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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루가 Mar 31. 2016

#7. 청소부가 된 데이빗

파슈파티나트 화장터 아이들의 삶과 죽음의 이야기




데이빗을 만나러 가는 새벽,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골목길을 따라 내려가 보우더나트(Boudhanath:네팔 최대의 스투파(불탑)가 있는 티베트 불교의 순례지) 정문 앞 대로변에서 청소 트럭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제법 빗줄기가 거세게 쏟아져 내릴 무렵 빗속에서 쓰레기를 치우고 있는 데이빗을 발견했다. 

전날 파슈파티나트에서 보았던 데이빗은 옷도 제대로 갖춰 입고 운동화도 신어 말쑥해 보여 지금 하고 있다는 일이 재활용 쓰레기 수거 인 줄 알고 다행이다 싶었는데...



사실, 처음 데이빗을 보았을 때 빗속에 쓰레기를 맨손으로 치우고 있는 모습의 ‘그’가 설마 데이빗인 줄 못 알아봤다.

비가 내려 질척거리는 진흙바닥에 사람들이 길가에 내다 놓은 쓰레기들이 뒤섞여 더욱 불결해 보이는 오물을 그는 무표정하게 맨손으로 자루에 담고 있었다. 자연히 데이빗의 팔이며 다리 전체엔 진흙으로 범벅이 되어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단순하게 반복되는 움직임에  몰입해 있었다. 

마대 자루에 쓰레기를 담는다, 자루가 다 차면 트럭에 싣는다, 바닥에 남은 쓰레기를 비질로 쓸어 모은다... 걸어서 다음 블록으로 이동한다. 




고살라에서 본드에 취해 맨발로 뛰어다니던 아이는 이제 보우더나트 일대의 쓰레기 더미를 치우며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여전히 12살 무렵만큼이나 가늘고 앙상한 팔과 다리로... 


네팔의 쓰레기 수거 업체는 구역별로 조폭들이 관리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쓰레기를 수거하는 동안 이들을 감시, 관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일을 하는 동안에도 뒤에서 계속 ‘이거 담아라, 저기 쓸어라, 깨끗이 마무리해라’하는 식으로 끊임없이 채근하자 한 아이는 버럭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그렇게 새벽 4부터 시작되는 쓰레기 수거 작업은 오전 10시가 넘어서야 끝이 난다. 




트럭에 매달려 있는 종이 딸랑딸랑 울리면 마을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전날의 쓰레기들을 가지고 나온다. 분리수거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지 않고  마을에 쓰레기 버리는 곳이 따로 없기 때문에 각 가정에서 들고 나오는 생활 쓰레기 양은 엄청났다. 

새벽에 한번 지나가는 쓰레기 수거트럭을  놓치면 음식쓰레기며 각종 생활 쓰레기들을 집안에 쌓아 두어야 하는 곤란한 상황인지라 사람들은 새벽부터 부지런히 생활의 흔적들을 들고 나왔다. 

빗줄기는 점차 굵어져 눈을 뜨고 있기도 어려워졌지만 데이빗은 묵묵히 침묵 속에서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유독 카메라에서 얼굴을 피한 채...  


작업이 끝나갈 무렵 저녁식사를 같이하기로 약속하고 헤어지는 걸음이 비 때문인지 녀석의 뒷모습 때문인지 무겁기만 하다.





오후에 타멜(Thamel:카트만두에 있는 여행자 거리)의 한국인 식당에 미리 가서 기다리고 있으니 여러 가지 생각과 기억들이 머릿속을 지나간다. 

생각해보니 2007년 촬영 시 마지막 날 세 아이(데이빗, 알레스, 뿌자)를 데리고 가 한국음식을 처음 사 먹였던 같은 식당이었다.  아이들은 고추장 불고기와 김치 볶음밥 등을 맵다고 하면서도 정말 맛있게 먹었었다. 식사 도중 당시 네 살이던 뿌자는 피곤했던지 잠이 들어버려 내가 안고 있었던 기억도 새록새록 떠올랐다. 

