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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INA Mar 18. 2016

올빼미의 없음

졸업논문을 쓰려고 예전에 써둔 레포트를 꺼냈다.

    남들보다 길었던 학교생활을 마치려고 한다. 다른 것은 다 해두었고, 중요한 건 졸업논문이다. 학부생활중 배수아 작가님의 소설을 주제로 주석이 단 한 줄도 존재하지 않는 기이한 레포트를 네 번이나 썼다. 인용한 '남의 말'이라고는 소설책 뒷쪽에 적힌 서평뿐이다. 나는 전성태 소설가님의 평을 가장 좋아하는데, 




배수아 작품 어때? 하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난해하고 지루하여 못읽겠다는 독자의 불평을 들을 때 나는 그야말로 우리 문학의 진정한 자존심이라 여겼다. 배수아 소설이 바깥으로 넘어갔다고 하는 소리에도 나는 그가 소설 이외의 것을 써본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문학 바깥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배수아의 소설에는 수렴되어 있을 뿐이다.


라는 평이다. '우리 문학의 진정한 자존심'이라는 말이나 '문학 바깥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배수아의 소설에는 수렴한다'는 그의 평에 나는 무릎을 치면서 술을 마셨던 것 같다. 어쨌든 레포트를 꺼냈다.




    3년 전, 레포트를 쓰면서 나는 '이 글을 배수아 작가님께서 볼 일이 생긴다면 나는 씹덕사해버릴지도 몰라'라고 생각했다. 주석을 달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배수아 전문가다! 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근데 졸업논문의 형식으로 쓰려면 어떻게든 주석을 달기는 해야 한다. 나는 주석을 사용하는 레포트를 별로 선호하지 않는데, 그런 레포트들로도 점수는 잘 맞았다. 어찌 되었든 말을 잘 섞어가지교 교묘하게 잘 때울 수 있으니까. 그런 자신감으로 썼던 레포트. 

    작년 작가님과 만날 기회가 생겼을 때 챙기려고 했었는데, 어쩐지 내 실력에 부끄러워져서 들고가지 않았다. 의자에 앉아있는데도 공중에 부유한 느낌이 들었던 그 술자리에서, 내 해석을 작가님께서 웃으며 재밌게 들으시는 모습을 보고 후회했다. 논문을 가져갔어야 했어! 그런데 또 미친 내가 페이스북으로 작가님께 졸업논문을 쓸 건데 작가님이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약속을 잡았다. 그래서 이제는 무조건 존나 멋지고 힘있고 '잘' 써야 한다.(잘 쓰는 건 제일 중요하다. 느낌표 땅땅.)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잘 써서 깜짝 놀랐다. 3년 전의 나, 이렇게 글을 잘 썼었나...? 싶을 정도로. 사실 그때 진짜 거의 일주일 밤낮으로 고민하면서 썼으니까. 주석을 달지 말자고 결심하고 썼으니, 단편소설 창작하는 느낌으로 썼다. 이 레포트를 배수아 작가님께서 볼 기회가 생기실지도 모르니 진짜 열심히 썼다.

    내가 내 글에 놀랐는데 뭐 이런 것들이다.



결국 소설가라고 명하는 것은 글을 쓰는 그 자신이다. 소설가이기에 문학 내에서 활동하고, 소설가이기에 그는 소설을 쓰며, 소설가이기에 그는 소설 속의 인물을 만들어내고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런 글이나,



그녀가 소설가이므로, 아무리 그녀의 소설 속에 그녀의 이름이 등장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녀가 만들어 낸 인물일 뿐 그녀가 아니다.



    이런 구절이나,




주어진 중심적인 서사와 그를 연결하는 그녀의 소설은 '마인드 맵'을 연상하게 한다. 하나의 사건은 절대 그 하나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그 사건을 연상하게 하는 어떤 이야기는 하나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이야기는 이야기를 물고, 물린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를 문다. 연결된 그 이야기는 하나의 주제 속에 묶이지만 결코 하나의 결과를 향해 달려가지는 않는다.



    같은 구절들. 요즘 초서의 켄터베리 테일을 배우는데, "사람 초서-작가인 초서-소설에 등장하는 초서"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해야한다고 강의하시는 것을 들었다. 당연한 얘기 아니야? 라고 생각했는데, 그걸 내가 레포트에 써놨었다니. 미친 일이다.




    곧 데뷔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감이 오는 요즘, 운명의 수레바퀴는 어긋나는 곳 없이 빠르게 돌아간다. 배수아 작가님을 찬양하는 글을 써서 등단이 하고 싶다고 지껄였던 어릴 적의 나와 만난 순간, 최근 일어난 일들은 전부 운명이 아닌가, 하는 마음에 사로잡혔다. 어떤 운명같은 계기로 나는 당신에게 사로잡혔고, 만날 것이고, 이제 우리는 같은 종교를 향유하게 되겠다고. 나는 그것을 가능토록 만들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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