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에서의 2박 3일 ②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있었다."
김승옥을 좋아한다. 무진기행의 필치도 그렇지만 나는 그가 2004년, 24년의 절필을 깨고 낸 산문집을 첫째로 꼽는다. 1982년 김승옥은 박완서, 김홍신, 이호철 등과 함께 문학인 연수로 아테네를 방문했다. 당시 그는 '파르테논 신전 입구에서 사도 바울이 설교하던 대리석 바위 위에 서자 감동이 벅차올라 엎드려 기도했다'고 적었다. 아테네 시내가 아득히 내려다보이는 흙산에 주저앉은 그의 모습이 책장을 덮고도 또렷이 남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의 기행을 복강 깊숙한 곳에서 자연스레 터져나온 무엇으로 멋대로 해석했다. 나는 또 그의 친구 김지하가 "아무리 날고 기는 재주꾼들도 김승옥의 앞에서는 설설 기었고 그럼에도 본인 스스로는 한없이 겸손하매 나에게 그는 하나의 기적처럼 보였다"며 그를 우러른 것처럼, 에세이의 맨 앞에 영적 체험을 내세운 연유가 김승옥이 경기도 모처 교회에서 겪은 체험 때문이라고 맘대로 해석했다.
사흘간 포천 운악산의 수도원에 다녀왔다. 1평 남짓한 독채 안에는 1미터가 조금 넘는 좌식 책상과 담요 한 장이 놓여있었다. 독방도 아니고 독채라니.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에서 읽은 이탈리아 카말돌리 수도원이 떠올랐다. 그곳에 머물면서 내가 들은 건 타종 소리와 새소리가 전부였다. 종소리는 하루 다섯 번 울린다. 기상, 오전 9시의 노동, 아침과 점심, 저녁 식사를 알리는 세 번. 숙식비는 노동으로 대신한다. 어감 때문에 미장이라도 하나 여길 수 있는데, 그곳에서의 노동은 그저 소일거리였다.
비로 낙엽을 쓸고 삽에 담고, 알밤은 대야에 골라 담았다. 이렇게 수북한 건 10여년 전 대관령 옛길을 올랐을 때 이후 처음이다.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본래 일과는 기도와 예배, 대침묵이 다인데 내가 머문 기간엔 예배가 단 하루만 있다고 관리인께서 알려주셨다. 나는 본의 아니게 이틀을 침묵의 독방에서 지냈다. 그것도 나만 외떨어진 별채에서. ㅠㅜ
둘째 날엔 점심을 거르고 책을 폈다. 공용 책장에서 두 권을 선뜻 집었는데, 신곡은 100곡 중 7곡밖에 못 읽었다. 단테는 내 나이에 1000쪽에 달하는 대서사시를 썼는데, 나는 서사 근처에도 못 가고 하암 하품을 했다.
"나는 이 세상의 광야를 걷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떤 동굴이 있는 곳에 다다라서 누워 잠이 들었다.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다. 그 꿈속에서 누더기를 걸친 한 사람을 보았다. 그 사람은 손에는 책을 들었고 등에는 큰 짐을 짊어진 채로 자기 짐을 등지고 서 있었다."로 시작하는 천로역정은 순조롭게 읽혔다. 하지만 순례자 여로의 숨은 뜻을 알기에 사흘은 짧았던 것 같다. 으레 수도원이라고 하면 얼음장을 떠올리지만, 독채의 아랫목은 소한 추위에도 끄떡없을 정도로 뜨거웠다. 책상다리하고 책에 얼굴을 파묻고 엉덩이를 지지고 있으니 솔솔 졸음이 몰려왔다.
원내에는 밤나무가 1만 그루는 족히 있는 것 같았다. 하필 신고 간 게 메시 소재 운동화라 가시가 발등을 찔렀지만, 나는 저 멀리 나무를 타는 다람쥐를 따라 산을 탔다. 계곡의 물은 찼다. 무릎 깊이의 웅덩이에는 알이 꽉 찬 밤껍질이 수북했다. 누구의 손도 거치지 않고 열렸다, 잠겼다를 수십~수백 년 반복해왔을 테다.
댕 댕 댕- 저녁 식사를 알리는 쇠종 소리를 듣고 걸음을 돌렸다. 한 끼 금식으로 내가 얻은 건 그저 허기였다. 매끼 밥과 국, 세 가지 찬이 나오는 수도원의 식사는 어느 상차림보다 훌륭했다. 특히 오이소박이와 나물, 들깨미역국은 슴슴하면서도 진한 향이 입안 가득 퍼졌다. 차리는 분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식권 한 장 내지 않고 꼬박꼬박 취식하는 게 죄송했다. 둘째 날엔 두 그릇을 비웠다.
신앙과 기도가 얕은 나에게 며칠간의 대침묵은, 낯설지만 값졌다. 막스 피카르트는 <침묵의 세계>에서 이렇게 적는다. "언어는 성스러운 침묵에 기초한다. 침묵이란 그저 인간이 말하지 않음으로써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침묵은 단순한 말의 포기 그 이상의 것이며 단순히 자기 마음에 들면 스스로 옮아갈 수 있는 어떤 상태 그 이상의 것이다." 적막한 독채에서 책의 글귀와 말씀을 속으로 읊조리며, 하루를 보냈다.
흡사 목재 사우나실과 비슷한 이 방이 외부와 닿는 건 어깨만 한 창문으로 스며드는 빛이 다지만, 그곳은 내게 묘한 평안을 줬다. 오후 10시 정시에 소등 후 잠자리에 들었다. 제 발로 독채에 갇혀 세끼 나물을 먹고, 종소리에 맞춰 움직이는 기묘한 경험. 눈이 소복히 쌓인 밤나무가 궁금한 걸 보니, 다시 한번 찾을 것 같다.
다음날 일찍 시동을 걸어 서울로 향했다. 가방엔 충전기와 보조배터리가 그대로 들어있었다. 디지털 디톡스라고 여기저기 얘기해놓고서 다 챙겨왔다. 나는 포천을 벗어나기도 전에 DT, 드라이브스루가 큼직하게 쓰여 있는 맥도날드로 운전대를 꺾었다. 맥모닝 단품이요 아니, 세트요! 나는 수락산 바위가 보이는 별내터널에 이를 때까지 대박 대박을 외치며, 해쉬 브라운과 에그 맥머핀을 해치웠다. 맥모닝 맛있게 먹는 법만 남기고 수도원에서 귀가. 단짠의 위엄이란.
p.s. 정성을 다해주신 수도원 관계자 분들의 배려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10월 포천 - 월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