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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루가 Mar 31. 2016


   #8. Puja Poudel...

              파슈파티나트 화장터 아이들의 삶과 죽음의 이야기


뿌자를 찾아가기 위해 파슈파티나트 사원 근처에서 엘레스를 만나 버스로 한 시간 거리의 thankot으로 향했다. 언덕 중간쯤이 버스의 종착역이라서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걸어서 30분 정도를 더 올라가야 했다. 햇살을 뜨거웠고 하늘은 눈이 부시게 푸르렀다. 낮은 분지 지대에 매연이 심한 카트만두 도심에서는 맡기 힘든 맑은 공기와 시골 풍경 덕분에 뿌자를 만나러 가는 길이 소풍처럼 가볍게 느껴진다.  





높이 오를수록 카트만두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 드러날 때 엘레스가 과자를 사가지고 가자고 한다. 

간판도 없는 작은 구멍가게에서 뿌자에게 줄 과자를 이것저것 고르는 모습이 언제나 뿌자를 챙기는 건 항상 엘레스였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과자도 골랐겠다. 본격적으로 땀을 쏟으며 산행에 가까운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간다.  언덕 꼭대기에 다다르자 커다란 갈색 철문과 뒤로 학교 건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뿌자가 있는 학교는 생각보다 규모가 꽤 커서 마치 견고한 요새 속에 아이들을 지켜주고 있는 성처럼 보였다. 학교 이름조차 Bright horizon children's home(아이들의 밝은 지평선 집) 따뜻한 둥지처럼 포근하게 느껴졌다. 학교 사무실에 가서 교감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뿌자를 만나러 왔다고 하니 수업 중이라 쉬는 시간에 아이를 불러 주시겠다고 하시며  학교에 대해 이러저러한 설명을 해 주신다. 

학교는 2000년도에 Marlies Kornfeld라는 스위스 여성 독지가가 티베트 난민 자녀들을 위해 설립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지역에 티베트 아이들이 많지 않아 고아나 가난한 아이들, 마오 정권 시절에 부모 잃은 아이들에게 기숙사 생활과 함께 교육도 시키고 있었다.  


2008년, 남편은 네팔의 파슈파티나트 화장터에서 생활하는 세 아이들에 대한 ‘신의 아이들’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는데 영화제에서 수상도 하고 주목도 받았지만 극장 개봉까지는 이르지 못한 채 tv에서 한 두 차례 방영한 채 잊혀갔다. 

그렇게 이곳에서 잊혀 갈 무렵 네팔의 누군가가 ‘신의 아이들’을 유튜브에 올려놓았고 그로 인해 생각보다 많은 네팔리들이 이 영화를 보았거나 알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놀라웠다. 

네팔에도 이제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많이 보급되어 2007년에 느꼈던, 마치 다른 행성에 온 듯하던 폐쇄성으로부터 많이 벗어나 있었다. 

뿌자가 이 학교에 들어오게 된 계기 또한 좀 드라마틱한데 네팔의 유명한 티베트 불교 여승이며 성가(chant) 가수인 Ani choying dolma가 우연히 다큐를 보게 되었고 뿌자를 도와줄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고 한다. 

현재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어려운 이웃과 아이들을 위해 힘써온 그녀가 뿌자를 이 학교에 추천해 주었고 독일 후원가에게도 연결시켜주었다고 하니 얼굴 한번 뵌 적 없지만 고마움과 존경으로 가슴이 뜨거워졌다. 

교감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녹색 교복에 머리에는 네팔 여학생들이 흔히 하는 흰색 끈으로 예쁘게 머리띠를 묶은 단정한 모습으로 세 번째 아이, 뿌자가 나타났다.









아이가 워낙 어릴 때 잠깐 만났던 인연인지라 오빠들과는 다르게 이국의 미스가 기억나지 않는 듯했다. 

쭈뼛쭈뼛 낯설어하는 아이에게 오빠 엘레스가 가지고 간 과자와 초콜릿을 꺼내 뿌자도 먹이고 저도 같이 먹으며 오랜만에 만난 동생을 살뜰히 챙겨준다. 

뿔뿔이 흩어진 가족도, 돌아가 함께 머물 집도 없지만 이 두 사람 사이를 머무는 따사로운 공기가 숨결처럼 서로를 향하고 있었다. 

그 순간을 말없이 바라보는 나에게  "뿌자가 학교를 늦게 다니게 된 것 치고는 적응을 잘 하고 있고 공부도 열심히 해서 성적도 좋은 편이에요."하고 교감선생님이 말씀하셨다. 

*학교에서는 신입생을 받는 조건(부모가 계시는지, 생활환경의 정도에 따라 입학 여부가 결정된다. 물론 학교의 특성상 형편이 어려울수록 입학 가능성이 높다.)에 따라 5~7세의 아이들이 입학할 수 있다. 

