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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지연 Mar 11. 2016

자몽 -1-

부재중 전화가 세 번이나 와 있었다


부재중 전화가 세 번이나 와있었다. 운동을 마치고 맥주를 한 잔 마신 뒤였다. 그녀는 운동을 할 땐 벨소리로 바꾸어 놓으라며 면박을 주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나는 망설이다 전화를 걸었다. 지금 빨리 와야겠다. 휴대폰 너머 들려오는 아빠의 목소리가 무거웠다. 

택시 안에서 나는 M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보려 애썼다. 십일 년 전 이후로 만난 적이 없었으니 사실 기억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가끔 통화를 하긴 했지만 일 년에 한 번꼴이었고 그마저도 항상 M이 먼저 건 것이었다.

우리는 왜 M이 그곳에서 발견되었는지 알지 못했다. 유서가 없었고 누군가에게 연락하지도 않은 채였다. 한 달 전 서울행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는 사실만 기록으로 남아있었다. 경찰은 M과 관련해 아빠와 나에게 이것저것 물었지만 나는 정말로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사실은 빨리 샤워를 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전화를 받은 후 바로 온 터라 땀이 마른 옷이 찝찝했다. 한 잔이긴 했지만 멀쩡하지 않은 정신으로 누군가의 죽음 앞에 서는 것도 어쩐지 추잡스럽고 미안한 일이었다. 

굳어버린 아빠와 달리 나는 조금 덤덤한 태도로 M을 마주했다. 조금은 익숙해진 일이었다. 대학병원에서 일하던 시절엔 꽤 많은 시체들을 봐왔는데, 개중엔 익사체도 더러 있었다. 익사체는 특히 얼굴 부패가 심해 알아보기가 어렵다. 동료들은 익사체를 두고 스머프라고 지칭했는데 그야말로 온 몸이 새파랗기 때문이었다. 악의는 없었지만 그 단어를 말할 땐 모두들 입을 작게 벌리곤 했다. 나는 파랗게 변한 채 누워있는 사람이 M인지 아닌지도 분간할 수 없었다. 기억 속에 흐리멍덩하게 남아있는 M의 얼굴과 실제로도 흐리멍덩한 얼굴에서 온전한 M을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강에서 익사체로 발견된 M의 죽음에 대해 나는 아무것도 추측하지 못했다. 경찰은 M이 자살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런 상태로 병원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살이었다. 

우리 호실은 유난히 한산했다. 바로 맞은편 호실에 조문객들이 끊이지 않아 M의 장례식은 더욱 초라해보였다. 할 일이 거의 없었으므로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다. 나는 벽에 등을 기댄 채 맞은편의 풍경을 구경했다. 고인이 생전 좋은 사람이었던 모양인지 눈시울을 붉히는 조문객들이 많았다. 고모와 할머니는 저녁이 되자 집으로 돌아갔다. 호실에는 아빠와 나와 늦게 도착한 M과 절친했다던 친구만이 남았다. 처음 보는 M의 친구가 함께 있는 상황은 조금 어색했다. 친구는 장례식장에 들어설 때부터 훌쩍이기 시작해 내내 소리 없이 흐느끼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있기가 안타까워 연신 바람을 쐬고 돌아왔다. 세 번째 나갔다가 돌아왔을 때, 낯가림이 심한 아빠가 애써 친구에게 대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위로를 해주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나는 맞은편에 앉아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M이랑은 언제부터 친했다고요?

고등학교 때부터요. 같은 학교를 나왔어요. 

서로 서로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그랬겠네요.

아빠가 조심스레 말했다. 벌겋게 부은 친구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이자 아빠는 급히 손을 저어가며 사과했다. 

그냥 죽을 애가 아닌데. 정말 착한 앤데. 

친구가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유족들은 대부분 그런 식이었다. 이건 아니다, 거짓말이다, 이럴 수는 없다. 간호사를 하면서 놀랐던 점 중 하나는 죽은 사람의 자살 이유를 아는 유족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왜 죽었는지 모르겠으니 제발 살려달라고, 유족들은 의사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다. 친구는 그들과 같은 심정일 것이었다. 

M이 언니랑 아주 가끔씩 통화를 한다고 하던데요.

친구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내게 향했다. 친구는 온갖 물음들을 꾹 참은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친구에게 새 휴지를 내밀고는 고개를 숙인 채 내 자리로 돌아왔다. 

……안부를 묻는 것 말고는 별다른 게 없었어요.   

   



뭔가 안됐다. 

그녀가 토스트를 내밀며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냥 기분이 좀 이상해. 

그래도 피는 섞였으니. 

그녀가 말끝을 흐렸다. 나는 어쩐지 그녀가 나보다 M의 죽음을 더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 같아 무안해졌다. 

아무튼 장례는 잘 끝났어.

근데 정말 몰랐는데. 한 번도 나한테 가족 얘기 한 적 없잖아. 

그러게. 왜 그랬지. 말하지 않으려던 건 아니었는데.

그녀는 뭐 그럴 수도 있는 거지, 하고는 부지런히 토스트를 베어 물었다. 

네일아트샵을 운영하는 그녀는 나보다 출근 시간이 늦었지만 항상 같은 시간에 아침을 먹는 습관이 있었다. 덕분에 나는 늦잠을 잔 날엔 그녀의 밥상에 숟가락을 얹었다. 그녀와 내가 함께 산 지는 일 년 반 가까이 되었다. 이 집엔 그녀와 나 외에도 둘이 더 있었다. 우리들은 ‘뉴게더’라는 쉐어하우스 멤버를 구인하는 사이트를 통해 처음 만났다. 그 즈음 나는 자취생활에 질려 있었다. 

