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 무한 요리 지옥에서 발견한 '알로에 르네상스'
최근 방영된 <흑백요리사 시즌 2>를 보며 전율을 느꼈습니다.
최고의 자리는 결코 우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그들의 칼끝과 불판 위에서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제 뇌리에 깊게 박힌 장면은 '무한 요리 지옥'이었습니다. 시즌 1의 두부에 이어 이번 시즌의 주제는 '당근'이었습니다. 당근이라니. 너무나 대중적이고, 냉장고를 열면 굴러다니는, 누구나 한 가지 요리쯤은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그 흔한 식재료 말입니다.
하지만 셰프들의 손을 거친 당근은 더 이상 우리가 알던 당근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당근을 해체하고, 비틀고, 재해석하여 심사위원의 미각을 깨우는 '작품'으로 승화시켰습니다.
맛은 기본이거니와, 그 접시 위에는 요리사의 철학과 창의성, 그리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선명하게 담겨 있었습니다.
그 장면을 보며 저는 제가 몸담고 있는 이곳, '알로에 회사'(유니베라)를 떠올렸습니다.
저희 회사는 알로에로 제품을 만듭니다. 최근 동료들은 알로에를 주제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알로에는 당근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소재이기 때문입니다.
"알로에? 그거 피부에 바르는 거 아니야?" "몸에 좋은 건 알지. 예전에 많이 먹었어."
누구나 알지만, 그래서 더 궁금해하지 않는 소재. 게다가 엄격한 심의 기준이라는 틀 안에서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매출까지 연결하는 일은, 마치 흔한 당근으로 미슐랭 심사위원의 입맛을 사로잡아야 하는 '무한 요리 지옥'과도 같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방송 속 셰프들을 보며 해답을 얻었습니다. 그들은 '뻔한 재료'를 탓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 재료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꿨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그 '재해석'과 '창의성'입니다. 알로에라는 고정관념의 껍질을 벗겨내야, 비로소 대중들이 다시 관심을 가질 테니까요. 저는 우리 회사의 기획과 마케팅이 파인 다이닝의 셰프들처럼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는 섬세한 손길로 알로에의 본질은 살리되 형태를 해체하여 전혀 새로운 미식의 세계를 보여주고, 누군가는 강렬한 불맛을 입히듯, 안전하고 순한 이미지의 알로에를 도발적이고 매력적인 아이템으로 변모시키며, 누군가는 달콤한 디저트처럼, 알로에를 통해 예상치 못한 즐거운 경험을 선사해야 합니다.
최근 회사의 역사를 엮어 알로에 콘텐츠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우리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우리가 고객에게 내어놓으려는 이 접시가, 혹시 '건강하니 무조건 드세요'라고 강요하는 심심한 맛의 요리는 아닐까?
세상에 수많은 알로에가 있지만, 우리는 그중에서도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알로에는 '산업통상부 주관 23년 연속 세계일류상품'에 선정되는 대기록을 달성했고, 비닐하우스에서 키우는 알로에가 아닌 멕시코의 뜨거운 햇볕을 견디며 자란 <태양의 알로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최고의 재료로 그에 걸맞은 '미슐랭 스타'급 레스토랑의 품격을 갖추고 있는지, 아니면 그저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국밥집에 머무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가 알로에를 '누구나 아는 흔한 소재'라고 규정하는 순간, 우리의 사고는 그 틀 안에 갇히고 맙니다.
회사 업무를 그저 위에서 시켜서 하는 일로 여기면 우리는 도구로 쓰이고 말 뿐입니다. 하지만 흑백요리사의 셰프들을 보십시오. 그들에게 주어진 리소스(당근)는 똑같았지만, 결과물은 천차만별이었습니다. 그 차이를 만든 것은 '나만의 개성'과 '치열한 고민' 그리고 그에 걸맞는 '실력'이었습니다.
주어진 재료를 활용해 나만의 창의성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회사의 자산이 되는 동시에 내가 이 조직에 남긴 유산이 됩니다.
과거 대한민국에 알로에 붐이 일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사람들이 다시 알로에에 열광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는 5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오직 알로에 하나만을 바라보며 진정성 있게 걸어왔으니까요.
올해 우리 회사의 슬로건은 '알로에 르네상스'입니다. 르네상스(Renaissance)란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기존에 존재하던 위대한 가치를 재해석하고, 거기에 새로운 기술과 시대정신을 부여하여 창의적인 혁신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방송 속 셰프들이 저마다의 접시 위에서 당근의 르네상스를 열었듯, 이제 우리가 응답할 차례입니다. 우리가 가진 50년의 헤리티지에 어떤 새로운 가치를 더해 '알로에의 르네상스'를 열어갈지, 가슴이 뜨거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