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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로하다 May 09. 2020

출근길의 흐름에 따라...

1인 출판사 사장의 출근길

- 집 근처 여고 앞, 지금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레코드점이 하나 있다. 아니, 있었다. ‘뮤직뱅크’라는 낯익고도 너무 멀게 느껴지는 곳이다. 

KBS 뮤직뱅크는 98년부터 지금까지 방송되고 있으니, 이 이름을 추억하는 기분은 세대마다 다를지 모르겠다. 이 레코드점 자리에 카페가 들어섰다. 마카롱을 파는 카페… 머랭쿠키였나? 흑당라떼, 어쩌면 달고나커피인지도 모르겠다. 

레코드점에 갈 일이 없었으면서, 문 닫으니 괜히 아쉬워졌다. 이상은 CD라도 있으면 살 걸 그랬나. 어차피 CD를 돌릴 플레이어도 없구나. 혹시 예전 흔적이 있을까 싶어 검색해 봤는데, KBS 뮤직뱅크만 잔뜩 나와서 결국 영영 가게 내부를 보지 못하게 됐다.


- 역시 학교 옆 서점 ‘현대서점’도 문을 닫았다. 이사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초등학생 딸에게 줄 노트 한 권을 샀었다. 참고서와 내가 잘 모르는 잡지를 진열하고 팔던 곳이다. 학교 근처 버스정류장 앞이니 목은 좋은 편이었지만 저렴하고 배송 빠른 온라인 서점에 밀리고, 코로나로 인한 등교 연기에 치여서 결국은 문을 닫은 모양이다. 현대서점은 인터넷에서 검색이 잘 되는 편이다. 보통 ‘이 서점 골목으로 들어가면 맛집이 나온다’는 식으로, 목이 좋으니 근처 다른 장소를 찾기 위한 이정표 정도로(랜드마크도 아니고) 설명한다.


- 오늘은 토요일, 사무실에 출근하며 이곳들을 지나왔다. 1인 출판사 사장에게 주말은 없다. (그래서 다행히 월요병도 없다.) 내 회사는, 아니 나는 어떻게 남게 될까? 평소엔 생각도 않던 점집에라도 가보고 싶어진다. 복채는 얼마나 들지? 그런데 점쟁이가 그거 망한다고, 지금 당장 그만두라고 하면 그만둘까? 그럴리가.


- 출판은 사양산업이라는데, 나는 그걸 15년째 해오고 있다. 내 회사도 언젠가 망하겠지만, 우선 이 일로 먹고살아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앞서 말한 곳은 최소 15년은 이 자리를 지켜온 가게들이다. 나도 앞으로 15년은 더 하고 싶다.


- 답이 뭐 있겠나. 내가 잘해야 앞으로 잘되는 거겠지. 


- 늙은 독수리는 스스로 부리를 깨고 환골탈태한다고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여러 책에 등장하지만 거짓말이다. 이 거짓말이 와닿는 이유는 그럴듯해서다. 이 이야기가 거짓말이라고 해서 새로운 도전에 대한 의미가 퇴색하거나 변화에 대처할 필요성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우화 정도로 받아들이면 될 일이다.

(즐거운 시간은 빨리 지나가고 힘든 시간은 느리게 지나가는 게 상대성이론이라며, 내게 진지하게 설명한 사람도 있다. 슬프게도 그 사람은 현직 출판업자다. 그래서인지 그 출판사에서 나오는 책 꼬라지가… 으흠, 그냥 나나 잘하자.)


- 그런데 점쟁이는 망한다고 할 거 같다. 

목표를 정하자. 망하지 않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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