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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루가 Mar 31. 2016

#2. 엘레스

파슈파티나트 화장터 아이들의 삶과 죽음의 이야기




(죽음의 집으로 임종을 앞둔 환자를 실어온 얨블런스)


파슈파티나트 화장터 근처에는 병원이 하나 있어요.

이 병원은 아주 특별한 병원이지요. 바그마티 강에서 화장되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이 죽음을 기다리는 곳이죠. 그래서 병원 이름도 '죽음을 기다리는 집' 이죠.

아주 간혹 병이 회복되어 돌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어서 병원 앞을 흐르는 강물에 재가되어 뿌려져요.

재가되어 뿌려지기까지의 시간은 고작 네다섯 시간...

일단 누군가가 죽으면 사람들은 아주 유연하고 민첩하게 보내는 자를 위한 의식을 진행해요.

그토록 가족의 죽음을 두려워했지만 정작 죽음의 순간이 오면 마치 마음의 준비를 이미 끝낸 듯 병원 밖으로 이동하지요. 그리고 죽은 자의 얼굴에 강물을 적시고 붉은 가루를 뿌리고 기도를 올리지요.

이곳에는 다른 나라에 일자리를 얻으러 나갔다 병을 얻어 돌아오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어요.

그중에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가족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관에 담겨 비행기에 실려 이곳 파슈파티나트로 오기도 해요. 그래도, 그나마 그렇게 오는 사람들은 축복받은 거예요.

마지막 소원 하나는 이룬 거니까요. 슬프게 울고 있기는 하지만 마지막으로 가족들을 만났으니까요...


(외국에서 죽은 노동자의 시신을 담아 온 관)



두바이, 중국, 사우디, 한국... 다른 나라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그 나라들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다른 나라는 혹시 비행기가 아닐까요?

두바이는 두바이 비행기, 중국은 아주 크다니까 엄청나게 큰 중국 비행기...

비행기 안에는 집도 있고 공원도 있고, 강아지를 키울 수 있는 마당도 있겠죠?

어느 날 동네 형이 제 얘기를 듣고는 머리를 쥐어박으며 '지도'라는 것을 보여주었어요.

그제야 깨달았죠. 나라는 비행기 안에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난 아직도 비행기가 머리 위를 날아갈 때마다 이건 러시아, 

저건 두바이라고 중얼거리게 돼요.

비행기는 나에겐 여전히 다른 나라이거든요...

언젠가 학교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된다면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어요. 

나라를 조종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도 시킬 수 있으니 그는 분명 하늘의 왕일 거예요.

사실 내가 살고 있는 여기 네팔이라는 곳도 어떤 나라인지, 크기는 얼마나 되는지 짐작할 수 없어요.

내가 아는 세계는 이곳 파슈파티나트 화장터 주변뿐이니까요..



두바이에서 병에 걸려 돌아온 아들을 보살피는 할머니 한 분을 알고 있어요.

할머니는 늘 병원 계단에 앉아 담배를 피우시죠.

그녀가 밥을 먹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 종일 아들 곁을 지키다 아들이 잠들어 있을 때면 강가로 나와 기도를 하거나 오랜 시간을 들여 천천히 담배를 태우시죠. 

담배 연기는 마치 시간이 사라지듯 느리게 공기 속에 흩어져요. 

사람들은 왜 마음이 힘들면 자신의 몸을 망가뜨리는 걸까요?

엄마는 술로, 데이빗 형은 본드로 , 할머니는 담배 연기로..

그렇게 몸이 서서히 말을 듣지 않게 될 때야 비로소 숨을 쉴 수 있는 걸까요? 슬픔을 견딜 수 있는 걸까요?

며칠 전 형을 찾으러 고살라에 다녀왔어요. 처음에는 뿌자가 하도 형을 찾아서 할 수 없이 형을 데리러 간 거였는데 막상 가보니 그곳은 아주 신나는 곳이었어요.

모든 게 빠르게 움직이고, 위험하지만 이상한 열기로 들끓고 있었어요.


(고살라 대로에서 구걸하는 데이빗)


형에게 고살라에서 함께 생활하고 싶다고 얘기하자 아무 말 없이 텅 빈 눈으로 

‘뿌자는...?’하고 물었어요. 그곳은 너무 위험하니 오지 말라고 했어요.

하지만 내일쯤 다시 한 번 고살라에 가 볼 거예요. 거긴 이곳보다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있고 무엇보다 살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에요.

죽은 사람들과 그들이 사라져 가는 연기, 그리고  흩어지는 검은 재는 이제 모두 다 지겨워요. 냄새는 또 얼마나 지독한데요...

고살라는 돈 벌기에도 아주 좋은 곳이죠. 몇 번만 도로를 뛰어다니며 구걸해도 금세 몇십 루피가 손에 들어오니까요.

아무도 나를 막을 수는 없을 거예요.

뿌자가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뭐 어쩔 수 없잖아요. 

내가 아빠도 아닌데... 나도 고작 열한 살인데...

난 형의 눈빛에서 영웅을 보았어요. 형이 차들 사이를 뛰어다닐 때 형의 눈에서는 만화 영화에서처럼 레이저 빔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죠.

그래서 더욱 빨리 여기를 벗어나고 싶어요. 

이곳 화장터에서는 결코 영웅이 될 수 없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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