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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당동붓다 Jan 25. 2022

세상에 없던 이야기

작년부터 듣던 드라마 작가수업을 다행히 올해도 들을 수 있게 되어, 매주 월요일 수업을 듣고 있다. 온라인으로 진행되다 보니 좀 루즈한 감은 있지만, 늘 한 번씩 무릎을 탁 치는 포인트들이 있다. 어제는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저는 늘 세상에 없던 이야기를 쓰고, 세상에 없던 캐릭터를 만드려고 하고 있어요."

사실 진부한 이야기를 쓰지 말라고 하신 이야기긴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나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아이가 5살이 되기 전부터 내 주위에는 영어유치원을 보낼 것인가, 말 것인가의 첨예한 대립이 있었다. 8살 무렵에는 사립초 추첨 전투를 지나왔고, 지금은 학원 전쟁통에 살고 있다. 내 지인들은 알고 있지만 나는 영어유치원에 아이를 보내지 않았고, 국립 유치원에서, 학원도 별로 보내고 있지 않다. 영어유치원에 보낼 돈이 없어서 보내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생각해보면 술 몇 번 안 마시면 보낼 수 있을 정도고, 사립초등학교를 정말 보내고 싶었다면 이사를 해서라도 보낼 수 있었다. 지금 나의 딸은 피아노 학원과 영어학원 딱 두 개를 다니고 있고, 아이스크림 홈런이라는 학습지 하나 하고 있다. 


그나마 다니는 영어학원은 기존에 다니던 영어학원이 너무 숙제를 많이 내주고 진도가 빨라서, 한 학년 어린 친구들과 함께 다니는 영어학원으로 바꿨다. 사실, 영어학원을 바꾸는 과정도 굉장히 어려웠다. 이왕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기로 했으면 좋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명목 아래, 동네의 모든 영어학원을 돌아다니며 선생님 면담을 했다. 원하는 학원에는 기초반이 없어서, 직접 새로운 반을 만들어서 간 학원이었다. 매일 학원을 가고, 단어를 외워야 했고, 2시간 수업 외에 또 집에서 2시간 더 공부를 해야 하는 그런 학원이었다. 학원 숙제를 안 한다고 하더라도 가방만 들고 다니면 자연스럽게 언어에 노출되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매일 옆에서 단어시험을 보고, 영어로 된 지문을 옆에서 읽어주어야 다음에 다가올 레벨테스트에서 통과할 수 있음을 나중에야 알 수 있었다. 친구들을 따라 높은 반으로 가지 못한 내 딸은 사실은 선생님이 하는 말을 따라가기 어려웠노라 울며 이야기했고, 나는 당장 학원을 그만두었다.


사실, 내 딸이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서, 한동안 아이의 영어유치원 입학을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영어유치원에 보내라고 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때 대리 만족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경쟁에서 승리하고 싶었나 보다. 그러나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영어유치원을 보내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그때 배워야 할 일들이 있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사이좋게 노는 것,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조심조심 걸어야 하는 법, 선생님과 친구들의 말을 경청하는 것, 생명을 소중히 대하는 방법, 차례를 기다리는 일, 영양을 골고루 담은 밥을 정성 들여 먹는 일 등 집에서는 모두 알려주기 어려운 많은 것들이 있다. 나는 5살부터 7살까지 배워야 하는 것은, 발음도 어려운 다른 나라 말이 아니라 아름다운 우리나라 말임을, 일렬로 순서를 세워 등수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다 같이 즐겁게 뛰어노는 활동을 하는 것임을 잠시 잊고 있었다. 


강 건너 강남에서는 영어는 초등학교 가기 전에 끝내고, 초등학교 때는 중학교 과정을 하고, 중학교 때는 고등학교 과정을 해야 대학을 갈 수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렇게 대학을 가면 뭐할 건데?라는 소리가 단박에 튀어나온다. 왜 본인의 학습 스케줄을 부모가 설계하는지가 1차적인 의문이고, 그 나이와 그 시기에 배우고 이해해야 할 의무교육과정을 왜 돈까지 써가며 먼저 알려고 하는 것인지가 두 번째 의문이다. 그 나이 때 이해하기도 어려운 것을 학원에서 먼저 '듣는' 것은, 그저 익숙한 것일 뿐이지 스스로 익히고 터득하는 '배움'의 단계는 아니라고 확언한다. 왜냐면 내가 그랬으니까. 초등학교 때 중학교 과정을 미리 해야 한다는 그 흉흉한 소문 덕에, 나는 이해도 못하는 1차 방정식을 푸는 기술을 학원에서 따라 하고 엄마 아빠의 총애를 받았다. 나는 부모님이 떠미는 흐름 속에 흘러 흘러 살았지만, 대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중학교 때 학원을 그만 다니고, 독서실에 가만히 앉아 책을 볼 때 내가 비로소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엄마의 열정에 의해 열 손가락이 모자라게 다니던 학원은 나의 선택에 의해 2개로 줄었다. 


