. 멀 더 챙겨야 할지 몰라서 고민하고 있는데, 시어머님이 행운을 빈다면서 집에서 쓰시던 작은 냄비와 수저 세트 두 개, 꿀 한병, 간이용 담요 세 개, 어디선가 굴러다니던 1인용 스펀지 매트리스 등등을 트렁크에 넣어주셨습니다. 가는 길에 불 피울 숯불이랑 침낭을 하나 사기로 했습니다. 얼어 죽으면 안 되잖아요. 


집 근처에 있는 Santa Clara라는 마트에 들러서 캔참치와 식빵 그리고 겨자 소스를 하나 샀습니다. 그리고 Kywi라는 마트에서는 불에 쓸 숯과 성냥 한 갚, 숯 불 스타터를 샀습니다. 이인용 침낭을 사려고 돌아봤는데 이인용은 있지도 않고, 일인용 침낭 가격도 너무 천차만별이고 괜히 안 좋은 것 샀다가 나중에 후회할까 싶어서 다음에 온라인으로 구매하기로 했습니다. 우린 담요가 세 개나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하고요. 아, 이쯤에서 불길한 징조를 연상시키는 배경음악이 나오면 딱 좋겠네요. 딱 그랬습니다. 우리의 착각은 여기서 시작되었죠. 담요 세장이면 충분할꺼야아아아아아아아.


어쨌든 이렇게 나름 무장을 하고 본격적으로 달립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Laguna de Mojanda라는 곳입니다. 한국어로 하면 '모한다 라군'이라고 부를 수 있겠네요. 한국에 백두산 천지처럼 화산 폭발로 인해 생긴 화구호인에 우리가 사는 키토에서 불과 2시간도 안 되는 거리에 있습니다. 짝꿍이 그렇게 자랑하던 오프로드 애마를 타고서. 처음 짝꿍의 차를 봤을 땐 왠 90년대 초반 코란도 같이 생긴 차를 타고 다닌다고 막 놀렸거든요. 승차감도 별로이고 기름도 많이 먹고 결정적으로 너무 못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 날 비로소 애마의 빛을 바라더라고요. 에콰도르는 한국처럼 잘 닦여있는 산이 많지 않습니다. 험한 산길을 가려면 산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는 오프로드 택시를 타거나 직접 오프로드 차를 몰고 가야 합니다. 일반 승용차는 중간에 물 웅덩이나 구덩이나 빠져서 나오지 못하거나 차체가 망가지는 경우가 많아서 오프로드 차가 필수라고 하네요. 


그렇게 자식처럼 사랑하던 애마를 타고 슝슝 달리니 금세 도심을 벗어나 그림같이 아름다운 풍광이 우리를 맞이 합니다. 에콰도르에 와서 매일 같이 나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그 파란 하늘과 구름들.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바로 동쪽은 해가 반짝 서쪽은 태풍이 불 것 같은 먹구름들. '에콰도르 날씨는 여자의 맘 같다'라는 말이 있다는데, 제 마음이 그렇게 여기 반짝 저기 먹굴 그런 걸까요? 왜 하필 여자 맘이야 했지만, 왠지 그럴 만도 하네, 싶은 생각도 들기도 했지요. 산과 하늘과 구름을 따라서 상상의 나래를 마구 펼치고 있는데 짝꿍이 옆구리를 쿡 찌릅니다. 


"Te amo(사랑해)"


헛. 이렇게 무방비 상태에서 사랑 고백이라니! 너무 로맨틱한 거 아니야? 그러기 있기 없기?라고는 하지만 알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뜬금없는 사랑 고백이 우리 커플의 주특기입니다. 이젠 서로 경쟁하듯이 무방비 상태를 노리기도 하죠. 오늘은 제가 한 방 먹었네요. 항상 제가 선방을 하는데 오늘을 정말 예상치도 못한 타이밍입니다. 점점 발전하고 있는 짝꿍이 자랑스럽네요. 


모한다 근처에 Cayambe(카얌배)라는 도시가 있는데 이 곳은 Bizcocho(비스코초)라는 과자가 유명합니다. 버터의 풍미가 가득하고 한 입 물면 바삭 부서지는 손가락 두 개 정도 크기입니다. 화덕에서 바로 꺼낸 따끈한 버터 비스킷을 모차렐라 치즈와 함께 먹으면 맛이 그만입니다. 살찌겠네...... 싶어서 망설이다가도 3~4개를 금방 해치웁니다. 제 입맛에는 조금 느끼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갓 구워 나온 버터의 향이 너무 고소해서 자꾸 손이 갑니다. 짝꿍이 거의 다 와가는데 비스코초 한 봉지 사갈까 하고 물어봅니다. 그런 건 묻지 말고 그냥 하는 거라며 응답 대신 "Te amo(사랑해)"로 답합니다. 짝꿍도 장난기 어린 눈빛의 윙크로 화답합니다. 이심전심.


집에 가는 길에 먹은 비스코초

비스코초 한 봉지를 들고 입산합니다. 울퉁불퉁한 산길에 온몸이 좌로 우로 들썩들썩 뒤뚱뒤뚱 거리지만 씩씩하게도 잘 올라가네요. 올라가는 길에 말 농장도 보이고 소 농장도 보입니다. 넓은 들판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고 있는 녀석들의 모습을 보니 갑자기 배가 고파 집니다. 왜냐고는 묻지 마세요. 전 육식을 그다지 선호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건 꼭 믿어 주세요. 에콰도르에서 비건을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육식을 주로 하는 식문화로 완전 비건은 힘이 들어서 Reducetarian을 표방하고 있답니다. 최대한 육식을 줄이는 식단을 추구하는 거죠. 암튼. 배가 고파옵니다. 빨리 도착해서 라면 끓여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이쯤 뒤뚱 댔으면 도착할 만도 한데...... 대체 호수는 언제 나오는 거야. 오는 길은 쨍했지만 입산 후로는 계속 먹구름 잔치입니다. 아까 나왔던 그 BGM이 다시 흘러나옵니다. 긴장감 고조의 역할이죠.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그쳤다. 해가 났다 들어갔다를 몇 번을 반복했을까. 그 상황에서 고픈 배를 움켜주고 꼬딱꼬딱 졸듯 말 듯 병든 닭처럼 고개가 거의 꼬꾸라져 갈 무렵!


뚝. 자동차가 섰습니다. 


'머야. 고장 났나. 이 고물차 가지고 여기 오는 게 아니었는데... 망했네 망했어. 이거 어떻게 집에 가지. 견인차가 여기까지 올 수는 있을까? 여기 도대체 어디야. 큰일 났다. 구조 기다리다가 산에서 얼어 죽는 건 아니겠지? 기름은 충분히 넣었나? 밤새 시동 켜고 있으면 금세 기름 다 떨어질 텐데......' 라며 그 백만분의 일초의 순간에 별의별 생각이 다 스쳐 지나갑니다. 이제 어떡하면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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