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잘하는 팀은 ‘명령’이 아닌 ‘프롬프트’로 움직인다
"전사적으로 AI를 도입하여 업무 효율을 극대화해야 합니다. 모든 임직원은 AI를 자신의 업무에 적용할 방안을 적극적으로 강구해주시기 바랍니다."
CEO의 힘찬 선언과 함께 타운홀 미팅이 끝났다. 직원들은 'AI 시대'라는 거대한 담론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로 돌아온다. 그리고 30분 뒤, 담당 임원의 주재로 열린 회의실. 방금 전까지 AI 혁신을 외치던 그는 팀원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 주력 제품인 '오메가-3' 매출이 요즘 좀 부진하네요. 활성화 전략 좀 짜보고, 원가 구조도 개선할 방안이 있는지 검토해서 보고해주세요."
이 장면의 기묘한 아이러니를 눈치채셨는가? 리더는 팀원들에게 AI를 사용하라고 독려하지만, 정작 자신의 지시는 AI가 가장 싫어하는 방식, 즉 모호하고, 맥락이 없으며, 변수가 통제되지 않은 ‘나쁜 프롬프트’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 결과는 팀원들의 끝없는 밤샘과 보고서 수정, 그리고 "이거 아닌데..."라는 리더의 실망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모호한 지시를 받은 팀원들의 머릿속은 즉시 풀리지 않는 방정식으로 가득 찬다. '매출 부진'의 원인은 무엇인가? '활성화 전략'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원가 구조 개선'과는 어떤 우선순위를 가지는가?
결국 팀원들은 되물을 수밖에 없다. "그걸요?", "제가요?", "왜요?".
많은 리더들은 이 질문을 도전이나 불만으로 여기지만, 이는 AI 시대의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합리적인 '쿼리 프로토콜(Query Protocol)'이다. AI가 불분명한 명령을 받으면 오류를 뱉어내거나 되묻는 것처럼, 팀원들 역시 과업의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 리더에게 오류 수정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리더가 AI 시대에 진정으로 변해야 할 지점은 바로 여기다. 팀원에게 AI를 쓰라고 말하기 전에, 리더 자신이 먼저 AI를 '생각의 파트너'로 사용해야 한다. 팀원에게 모호하게 지시하기 전, 리더가 먼저 AI에게 이렇게 물어봤다면 어땠을까?
[리더가 AI에게 던지는 질문] "나는 우리 팀에게 '오메가-3' 제품의 매출 부진을 타개하고 수익성을 개선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싶어. 팀원들이 혼란 없이 명확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내가 내려야 할 업무 지시(Project Brief)의 초안을 전문적인 '프로덕트 오너'의 관점에서 작성해줘. 목표, 과업, 역할, 제약 조건 등을 포함해서."
아마 AI는 리더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되물으며, 막연했던 생각을 구체적인 프롬프트로 다듬어 주었을 것이다.
"매출 부진의 기준이 되는 구체적인 데이터가 있습니까? (예: 전년 동기 대비 -15%)"
"달성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매출 목표와 수익성 목표는 무엇입니까? (예: 매출 10% 반등, 이익률 3%p 개선)"
"이 과제에 투입할 수 있는 예산과 시간의 한계는 어느 정도입니까? (예: 예산 1억, 기한 3주)"
AI와의 짧은 대화만으로도, 리더는 자신의 머릿속에 있던 막연한 위기감을 팀원들이 즉시 실행할 수 있는 명확한 과제로 변환시킬 수 있다.
아래는 AI의 도움을 받아 재설계된 '좋은 프롬프트'다.
[배경 및 의도] "3분기 실적 분석 결과, 주력 제품 '오메가-3'의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5% 하락했고, 특히 온라인 채널에서의 이탈률이 높게 나타났습니다. 4분기 목표는 매출을 10% 반등시키고, 동시에 제품의 영업이익률을 현재의 12%에서 15%로 3%p 개선하는 것입니다."
[역할 및 관점] "이 과제에서 우리 팀은 제품의 생애주기 전체를 책임지는 '프로덕트 오너(Product Owner)'의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마케팅과 생산, 양쪽의 데이터를 모두 분석하여 단기적 매출 증대와 장기적 수익성 강화 사이의 최적점을 찾아주세요."
[과업 및 범위] "매출 활성화를 위해, 2030 여성 고객의 재구매율을 높이는 CRM 기반의 프로모션 전략을 구체적으로 제안해야 합니다. 동시에, 원가 구조 개선을 위해 현재 공급받는 원료의 대체 소싱처를 2곳 이상 발굴하고, 포장재를 친환경 소재로 변경했을 때의 원가 및 마케팅 효과 변동 시뮬레이션 결과를 포함해주세요. 두 과제는 상호 연결하여 평가합니다."
[제약 조건 및 형식] "매출 활성화 전략에 투입 가능한 마케팅 예산은 최대 1억 원입니다. 3주 후까지 두 가지 과제에 대한 종합 전략 보고서를 제출하되, 예상 ROI와 손익 개선 효과를 반드시 포함한 15장 내외의 PPT로 작성해주세요."
전자가 팀을 망망대해에 표류하게 만든다면, 후자는 명확한 목적지와 항해 지도를 함께 제공한다. 어떤 프롬프트가 팀의 밤샘을 줄이고 혁신적인 결과물을 가져올지는 자명하다.
AI 시대의 진정한 리더십은 'AI를 쓰라'고 말하는 것을 넘어, AI처럼 명확하게 소통하고, AI를 활용해 자신의 생각을 명료하게 만드는 과정을 팀에게 직접 보여주는 것에서 시작된다. 리더의 역할은 더 이상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관이 아니라, 조직의 목표를 가장 정교하고 효율적인 '프롬프트'로 설계하여 팀의 잠재력을 100% 끌어내는 '치프 프롬프트 엔지니어(Chief Prompt Engineer)'가 되어야 한다.
팀원들의 밤샘과 보고서 수정을 탓하기 전에, 리더는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야 한다. "오늘 나의 지시는 AI가 즉시 실행할 수 있을 만큼 명확했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가장 빠른 길은, 지금 당장 AI를 켜고 자신의 생각을 입력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