해가 기우는 그림자를 바라보며 상념에 잠겨 있을 때 아침에 보았던 모습과는 다르게 깨끗이 씻고 옷을 갈아입어 말끔해진 데이빗이 나타났다. 

데이빗에게 청소하는 모습을 촬영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나가기는 했으나 시선을 회피하는 듯하던 녀석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기에 미안한 마음에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오래전에 이 식당에서 한국음식 먹었던 거 기억나니?”

하고 물었더니 수줍게 웃으며 ‘기억난다’고 했다. 전에는 실내만 있던 식당이었는데 정원식으로 넓힌 야외 테이블에 마주 앉아 식사도 주문하고 이제 성인이 된 아이에게 맥주도 한잔 권했다. 

아침에 데이빗과 함께 수거 작업을 하던 두 청년도 같이 와서 여러 종류의 한국음식을 시켜 이것저것 맛보고 맥주도 한잔 하니 녀석의 얼굴이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그동안 지내온 이야기들을 하나 둘 풀어내기 시작했다. 



 현재 데이빗은 함께 온 친구 순일(22세) 아버지의 도움으로 순일 가족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파슈파티나트(이하 '파슈'라고 하겠다.)에서 장작을 실어다 근처 벽돌 공장에 팔며 열심히 살아가는 아들친구 데이빗의 모습을 보고 선뜻 들어와 같이 살자고 제안해 주셨다고 한다. 쓰레기 수거 일도 순일의 아버지가 지인을 소개를 시켜줘서 시작하게 되었다.

보우더나트(이하 ‘보더’라고 하겠다) 일대를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치우는 일을 시작한 지 아직 한 달이 되지 않았고 새벽 4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쓰레기를 수거하고 다닌다. 

급여는 8500루피(한국 돈으로 94000원 정도) 하지만 더사인(Dashain우리의 추석에 해당하는 네팔의 가장 큰 명절 중 하나) 이후로 10500루피(약 116,000원)로 올려 주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순일의 집에서 생활하기 시작하며 순일의 아버지는 데이빗이 본드나 술에 취해 들어오면 같이 살 수 없다고 하시며 매일 집에 들어오면 입에서 본드 냄새가 나는지 확인해 보신다고 했다.   

특히 순일의 할머니가 데이빗을 많이 아껴 주셔서 

"만약 순일 아버지나 다른 사람이 너를 내쫓으면 죽어서라도 혼내 줄 테니 우리 집에서 나가지 말고 오래오래 같이 살자"고 하셨다고 한다. 


동생 엘레스는 여전히 파슈파티나트(이하 ‘파슈’)에서 예전과 똑같은 생활을 하고 있고 엄마는 알코올 중독이 더욱 심해졌다고 했다. 6년 전에도 알코올 중독 상태가 심각했던 아이들의 엄마는 파슈 사원에서 구걸한 돈으로 술을 마시고 늘 취해 있어서 아이들을 돌볼 수 없는 상태였다. 

오히려 아이들이 강에서 헤엄쳐 주워 온 돈으로 술에 취한 엄마를 깨워 사온 밥을 먹이고는 했다. 



 어느 날 엄마가 피를 토하며 쓰러 졌는데 그때 토해낸 피가 플라스틱 통 하나를 다 채울 정도였어요.  돌아가시려나 보다 싶어 겁이나 울면서 주변 어른들에게 부탁하니 택시도 잡아주고 병원에 모시고 가 무료로 응급 처치도 받게 도와줬어요. 그런데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하는 거예요.
이제 간 손상이 심해져 황달까지 왔는데도 여전히 술에 취해 사원을 돌아다녀요.
엄마를 불러도 못 알아보고 지나 갈 때도 많아요...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담담히 말하는 데이빗의 목소리에서 몸속 깊숙이 박혀있어 쉬이 드러나지 않는 통증 같은 것이 전해져 왔다.  

