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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본 것은 '보랏빛 소'일까?

AI가 만들어준 새로움은 과연 어디까지 '리마커블'이라 부를 수 있을까?

by Saul

요즘 SNS를 열면 ‘어? 이거 어디서 봤는데?’ 하는 순간이 참 많다. 비슷비슷한 챌린지 영상, 분명 AI가 그렸을 화려하지만 왠지 모르게 공허한 그림들, ‘AI로 월 1000만원 벌기’를 외치는 광고까지. 알고리즘은 마치 내 취향을 다 안다는 듯, 계속해서 익숙하고 자극적인 콘텐츠를 눈앞에 가져다 놓는다. 이건 마치 AI라는 강력한 붕어빵 기계로, 내용물만 살짝 바꾼 붕어빵을 무한정 찍어내는 것 같다. 모두의 시선을 단 1초라도 더 끌기 위한 경쟁만 남은 것처럼.


이런 현상을 보며, 세스 고딘의 '보랏빛 소가 온다'라는 책이 떠올랐다. 모두가 비슷한 무기를 들고 비슷해져 가는 이 시대에, ‘보랏빛 소’는 뭘까? 그리고 우리는 AI를 어떻게 써야 그걸 만들 수 있을까?


AI는 최고의 '평균' 전문가

솔직히 AI는 정말 뛰어난 ‘갈색 소’ 만들기 전문가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AI는 마법사가 아니라, 세상에 있던 수많은 데이터를 먹고 가장 그럴듯하고 무난한 ‘평균’을 만들어내는 데 선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이 프롬프트만 입력하세요" 같은 말들은 사실 조심할 필요가 있다. 그건 창의적인 사고 과정을 비효율적으로 보이게 하고, 결국 모두가 같은 정답을 베껴 쓰게 만들고, 실력은 좋아지는데 개성은 사라지게 만드는 거다. 세스 고딘이 그렇게나 경고했던 ‘안전한 길’이 바로 이런 것이다.


"와, 내가 이렇게 잘했나?" 편리함이 만드는 착각

사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 자신일지도 모른다. AI가 키워드 몇 개만으로 순식간에 뽑아내는 세련된 결과물을 보면, “와, 내가 이렇게 잘했나?” 하는 뿌듯한 착각에 빠지기 쉽다.

AI가 주는 편리함과 속도에 감탄한 나머지, 내가 만든 결과물이 정말로 특별한지, 다른 사람에게 가치가 있는지 냉정하게 돌아보는 걸 잊어버리는 거다. AI가 할 수 있는 것에 감탄하다가, 정작 내가 해야 할 일을 놓치는 셈인데, 나는 이게 ‘보랏빛 소’라고 뿌듯해하지만,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저 수많은 갈색 소 중 하나일 뿐인 슬픈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AI 시대, 나만의 '보랏빛 소'는 뭘까?

그렇다면 이 뿌연 안개 같은 시대에, 진짜 ‘보랏빛 소’는 어떤 모습일까? 그 정답이 ‘결과물’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만드는 ‘나’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나만의 ‘시선’과 ‘선택’(취향)이다. 수많은 선택지 속에서 나만의 기준으로 고르고, 다듬고, 배열하는 그 감각. 그게 바로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나만의 보랏빛 소가 된다.


둘째, ‘남다른 질문’을 던지는 힘이다. AI가 ‘A급 답변’을 내놓는다면, 우리는 ‘S급 질문’을 던져야 한다. 모두가 “어떻게 하면 더 빨리 만들까?”를 물을 때, “왜 이걸 만들어야 하지? 이게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지?”라고 묻는 것처럼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질문이야말로 최고의 무기다.


셋째, 의미를 ‘연결’하는 능력이다. AI가 흩어진 구슬들을 찾아준다면, 그 구슬들을 꿰어 아름다운 목걸이를 만드는 건 결국 사람의 몫이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을 연결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시대의 흐름을 읽어 나만의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 이게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진짜 창의성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AI, '비서'가 아니라 '똑똑한 동료'로 만들기

이런 능력을 키우려면 AI를 대하는 태도부터 바꿔야 된다. AI를 내 일을 대신해주는 ‘만능 비서’가 아니라, 내 생각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똑똑한 동료’이자 ‘스파링 파트너’로 만들어보는 것이다.

AI에게 정답을 구하는 대신, “내 아이디어에 약점은 없어? 너라면 어떻게 반박하겠어?”라고 되물으며 내 생각을 시험해보고. AI가 내놓은 10개의 평범한 아이디어를 보며 그 중 하나를 고르지 말고, “음, 다 별로네. 이것들이 놓치고 있는 것은 뭘까?”하고 고민하는 데 진짜 에너지를 써야 한다. AI의 답변에 그저 만족하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왜?’라고 물으며 생각의 깊이를 파고드는 훈련을 해야 한다.


영혼은 프롬프트로 입력할 수 없다

AI가 쏟아내는 콘텐츠의 홍수를 보며 ‘보랏빛 소’가 왜 중요한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다만, 그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결과물에서, 그것을 만드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으로 옮겨온 것이다. 클릭을 유도하는 자극적인 껍데기를 넘어선 진정한 울림, 평균을 넘어선 나만이 줄 수 있는 가치. 그것이야말로 AI가 만든 안개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빛날 우리 시대의 ‘보랏빛 소’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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