나는 꽤 오랜 기간 서울에서 자취생활을 했다. 아빠와 고모와 할머니가 사는 집은 대전에 있었다. 친구들을 불러 놀거나 홀로 취미를 즐기는 일은 대학교 초반에만 좋았다. 응급실에서 본격적으로 삼교대 근무를 시작한 뒤로는 차마 놀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바빴다. 일을 하면서 혼자 사는 것은 여러모로 무섭고 외로운 일이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혹시 누가 숨어있지는 않을까 불을 켜기가 두려운 적도 많았다. 룸메이트를 구해본 적도 있었지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오래가지 못했다. 일반병원으로 이직하면서 결국 나는 여러 사람이 공간을 공유하면서 사는 방식을 선택했다. 자취하는 것보다 훨씬 덜 위험할 것 같았고 월급이 준 탓에 경제적인 면에서도 효율적이었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사람들과 가족처럼 재밌게 지낼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은근한 환상도 있었다. 

외국계 기업을 다니는 친구가 먼저 사람을 모았고, 그녀와 기타리스트와 나의 순서대로 방이 채워졌다. 사회에서 만난 친구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말이 있지만 나와 그녀는 예외였다. 서로의 외모나 꾸미는 스타일은 완전히 달랐지만 취향이 비슷했고,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블럭을 맞추듯 딱딱 합이 맞았다. 이를테면 나는 무채색 계열의 옷을 좋아하고 짧은 머리를 선호하는 반면 그녀는 긴 머리가 어울렸고 화려하고 반짝이는 물건들을 좋아했다. 그러나 퇴근 후 주로 취미생활을 한다거나 혼자보다 둘이 있을 때 더 편안해 한다는 점은 같았다. 그녀의 남자친구가 내가 근무하는 병원으로 실려 온 사건을 계기로 우리는 무척이나 친해졌다. 남자친구는 눈 주위가 심하게 부어있었는데, 고등학생들의 싸움을 말리다가 도리어 그들에게 얻어맞았다고 했다. 그녀는 다친 애인보다 더 아픈 사람처럼 울었고 나는 응급처치와 입원을 도왔다. 매일 하는 일을 똑같이 한 것이었음에도 그녀는 내가 특별히 남자친구를 신경써줬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사실 내가 그 날 제일 많이 도운 것은 그녀를 달래는 일이었다. 다행히 눈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그녀와 남자친구 사이에 문제가 생겼다. 그녀는 남자친구를 죽일 기세로 험담을 해댔고, 나는 너는 생긴 것에 비해 보는 눈이 지지리도 낮다고 맞장구쳐 주었다. 그러니까 그의 양다리가 우리 사이를 연결해준 셈이었다. 우리가 붙어 다니게 된 데엔 쉐어하우스의 나머지 두 멤버의 공도 컸다. 우리를 모은 친구는 출장이 잦았고 기타리스트는 아르바이트와 연습실을 오가며 낮밤이 뒤바뀐 생활을 하고 있었다. 퇴근 후 돌아왔을 때 집에 꼬박꼬박 남아있는 사람은 그녀와 나 뿐이었다.   

 



출근하자마자 향한 병실이 허전했다. 침대 하나가 비어있었다. 꽤 오랜 시간동안 주인이 있던 자리였다. M의 장례식 전날까지만 해도 백발의 환자가 그 자리에 누워있었다. 이 병동의 대부분의 중증환자들이 그렇듯 그 역시 말도 표정도 없이 종일 누워있던 환자였다. 나는 환자의 마지막을 상상해보려다가 그만두었다. 중환자실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누군가가 죽어나갔고 동료들은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을 연명해내기 위해 종일 분주했다. 병원에서 일하는 시간이 늘어가면서 나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해졌고, 제법 노련해졌다. 이 곳에서 오래 일하기 위해서는 죽은 사람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 좋다는 사실은 깨달은 지 오래였다. 나는 병실을 지나 약품실로 향하며 실습 시절 처음 만났던 환자를 떠올렸다. 매일 병원 신세를 져야 하는 처지였지만 밝은 성격이라 실습생들과 꽤 친하게 지냈던 아이였다. 아이가 죽은 다음 날, 선배들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능숙하게 다른 환자를 간호했다. 나는 홀로 구석에서 훌쩍였다. 그 때 한 선배가 나를 붙잡고 구석으로 끌고 가 사납게 쏘아붙였다. 잘 들어. 우린 노동자야. 부품이 교체됐다고 생각하면 편해. 그냥 내 일거리가 하나 늘어난 거라고. 환자들을 잃는 것이 익숙해진 뒤에야 나는 그 말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라는 뜻이었음을 깨달았다.

그저께 돌아가셨어. 

동료가 다가와 말했다. 교대 근무가 틀어져 잠을 설쳤다는 동료는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바뀐 시간에 더 자두지 그랬어.

괜찮아. 너, 이제 한동안 자유겠네.

동료가 내 어깨를 토닥이고 지나갔다. 정해진 시간마다 주사를 맞아야 했던 환자가 사라진다는 것은, 어떤 의무가 끝났다는 것은 시간이 하나 늘어난 것과 같았다. 내게 다섯 시는 이제 다른 일을 해도 되는 시간이 되었다.  

Drawing by SEY CHRISTINE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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