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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글로제이 Jul 14. 2018

에콰줌마의 행복찾기

첫 캠핑의 맛 (2)

'이런, 큰일 났구나. 차가 고장 났나 봐. 어쩌지?'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갈 때 나에게 들리는 짝꿍의 한마디.


"앞에 봐봐"  


그리고 보인 눈 앞의 풍경.

뷰포인트에서 내려다 보이는 모한다 라군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차는 덜컹거리고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할 즘 도착한 정상의 풍경은 차 안에서의 피로를 싹 풀어주는 경이 그 자체. 마치 베일로 얼굴을 가린 서양의 정숙한 숙녀처럼 살짝 내려앉은 안개와 구름의 절묘한 조화랄까. '아...... 이걸 보여 주려고 그렇게 꼭꼭 숨어있었던 거야?' 시크한 녀석. 


안개와 비가 만들어낸 습하지만 풀 내음이 섞인 묘한 그 공기가 폐를 적시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차멀미가 싹 사라집니다. 사진으로 그 향이 전달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눈 앞의 펼쳐진 자연의 예술 작품 앞에서 괜스레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열심히 사진을 찍고 캠핑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생각보다 캠핑장이 잘 갖춰져 있네요. 불을 피울 수 있는 캠프파이어 포인트도 있고 몇몇 곳에는 지붕이 있는 정자에 벽난로를 달아 불을 피울 수 있게 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캠핑 장비가 없는 사람들을 위한 방이 5개, 한 가족이 모두 쓸 수 있는 렌트용 집도 한 채 있습니다. 우리는 호기롭게 텐트에서 자기로 합니다. 자릿세 2불 50센트를 내면 어디든 텐트를 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불을 피울 수 있는 홈이 있는 곳 바로 옆에 자리를 잡았죠. 텐트 치기는 순조로웠습니다. 막상 텐트를 치고 보니 2인용 이라기보다 해변가에 펴놓고 쉴 때 사용한 말한 아주 아담한 사이즈네요.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지만 다시 한번 무시해 봅니다. 텐트를 치고 나니 오후 6시가 넘었습니다. 슬슬 불을 피워야 따뜻한 저녁을 먹겠죠? 마트에서 사 온 스타터와 숯에 불을 붙였습니다. 스타터에 불이 붙자 기대감이 스멀스멀 자라납니다. 


'아 신난다. 이제 불에 물 끓이고 라면에 밥 말아먹어야지. 이게 바로 캠핑의 맛이지~' 

짝꿍은 연신 숯에 불이 옮겨 붙도록 입으로 후후 바람을 불어댑니다. 


그러기를 두 시간. 여전히 짝꿍은 숯에 불이 붙으라고 가져온 신문지로 바람을 일으키고 있고 숯은 불이 붙었다 꺼졌다는 반복할 뿐 물을 끓일 만큼의 화력을 보여주진 않습니다. 나도 지치고 짝꿍도 지치고. 후후 거리며 같이 불 붙이기를 도와주다가 이젠 어지러워서 못하겠다 손을 들었습니다. 


"우리 그냥 식빵에 참치 넣어서 샌드위치 해 먹자. 나 너무 배고파. 라면은 그냥 포기하자"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이거 기다리다가 오늘 밤새겠다. 나 팔도 아프고 더는 못 하겠어."


숯에 불 붙이기가 이렇게 힘든 줄 몰랐습니다. 집에서 바비큐를 할 때는 도구도 많고 해서 어려운 줄 몰랐는데.... 준비 부족 우리의 첫 캠핑은 불 피우기 실패입니다. 배는 고프고 점점 온도가 떨어져서 발가락은 시려오고. 머라도 따뜻한 게 있어야겠다 싶어 최후의 수단으로  그나마 몇 개 있던 달아오른 숯 위에 냄비를 올리고 물을 데웠습니다. 예상대로 물이 팔팔 끓지 않아 그냥 미지근한 물을 컵라면에 넣었습니다. 식빵에 머스터드를 바르고 그 위에 캔참치를 올리니 어쩌나 짜고 목이 막히던지요. 미지근한 컵라면 국물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습니다. 


"와, 나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컵라면은 또 처음 먹네"

"우리가 진짜 배가 고픈가 보다. 이 라면 진짜 맛없는 새우맛인데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나."


짝꿍과 나는 하나밖에 없는 라면의 국물이 아까워 한 방울이라도 아껴먹으려고 싸가지고 온 찬밥에 국물을 부었습니다. 이것도 그런대로 먹을만합니다. 라면 한입 밥 한술 번갈아가며 먹다가 서로 눈이 마주쳤습니다. 


'푸하하 하하하하하하' 