그러나, 공부 스케줄을 스스로 선택한 나조차 내 삶을 선택하지는 못했다. 시험은 무조건 1등을 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공부를 했고, 성적대로 고등학교를 갔고, 성적대로 대학에 갔고, 성적대로 과를 선택했다. "연애든 뭐든 다 대학 가면 할 수 있다는'라는 미명 아래 나의 삶의 무수한 선택들은 대학 이후로 미뤄졌지만, 대학을 입학하고 난 후에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회사를 가기 위해 쓰던 자기소개서마다 등장하던 그 첫 번째 질문, '나에 대해 소개하세요.'라는 그 질문 앞에 나는 한없이 초라해졌다. 나는 정말 내가 누구인지 몰랐다. 나는 당장 다가올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을 향해 달려왔지만, 정작 내 삶의 점수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이를 낳고, 사업을 시작하고, 33살이 넘어서야 내 삶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뭐 대단한 것을 고민한 것도 아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좋아하는 것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일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아이는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나는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 해야 하는지, 뭐 그런 사소하고 다양한 것들이다.


다른 사람 입장에서 보면, 나는 내 아이를 방치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와 아침을 먹고, 학교에 데려다주고 퇴근하고 집에 오기 전까지 아이가 무엇을 하는지 잘 모른다. 하지만 잠자기 전까지 매일 하는 학습지를 해야 하고, 영어 숙제를 스스로 해야 한다. 그 외의 시간은 자유다. 요새 아이는 학원을 다녀온 후 제페토 스토어의 옷들을 디자인해서 판매하는 일을 하고, 게임을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녀의 꿈은 게임 유튜버이기 때문에 다양한 게임을 해봐야 한다고 한다. 나는 딸에게 지지 않게 더 열심히 살고 있다. 아침에 아이를 데려다주고 중국어 수업을 한 후, 일을 하기 시작한다. 점심시간에는 꼭 운동을 하고, 저녁에는 드라마 수업을 듣거나 피아노 학원을 가고, 우리 회사 매장들을 둘러보고 집에 간다. 집에서 우리는 떨어져 있는 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이야기하고, 우리가 좋아하는 멍멍이 유튜브를 보다 서로 꼭 껴안고 잠을 잔다. 주말에는 최선을 다해 논다. 친구 집에 가기도 하고, 스키를 타기도 하고, 몇 시간이고 앉아 미니어처를 만들기도 한다. 우리는 공부는 최소로 하고, 노는 것은 정말 최선을 다해 놀고 있다. 왜냐면 어린 시절은 즐거운 기억으로 가득해야 하니까. 아이들은 추억과 사랑을 먹고 자란다.


요새 많은 부모들은, 본인과는 달리 아이가 원하는 것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그래 왔듯 똑같이 학원에 보내고, 똑같이 1등을 하라고 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서, 너만은 나보다 영어를 잘했으면 좋겠다는 마음까지 보태어 하루에 6시간씩 공부를 시키는 영어학원에 거침없이 아이를 보낸다. 그렇게 우리가 커왔던 것과 똑같이 키우면서, 어떻게 너만은 다르게 살라고 하는 것인가. 영어유치원을 보낸다고 해서, 창의 미술학원을 다닌다고 해서, 예술 융합교육을 받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과연 무엇일까. 


이 세상 단 하나뿐인 아이들이다. 세상에 없던 이 소중한 아이들이 세상에 없는 이야기를 써내기 위해서는 적어도 모두가 하는 똑같은 교육을 지향하며 1등 만을 강요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이 세상 모두가 1등을 하라고 강요해도, 적어도 부모는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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