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엊그제 같기만 하다. 하루 종일 누워서 팔다리만 꼬물대던 아이가 걷고 말하고 감정 표현도 거침없이 하는 모습을 보며 깜짝깜짝 놀란다.
모든 것이 서툴고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던 우리에게 던져진 아기. 출산 하루 전날 새벽에 인터넷으로 수많은 후기를 검색해서 읽고 또 읽어도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마음의 준비를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분만을 앞두고 두려움을 견딜 수 없었다.
우리는 수중분만을 하기로 했다. 출산 예정일을 일주일 앞둔 날 태아의 체중이 3.1킬로그램을 기록했다. 평균적인 몸무게지만 의사는 유도분만을 권유했다. 초산이자 노산으로 수중분만을 하기에 아기가 너무 크다는 이유였다.
친구들의 조언도 그랬고 인터넷을 검색해봐도 유도분만에 대해선 좋은 말을 보기가 힘들었다. 가장 무서운 건 만약 유도분만에 실패했을 경우 수술을 통해서만 아기를 꺼낼 수가 있다는 얘기. 하지만 남편과 의사의 설득, 내심 출산의 두려움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예정일을 3일 남겨놓고 유도분만을 결정했다.
입원 첫날은 촉진제를 맞아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배가 아팠지만 진통이라고 하기에는 아주 미세한 통증이었다. 떨리는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담당 의사는 오늘 안에 아기가 꼭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이를 낳는 것은 여자라면 누구나 하는 일이니 겁먹을 필요 없다고 마음을 다독였다. 그렇게 고통이 클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다.
아침 7시 촉진제를 맞고 8시간 이상 진통을 느꼈다. 전날보다 훨씬 아파서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분만실에 누워 있으면 다른 산모들의 비명소리 때문에 더욱 공포스러워진다.
오후 3시가 되자 간호사는 자궁이 5센티미터 열렸다고 했다. 본격적인 진통이 시작될 거라는 말에 덜컥 겁이 났다. 진통 주기가 빨라지면서 제일 견디기 힘든 건 내진이었다. 내진이라는 말도 그때 처음 알았다. 간호사 손이 자궁 안을 휘저을 때 나도 모르게 발길질을 할 뻔했다. 어느 순간 허리를 곧게 펼 수 없어서 똑바로 눕지도 못했다. 옆으로 누워야 태동 검사가 가능한데 이를 악물어도 몸이 안펴졌다. 태동 검사는 태아의 상태를 확인하고 위험한 경우 응급수술을 진행하기 위한 조치다. 나는 결국 이성을 잃고 태동 검사를 거부했다. 그렇게 두 시간이 흘렀다.
자궁이 1센티미터 더 열리고 나서야 수중분만을 위해 입수할 수 있었다. 의사는 “아기 머리가 보이면 수중분만을 시작할 수 있는데 이미 시간을 지체해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양수가 터지지 않아서 간호사가 인위적으로 터뜨렸고 엄청난 양의 뜨거운 물이 흘러나왔다. 만삭이던 배가 푹 꺼져버렸다.
물속에서의 두 시간을 다시 떠올리면 기억하기 싫을 만큼 끔찍한 고통이었다. 수중분만을 하면 무통주사를 맞을 수 없다는 사실도 입수 직전에 알았다. 물속에서 잠들었다 깼다를 수없이 반복했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출산이 진행됐다.
수중분만이 3시간 이상 지속되면 아기와 산모 둘 다 위험해질 수 있다. 우리는 수중분만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의사는 분만대 위로 올라가자고 했다. 나는 모든 것을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됐다. 그런데 분만대에 오르자마자 아기가 머리를 쑥 내밀었다. 신기하게 느낌이 왔다.
‘아기가 나오는구나!’
기적 같은 기분이 드는 동시에 온몸이 찢기는 고통이 느껴졌다. 아기의 머리가 나오면 다 끝인 줄 알았는데. 힘이 다 빠진 상태라 어깨가 나오지 못했다. 의사는 아기의 어깨를 잡아당겼고 마침내 분만이 끝났다. 남편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보다 먼저 출산한 친구들은 “아기가 태어나면 그때부터 헬이야, 배 안에 있을 때가 제일 편한 거야”라며 겁을 줬다. 그렇지만 출산 직후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몸 구석구석 아픈데도 ‘살았다’는 안도의 마음이 들었다.
2년 후인 2017년 9월 1일 오후 12시 20분. 우리는 다시 수중분만에 도전했다. 그리고 마침내 성공했다. 분만 이튿날까지 얼떨떨하고 고통이 가시지 않았지만 그날의 감동은 잔잔히 남아 가슴을 울린다.
일생의 마지막 출산이 될 것이기에…. 우리 가족에게 특별한 추억을 만들자는 마음에서 다시 수중분만을 결심할 수 있었다. 하나 마음에 걸린 건 첫째 율이가 정서적으로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는 우려였다. 율이는 막 22개월에 접어든 아기였다. 출산 과정이나 동생의 존재를 이해할 만한 나이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의사는 아이에 따라 받아들이는 감정의 상태가 다르지만 율이의 경우 문제가 없을 거라고 안심시켰다. 물속에서 한 시간 반의 진통 끝에 둘째가 세상에 나왔다. 출산 자체는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지만 수중분만의 기억은 때때로 떠올려도 뭉클하다. 포기하고 싶던 순간 기적적으로 나와준 아기와 긴 고통의 시간을 함께 견딘 남편, 동생의 탄생을 신비로운 표정으로 바라보던 율이. 인생 전체를 통틀어 이보다 특별할 수 있는 순간이 있을까. 엄마와 아빠 그리고 언니가 함께 낳은 둘째 솔아, 우리 가족에게 온 걸 환영한다. <아이 가져서 죄송합니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