데이빗과 엘레스의 양아버지이며 뿌자의 친 아버지인 ‘그분’도 파슈에서 여전히 생활하고 있지만 서로 남남처럼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데이빗은 순일 집에서 처음으로 받아보는 관심과 사랑에  안정감을 느끼고 있는 듯해 보였다. 쓰레기 수거가 끝나고 순일의 집으로 돌아오면 우선 더러워진 몸을 씻고 편찮으신 순일의 할머니를 대신해 밥을 지어 할머니도 차려드리고 자신들도 먹고 낮에는 파슈에 나와 어슬렁거리며친구들도 만난다고 한다.  

데이빗은 뿌자가 학교에 들어간 게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뿌자는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으니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쭉 교육을 마쳐서 자신과는 다른 더 나은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도 갖고 있었다. 

만약 뿌자가 후원자를 만나지 못해 여전히 길에서 생활하는 상황이었다면 자기라도 어떻게 해서든 파슈 밖으로 나갈 수 있게 했을 거라고 힘주어 말했다. 

표현이 어색하고 서툴러 무뚝뚝한 큰 오빠처럼 보였지만 속마음은 누구보다 막내 동생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파슈 사원에서 어른의 보호 없이 남자아이들 틈에서 성장할 여동생의 미래에서 자신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렸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엘레스에 대해서는 형으로써 나쁜 짓을 하지 말라고 아무리 타일러도 말을 듣지 않고 본드도 마시지 말라고 해도 여전히 마시고 다니니 이제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부모라는 울타리 없이 들꽃처럼 흩어져 살아가고 있으니 표현할 기회도 없이 서로 뭔가 마음의 골이 깊어져 버린듯했다.



"나와 동생들이 나오는 다큐를 처음 봤을 때 기쁘기도 했지만 고살라에서 본드 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보니 다시는 그런 생활로 돌아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그래도 영화를 본 사람들이 간혹 알아봐줄 때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어요"라고 말할 때  내가 기억하고 있는 먼 기억 속 아이의 웃음이 희미하게 스쳐 지나갔다.

혹시 여자 친구가 있는지 물어보자 서로 사귀는 단계는 아니고 마음속으로 좋아하는 소녀가 있다고 했다.  "공항에서 청소 일을 하는 하는 저와 비슷한 또래 아이인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걔네 엄마 반대가 엄청 심해요. 그래서 그런지 요즘에는 저를 피하는 것 같고, 마주쳐도 말도 안 하고 도망치듯 지나가 버려요."

네팔의 젊은 사람들이 스무 살이 넘으면 비교적 일찍 결혼을 하기 때문에 혹시 데이빗도 결혼할 마음이 있는지 물어보니 결혼을 해서 가정을 만드는 일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또래의 친구들이 성적 호기심 때문에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고 좁은 방에서 생활하며 끼니 걱정하는 모습을 보면 저는 절대로 그런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결혼은 하고 싶지 않아요..."하며 고개를 저었다. 


파슈는 그에게 어떤 공간인지 궁금해 물어보자 "저를 지켜주는 곳이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공간이기도 해요"고 말했다. 끊임없이 강물은 흐르는데 정작 사원 내부의 풍경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도 그대로라는 이야기였다. 

 장래 희망이나 계획도  딱히 없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바란다고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 시작한 일을 그냥 열심히 하면서 기회가 되면 공부를 해서 지금 보다는 조금 나은 생활을 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데이빗의 얼굴에 이상하게 표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무언가가 되기를 꿈꾼다는 것이 자신의 삶에 그다지 실현 가능성이 없으므로, 이미 무엇도 될 수 없으니 부질없는 희망은 애초에 품지 않겠다고 마음을 걸어 잠근 채 단단한 벽을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청소부 카드)



‘그럴까? 정말 그런 걸까? 

그럴 수도 있겠구나...

버리지 못하는 꿈은 때론 독이 될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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