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에서의 2박 3일 ①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월든>을 쓰던 무렵, 그는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 마을의 월든 호숫가에 집을 짓고 혼자 살고 있었다. 소로가 손수 지은 그 집은 반경 1마일 안에는 이웃 하나 없는 외딴 숲속에 있었는데, 그곳에서 그는 순전히 손노동만으로 생계를 꾸리면서 2년 2개월을 살았다.
월든을 처음 본 건 10년 전 영화 Into the Wild를 보고서다. 나는 막연히 ‘알래스카에 가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이 영화를 봤고, 주인공 크리스토퍼의 대사에는 월든의 구절이 자주 등장했다. 어제 10년 만에 월든을 다시 봤다.
“나는 내 생활에 여백을 남겨두기를 좋아한다. 이따금 여름날 아침이면 나는 여느 때처럼 미역을 감은 다음 양지 바른 문간에 앉아서 동트는 새벽부터 정오까지 소나무와 호두나무와 옻나무에 둘러싸인 채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고독과 적막 속에서 조용히 공상에 잠기곤 했다. 그러는 동안 새들은 새 주위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소리 없이 집 안을 들락거렸다. 그러다가 햇빛이 서쪽 창문으로비쳐 들거나 멀리 떨어진 간선도로에서 여행자의 마차 소리가 들려오면 그제야 나는 시간이 흘렀음을 깨닫는 것이다.”
올해 2월, 강원도 태백에 갔다.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인 황지천을 가로지르는 교를 건너면서 나도 그런 여백 한 번, 하고 생각했다. 겨울의 목가는 내게 늘 평안을 준다.
아빠가 나고 자란 그곳 태백 조탄마을에는 60여년 역사의 수도원이 있다. 나는 프랑스인 신부님이 1965년에 설립한 이 곳에, 이정표만 보고 무언가에 이끌리듯 들어갔다. 바퀴 자국 하나 없는 흙길을 한참 오르고서야 입구를 찾았다. 그리고 응접실과 소기도실 등을 둘러본 나는 이곳에 꼭 다시 오리라 생각했다. 20여분을 둘러보고 하산한 게 다이지만, 나는 글줄 몇 자로 적기 힘든 경이로움을 느꼈다.
나는 월든 호숫가에서의 2년 2개월까지는 아니어도, 휴가를 내고 수도원에서 2박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1순위였던 태백의 수도원은 마침 내부공사 중이라 다음을 기약했다. 등록한 경기도 포천의 수도원은 첫 번째 수칙으로 침묵과 정숙을 꼽는다. 수칙을 어기면 퇴실하여야 한다니, 여간 엄격한 게 아니다. 오후 2시가 입소 시간인데 아직 노트북을 잡고 이러고 있다. 이 글을 굳이 입소 전에 적는 건, 짧다면 짧은 사흘 후 기대 못한 무언갈 얻게 될 기대 때문이다. 그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메신저, 카톡을 꺼놓고 며칠간 디지털 디톡스를 할 생각에 즐겁다.
소로의 여백에 빠져 포천 산골짜기로 향한다. 나는 늘 여백을 좋아했다. 종묘의 너른 박석을 보러 점심을 거르고 저 멀리 종로5가를 다녀오기도 하고, 초라한 집 한 채와 고목 몇 그루가 다인 세한도를 보러 제주에 가고(실은 제주 추사관에 가서 세한도를 발견한 것, 제주에서 갈 단 한 곳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추사관을 택하겠다), 승효상의 빈자의 미학에 꽂혀 절판본까지 구해서 읽었다. 그의 책 <빈자의 미학>을 읽고는 자코메티가 나의 ‘여백 리스트’에 올랐다.
“자코메티의 조각은 참으로 가늘고 길며 유약한 구조를 지니고 있음에도 가슴 조이는 긴장과 엄청난 힘을 느끼게 한다. 그 빈곤하기 짝이 없는 몰골의 조상은 어떻게 그러한 힘을 느끼게 하는가. 그리고 그것이 왜 나에겐 그토록 아름답게 느껴지는가.” - 승효상 <빈자의 미학>
포천 이야기는 몇 편 적을 것 같다. 아마도 수도원 생활이 어땠냐에 따라 두 편, 많아야 세 편. 60여 시간의 여백과 침묵이 내게 작은 선물이 되길 기대하며. 카를로 카레토의 말대로, 지금 내겐 사막 같은 여백이 필요하다.
“그대가 만일 사막에 들어갈 수 없다면 그대의 생활 한가운데 사막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 그대의 생활 안에 사막을 만들고, 때때로 사람을 피해서 침묵과 기도 가운데 영혼을 재건하기 위해 고독을 찾도록 하라. 하루 한 시간, 한 달에 하루, 일 년에 팔 일, 필요하다면 그 이상으로 그대 주변의 모든 것을 떠나서 하느님과 함께 고독으로 들어가야 한다.” - 카를로 카레토 <사막에서의 편지>
10월 포천 - 나물밥과 맥모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