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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향 Aug 13. 2020

내 아이를 괴롭히던 친구가 불쌍했다

남의 일엔 잘 관심도 안 갖고 다른 집의 육아방식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다.

새 어린이집으로 옮기고 나서 내 아이를 괴롭히는 남자친구 A가 생겼다. 처음에는 너무 미웠다. 여섯 살짜리 아이를 상대로 어떻게 혼내줄지 고민하다 자식 일이라면 이성을 잃는 게 부모인가 싶었다.



율이는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 A가 자기 머리를 때렸다, 무서운 말을 했다, 밀쳤다는 등의 고자질을 했다. 친구를 상냥한 말로 설득해봐라, 단호하게 화를 내라, 너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똑같이 밀쳐도 좋다 등의 여러 방법을 알려주고 연습도 했다.

몇 개월이 지나서 담임교사에게 전화를 걸어 이 문제를 의논했고 등원 길에 A를 마주쳤을 때 내 아이와 사이좋게 지내라고 넌지시 훈계를 했다.



자식을 낳아 기르며 성숙한 어른이 된다는 말의 의미 하나가 이런 걸까. 어느 순간부턴 내 아이를 괴롭히는 A를 그저 미워만 한 것이 아니라 눈여겨 지켜보게 되었다. 내 이웃의 아이이자 앞으로 짧아도 2년 어쩌면 진학 이후에도 반 친구가 될 수 있는 A를 미워만 할 수는 없었다.



A의 부모는 경제적으론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문제가 많은 부모였다. 세 아이를 카시트가 없는 차에 태워서 등하원시키고 어린이집 마당에 후면 주차 금지 규정을 어기기도 했다.

어느 날 우연히 담임교사의 실수로 내 아이와 A의 수첩이 바뀌어서 왔는데 그때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나도 맞벌이하는 엄마여서 어린이집 수첩을 매일매일 작성하진 못한다. 일주일에 3회 안팎으로 선생님이 써주신 편지에 답장을 한다. 영유아를 보육기관에 보내는 학부모에겐 선생님과의 유일한 소통 창구다.

A의 수첩은 학기 초부터 6개월 동안 담임교사의 편지 외에 학부모의 아무런 피드백이 없었다. A가 반 친구의 코를 주먹으로 때려서 혼냈다는 글도 있었고 율이 치마를 들춰서 울렸다는 글을 봤을 땐 당장 쫓아가서 때려주고 싶을 만큼 화가 났다.

그리고 A가 결손가정에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A가 주말에 엄마 집에 다녀와서 좋았다고 말해요. 엄마와 식당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며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어요. 매일매일 엄마 집에서 살고 싶다고 하네요.(웃음)"



나는 요즘 같은 세상에 이혼가정의 아이에게 편견을 가져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부모가 노력한다면 반드시 친자식이 아니라도 더 잘 키우는 재혼 부모도 있는 것을 안다.

그런데 늘 웃음기 없는 A의 얼굴이 계속 생각났다. 미워했던 마음 때문일까. 한창 사랑받아야 하는 어린 가슴에 상처가 있는 건 아닐지 마음이 아팠다.



오늘 아침 등원 길에 또 A를 만나서 먼저 "안녕?" 하고 두 번 인사를 건넸는데 아이가 쌩 하고 지나가버렸다.

A의 쌍둥이 동생도 내 둘째 아이 솔이와 같은 반 친구들이다. 쌍둥이들은 아빠의 차에서 내려진 채 인사 없이 붕- 하고 가버린 뒷모습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A는 동생들을 신경 쓰지 않고 교실로 들어갔고 쌍둥이 남매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아빠가 바쁘셔서 인사를 깜박하고 가신 거야. 선생님이 신발 벗겨줄게."



담임교사가 두 아이의 신발을 억지로 벗기고 한 명을 안아 올리는 여자아이는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 잔상이 온종일 머릿속을 괴롭혔다.



아이는 누구나 사랑받을 권리가 있다는 말. 태어난 곳이 어디든 부모가 누구든 가난하든 부자든 학대받을 이유가 없는 보물 같은 존재다.

그들의 기준에서 보면 이건 지극히 정상적인 범주의 육아방식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공교육 시스템의 보호자인 교사가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아이 문제에 관여할 수는 없는 것일까.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것을 알지만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깊은 고민에 든다.



하필 오늘 밤 내가 사는 동네에서 부모가 열 살짜리 자기 아이를 코피가 터지도록 폭행한 학대 사건이 발생했다. 맨발로 집 앞 편의점까지 도망친 아이를 직원이 보호하고 경찰에 인계했다.

편의점 점장은 학대 아동이 안심하고 대피하며 보호받을 수 있는 공공의 역할을 강화하겠다고 인터뷰했다. 화가 나고 마음 아픈 뉴스지만 세상의 관심이 아이들을 향하고 있어서 다행이다.

아이를 낳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 이 땅에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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