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향 Jan 08. 2021

이 땅의 모든 정인이를 지켜주세요

2017년 학대 신고사건 이후

  2017년 9월 4일.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는 둘째 솔이를 낳고 퇴원한 바로 다음날이었기 때문이다. 생후 나흘 된 아기는 밤낮없이 울어댔다. 첫째 율이도 그때 겨우 22개월이었다.

  두 아이가 울고 보채고 떼를 쓰는 통에 우리 부부는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다. 네 식구가 밤잠도 제대로 못 잤고 배고픔마저 느껴지지 않는 전쟁 같던 날의 이른 아침에 하필 초인종이 울렸다.

  

  "아동학대 의심신고가 접수돼서 왔습니다. 별일 없으시죠?"


  아동학대라니? 기분이 나쁜 걸 떠나 우리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는 데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 무렵 뉴스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아동학대 뉴스가 터져 나왔다. 어린이집은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아동 인권 교육을 실시했다. 주위에서 일어나는 학대 의심 상황을 적극적으로 신고해야 희생되는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더 살릴 수가 있다고 가르쳤다.



  부모가 된 이후부터 아동학대 뉴스는 더 이상 남의 얘기로 들리지 않았다. 내 아이의 친구일 수도,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사이 목숨보다 소중한 내 아이가 희생자였을지 모르는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였다.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미국이나 유럽에도 아동학대 사고가 일어난다. 하지만 선진국의 피해아동들이 살 수 있는 이유는 이웃들의 적극적인 신고와 강력한 처벌, 권한 있는 행정명령 덕분이다.



  수차례의 신고에도 당국의 잘못된 대응과 조치 탓에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었던 정인이. 이 작고 힘없는 한 생명의 상실로 인해 대한민국은 며칠째 눈물바다가 됐다. 일을 하다가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미소와 그 뒤로 숨겨진 피투성이가 됐을 몸과 마음의 잔상은 대체 언제까지 일상을 괴롭힐까.

  일과를 마친 저녁엔 남편과 만나 오늘은 어떤 새로운 뉴스를 들었는지 공유했다. 절망적인 소식을 들을 땐 또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는 우리에게 율이가 물었다. 엄마 아빤 요즘 왜 그렇게 슬퍼?


  "슬픈 뉴스를 봤어. 아빠와 뉴스 얘기를 하다가 속상해서.. 너도 무슨 내용인지 알고 싶니?"

  "응."

  "세상에는 마음이 착하고 예쁜 사람들이 많지만 힘이 없는 약자를 해치는 사악한 사람도 있어. 얼마 전에 율이 솔이처럼 귀여운 한 아기가 엄마에게 괴롭힘을 당하다가 아파서 죽게 됐어. 그래서 온 나라가 슬픔에 빠졌단다. 어른들은 아기의 죽음을 추모하고 있어. 우리가 이렇게 행복한 가정에서 만날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이야. 그렇지?"


  천안 초등학생 여행가방 감금 살해, 인천 형제 화재 사망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후에도 제도는 여전히 바뀌지 못했다.

  정인이 사건을 담당한 경찰에게 대중의 분노가 확산되고 있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권한 역시 힘이 없었을 것이다. 4년 전 우리 집 초인종을 눌렀던 경찰관들의 얼굴에서 무안함에 어쩔 줄 모르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아동학대 의심신고가 접수된 상황에선 최소한 아이들의 몸 상태를 살피고 보호자와의 관계를 확인하고 집안에 문제 정황이 없는지 조사할 일이 많았지만 경찰들은 현관문 앞에 서서 몇 마디를 하고 돌아간 게 전부였다.



  만약 정인이를 입양한 부모들이 조사 결과 아동학대범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담당 경찰관은 민원에 시달렸거나 명예훼손 등의 법적 책임을 져야 했을지 모른다.

  아동학대로 인한 참사를 막는 방법은 사회의 인식 변화도 필요하지만 제도의 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학대 신고가 접수됐을 때 지체 없이 아동을 보호자로부터 분리할 수 있는 행정 권한, 만약 학대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졌을 때 그 누구의 잘못이나 책임을 추궁하지 않는 공권력의 힘, 이 땅에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을 지키는 것이 단지 한 가정의 일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책임임을 모든 어른이 공감하는 인식 어느 것 하나 빠질 게 없다.



  우리는 또 잊고야 말 것이다. 차마 눈으로 확인할 수가 없어서 보지 못했던 정인이의 영상을 잊어버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럼에도 정인이를 최대한 천천히 보내주기 위해 기록한다.

  살면서 우리가 운 좋게 손에 쥔 행운들은 생각해보면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 만약 우리에게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면 정인이가 내 딸이 됐을지 모른다. 혹시 모를 사고로 내가 잃어버린 아이가 어느 집의 입양아가 되었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내 아이 네 아이 가르지 않고 같은 마음으로 아이들의 행복과 안전을 지켜줄 든든한 울타리가 될 의무가 있다.



  정인아, 미안해. 네가 견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해서. 그곳에선 고통받지 말고 엄마품처럼 잠들고 배불리 먹으며 평안하길.


#정인아미안해 #아이가져서죄송합니다 #아이의인권을지켜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의 눈으로 본 세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