평소 같았으면 춥고 배고프고 피곤하고 온갖 짜증이 날 만도 한데, 함께라서 그럴까요 이 상황이 어찌나 웃긴지요. 두 사람이 겨우 들어갈 텐트 안에서 너무 추워서 짝꿍의 잠바로 다리를 꽁꽁 싸매 인어공주처럼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서 라면을 먹고 먹여주는 이 상황이. 둘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힐 정도로 배를 잡고 한바탕 웃음보를 터뜨렸습니다. 이렇게 배가 아프게 웃어본지가 얼마만인지요. 오늘 하루종이 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던 불길한 기운의 배경음악이 순식간에 쨍한 여름 해변의 배경음악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함께라서 참 다행이야. 너무 행복해' 이 순간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좌충우돌 식사가 끝나고 잠자리에 듭니다. 사실 잠을 자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습니다만, 우리가 준비한 게 하나도 없고 렌턴도 핸드폰 라이트가 없으면 어디에 뭐가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 상황이었거든요. 배는 부르고 피곤하고 추우니 누우면 잠이 오겠지요. 밖에 남겨둔 실패한 숯불을 대충 정리하려고 텐트 밖으로 나갔다가 올려다본 밤하늘은 별천지였습니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처럼 수많은 별들이 총총히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구름에 가려 잠시 얼굴을 가렸다가 금세 또 나타나 그 빛나는 자태를 뽐내었습니다. 그래, 이게 바로 캠핑의 맛이지. 맘 같으면 잔디에 드러누워 별구경을 하다 잠이 들고 싶지만, 춥기도 춥고 낮에 계속 비가 내려서 바닥에 누울 수가 없었습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텐트로 입장. 둘이서 입김을 후후 불면서 잠들 때까지 두런두런 얘기를 합니다. 다음번엔 꼭 큰 텐트랑 침낭을 사 오자고. 그리고 숯불에 불 붙이는 건 인터넷으로 배우고 오자고.... 그렇게 서로의 온기를 나누면서 누에고치처럼 잠바와 담요를 꽁꽁 싸매고 잠이 듭니다. 


빗소리에 깨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꿈결에 후드득후드득 천장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납니다. '밖에 비가 오나 보네. 운치 있고 좋다. 이런 경험을 어디 가서 해보겠어....... 어? 우리 신발 밖에 있는데? 이거 꿈이 아니구나?' 잠든 지 얼마나 지났을까요. 이런 밖에 비가 내리는데 우리 신발을 밖에 있습니다. "짝꿍! 일어나! 밖에 비 오는데 우리 신발 밖에 있어!!" 부리나케 짝꿍을 깨웠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어 텐트를 열어보기 비가 꽤 많이 내리고 있습니다. 제 신발을 방수가 안돼서 이미 다 젖었고요. 밖에 놔뒀던 많지 않던 우리 짐들은 이미 쫄딱 젖었습니다. 그리고 보니, 어라? 텐트가 안쪽으로 물이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텐트 모서리 부분에 있던 담요들은 이미 젖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너무 늦어서 방을 구하긴 힘들게 생겼네요. 할 수 없이 텐트를 지붕이 있는 정자로 옮기고 차로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짝꿍이 대충 짐을 모두 꾸려서 차로 먼저 가고 난 양 발을 비닐봉지로 감싸고 젖은 신발을 신었습니다. 묘하게 신발이 발을 싹 감싸네요. 비에 젖어서 생쥐꼴로 깜깜한 어둠에 장님처럼 앞도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쿡쿡거리며 웃음이 나는 건 왜일까요. 대충 짐을 차에 옮겨놓고 뒷 자석에 누울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두 사람이 눕기에는 턱도 없이 부족합니다. 목은 꺾이고 발을 창에 기대고. 둘이서 지그재그 퍼즐 맞추기에 테트리스를 하듯이 서로의 몸을 구겨서 최대한 편안한 자세를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텐트보다 차가 조금은 푸근합니다. 다음 캠핑에 꼭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오자며 짝꿍과 캠핑 리스트를 만듭니다. "우리 다음에 준비할게 머가 있지?" " 더 큰 텐트랑 침낭이 가장 중요해. 그리고 석유를 좀 들고 다니자. 불 피울 때 뿌릴 용도로. 그리고 에어메트가 있어야 할 것 같아. 램프도 필요하고. 참, 다음엔 삼각대 들고 와서 야경도 찍자........" 이렇게 얘기를 나누다 다시 잠에 빠져듭니다. 물론 전 푹 잤습니다. 비행 기건 자동차건 사무실이건 잠은 어디서든 잘 자거든요. 그런데 짝꿍은 한숨을 못 잤다고 하네요. 


짝꿍이 새벽 6시도 되기 전에 저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해 떴어. 우리 호수 좀 돌아보고 출발하자. 나 한 숨도 못 자서 너무 피곤해." 혼자 너무 푹잤나 싶어 미안한 마음에 얼른 따라나섭니다. 내가 에콰도르 면허로 바꾸고, 수동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을 때까진 꼼짝없이 짝꿍이 운전을 해야 하기에 항상 미안한 마음이지만, 짝꿍은 운전하는걸 누구보다 좋아하니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지요. 또 한 번 므흣한 기분이 들게 하는 비닐봉지 양말에 신발을 신고 산책을 나섰습니다. 

호수에 서서히 드리우는 햇빛이 그렇게 이쁠 수가 없네요. 한동안 둘이 말이 없이 잔잔한 호수 앞에서 넋을 놓고 그 모습을 감상했습니다. 숯불과 싸우고, 비에 젖었던 그 새벽의 일은 마음속에서 이미 녹아 사라지고 호수의 평온함이 우릴 감쌉니다. 야생 토끼가 세수하러 왔는지 나왔다 우릴 보고 다시 들어갑니다. 


이렇게 우리는 첫 캠핑의 추억을 쌓았습니다.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캠핑이라곤 눈곱의 반만큼도 모르면서 호기롭게 담요 몇 장 챙겨 나섰던 우리 둘. 비 맞으며 텐트를 치우던 그 깜깜한 밤. 텐트 밖에 야생 동물이 우리 물건을 뒤지는데 차마 무서워서 나가진 못하고 안에서 에비에비거리며 소리치던 기억들. 잊지 못하겠지요?


잘 왔다. 우리 잘 해냈어. 다음에 또 오자. 서로 기대어 말없이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습니다. 

우리 에콰도르에 잘 왔어. 적응할 수 있을 거야. 우린 함께니까. 


돌아가는 길에 바라본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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