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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향 Jan 20. 2021

프롤로그: 너를 만나는 하루 세 시간

아이 가져서 죄송합니다

  ‘두 줄.’


  짧은 시간 온갖 생각이 들었다.

  내겐 남자 친구가 있지만 결혼하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무능력하다. 내 인생계획에는 출산과 육아가 없었다.

  아주 잠깐 동안 중절 수술을 떠올렸지만 금세 마음을 가라앉혔다. 반드시 결혼해야만 아기를 잘 키울 수 있는 건 아니다. 너무 현실감이 없는 상황에 근거 없는 자신감마저 생겼다.

  남자 친구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폰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출근 직후 바쁜 시간대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무슨 말을 들어도 상처 받지 말자.’


  강하게 마음을 먹었지만 막상 목소리를 들으니 눈물부터 쏟아졌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는 방어막을 쳤다가 다시 두서없는 말들을 쏟아냈다. 34년 인생을 독립적인 성격으로 살아왔던 우리다. 이렇게 나약하게 느껴지는 내 모습이 싫고 당황스러웠다.



  우리는 사실 비혼 주의라기보단 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책임질 만한 자격이 없다는 데 더 가까웠다.

  직장생활 10년 동안 모은 돈이 0원, 누가 들어도 한심한 두 사람이 만나 부모가 된다니. 눈앞이 캄캄해야 하는 상황인데 더욱 대책 없는 답변을 들었다.


  “아기는 당연히 같이 키워야지. 놀라긴 했지만 기쁘다. 준비는 많이 부족하겠지만, 그래도 같이 열심히 노력하면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이 있는 듯 없는 듯하는 그의 말에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여 더 크게 목놓아 울었다.



구글 이미지



  인터넷을 검색해서 가까운 산부인과를 가는 동안 빌딩 화장실에 들러 두 번이나 토했다. 전날 마신 술 때문이다.

  10년 동안 열정 바쳐 일한 기자라는 직업. 지칠 대로 지쳤을 때 제2의 직업을 찾겠다는 핑계로 아무런 계획 없이 사표를 던진 지 꼭 일주일 후였다. 가장 친한 친구와 축하 겸 위로 파티를 하며 밤새 소주, 맥주, 막걸리, 와인을 마신 다음날이기도 했다.



  가장 먼저 아기가 걱정됐다. 다행히 의사 선생님은 대수롭지 않다는 말투로 아기집이 생성되기 전이라 알코올이 태아에게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초음파 검사 결과 임신이 확실하다는 확인도 함께.

  그럼에도 나는 미안했다. 뱃속의 콩알보다 작은, 실제로 태어나 우리의 아기가 될지 아직은 많은 것이 불확실한 생명체에게. 살면서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책임감이었다.



  임신한 상태로는 재취업이 불가능했으므로 서둘러 결혼을 준비했다. 부모님께는 임신 사실도 말하지 못했다.

  준비 3개월 만에 작은 결혼식을 올리고 시부모님 집에 들어가 살기로 했다. 식장 사용료가 무료인 토요일 저녁 결혼식을 올리고 스튜디오 촬영은 생략했다. 드레스와 메이크업은 최저가를 골랐다. 신혼여행은 가까운 홍콩으로 정했다.



수중분만



  9개월 내내 고통스러웠던 임신과 수중분만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온 아이들은 일생을 통틀어 무엇과도 비교 불가한 최고의 보물이었다. 중요한 문제는 경제적 자립이었다.

  돈을 아껴 써본 적이 없고 월급보다 카드값이 많이 나오던 내가 남편 월급으로 스타벅스 커피 하나 마음 놓고 못 마시다 보니 우울증을 앓을 정도였다.


  ‘다시 일하고 싶다.’


  문득문득 드는 생각을 막을 수 없었다.

  언제 무슨 일을 다시 할 수 있을까. 생후 한 달짜리 아기는 밤낮없이 울어대고 내 경력은 단절된 상태로 10개월이 지났다.

  인생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지만 가장 쉬운 길은 정해져 있었다. 다시 내 직업을 찾는 것,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나니 이후의 상황은 빠르게 진행됐다. 친한 선배에게 부탁해 추천을 받고 두 군데 경력기자 면접을 봤다. 베이비시터를 구하고 결과를 기다렸다. 두 군데 다 합격이었다.


  “매정하다.” “어미가 자식을 떼놓고 일하러 가느냐.”는 말이 속을 후벼 파도 일하고 싶었다. 가슴이 뛰었다.



구글 이미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삶을 이끈다는 것,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부지런히 회사일에 적응해가던 중 다시 고비가 온 건 첫아이 율이가 생후 8개월일 때다.

  베이비시터가 더 좋은 일자리를 구했다며 갑작스럽게 이별을 통보해왔다. 한 달간 새 베이비시터를 고용할 시간을 약속받았지만 정부, 민간, 동네 커뮤니티, 이곳저곳 문을 두드려봐도 결국 다 실패했다.

  양가 부모님은 직장이나 건강문제로 아이를 돌볼 형편이 안됐고 만약 봐주신다고 해도 거절했을 것이다. 육아는 부모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중 한 사람이 일을 그만둬야 했다. 나는 새 직장에 입사한 지 6개월째고 나쁘지 않은 월급을 받고 있었다. 일도 마음에 들었다. 남편은 결혼 후 야근과 주말근무가 적은 새 직장으로 이직하고 싶어 했다. 누가 일을 그만둘지는 덜 고민해도 되는 문제였다.


  “내가 율이를 돌볼게.”


  남편이 먼저 말했다.

  삶이 이렇게 무계획적이고 제멋대로 흘러갈 수 있을까. 이런 우리가 부모가 돼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그렇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생각보다 잘 버텨왔다. 남들처럼 괜찮은 준비는 아니었지만 그때도 지금도 우리는 누구보다 즐겁고 행복하다.


#아이가져서죄송합니다 #워킹맘일기 #에세이 #브런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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