뿌자는 2년 전에 학교를 들어왔고(입학 시기:9세), 다른 학생들에 비해 늦게 들어왔지만 예외적인 경우로 입학을 허가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학교 설립자 Marlies Kornfeld)


                        (티베트 수도승이며 유명한 성가 가수 Ani choying dolma)


https://www.youtube.com/watch?v=xVueLvn0WYE(Ani choying dolma의 뮤직 비디오)



입학 당시 뿌자는 아빠의 동의하에 학교에 들어올 수 있었는데 문제는 ‘그분’(뿌자 아빠)이 학교에 종종 찾아와 무작정 아이를 데리고 가겠다며 행패를 부린다는 사실이었다. 

부모가 자식이 그리운 마음에 그러는 게 아니라 아이를 후원해 주는 후원자에게 돈을 뜯어내거나 학교에 보내지 않고 돈벌이에 이용할 요량으로 그런다니 안타까운 마음에 절로 한숨만 나왔다. 

자신이 보내주지 못한 학교, 마련해주지 못한 보금자리를 이렇게 고마운 손길로 대신해준 분들에게 감사해하지는 못할망정 가뜩이나 가족과 떨어져 낯선 환경에 적응하고 있는 딸아이의 마음을 한 번씩 뒤흔들어 놓고 가는 듯했다. 

"한 번은 술에 취해 학교에 찾아와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행패를 부려서 직원들이 강제로 끌어  교문밖으로 내보냈어요..."  뿌자가 처음 학교에 들어왔을 땐 아빠나 오빠와 헤어질 때면 가지 말라고 울면서 매달렸데  그 일이 있고 나서는 선생님이 달래 주시면 속상해도 참고 조용히 교실에 들어가서 수업받는다고 했다. 

뿌자처럼 이 학교에 입학한 아이들 중 몇몇 부모는 아이들을 데려가겠다고 협박하거나 며칠만 데리고 있겠다고 약속하고 서류에 싸인까지 하고 데려가서는 연락을 끊어버리기도 한다고 했다.  

"그렇게 부모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간 아이들은 아마도 어딘가에서 구걸을 하고 있거나 공장에 보내졌을 가능성이 커요.." 하고 말하는 교감 선생님의 목소리에 한숨이 묻어 나온다.  그래서 학교 측에서는 이렇게 학기 중에 부모가 임의로 아이를 데려가려 할 때는 가정환경을 잘 파악한 후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학교에서 보호하고 지켜주려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학교 측의 배려로 뿌자가 공부하는 교실과 한 방에 5개가 있는 이 층 침대에서 10명의 아이들과 생활하는 기숙사 방도 들여다보게 되었다. 

폭이 70센티를 겨우 넘을까 싶을 정도로 좁은 침대 위에 Puja Poudel(뿌자 포우델)이라고 쓰인 아이의 베개가 눈에 들어온다.   




'기숙사에 들어온 첫날 방안의 취침 등이 꺼지고 나니 
간혹 기침을 하는 아이의 소리를 제외하고는 물속처럼 고요하기만 하다. 
좁은 이 층 침대에 누워 있으니 마치 외국에서 죽은 시신을 비행기로 싣고 오는 나무 관 속처럼 

가슴이 갑갑해져 밤새 잠을 이룰 수 없다. 

에서 잠들어 볼게 얼마 만일까? 
우리 식구에게 방이 있었던 적이 있을까? 
파슈파티나트에서 거적을 깔아놓고 엘레스 오빠와 취한 엄마 사이에 섞여 
잠이 들 때는 

흐르는 강물 소리와 오빠의 코 고는 소리에도 쉬이 잠들 수 있었는데...'


겨우 몸을 한번 뒤척일 수 있을까 싶은 좁은 침대 한 칸에 누워 보고 싶은 가족을 떠올리며 눈물을 삼켰을 아이의 외로움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내내 의연하게 오빠에게 단짝 친구도 소개해 주고 방도 구경시켜 주던 뿌자는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자 점점 더 표정이 굳어져갔다. 커다란 눈동자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자 엘레스도 마음이 착잡해지는지 애써 모른 채 고개를 돌리며 딴청을 피우는 척한다. 오빠를 보내기 싫어 금방이라고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뿌자에게 “다음에 올 때는 큰오빠 데이빗도 데리고 올게”라고 약속을 한 후에야 겨우 무거운 걸음으로 학교를 나설 수 있었다. 

파슈파티나트를 맨발로 뛰어다니며 춤추고 노래하던 작은 꽃잎 같던 아이는 이제 제법 단단하고 야무진 모습의 소녀가 되어있었다. 

한국에서 아이들을 만나러 네팔로 떠나오기 전 나는 작은 크기의 앨범에 삼남매의 사진을 여러 장 끼워가지고 갔다. 그 앨범을 맡아줄 아이를 고민하다 주거가 일정치 않은 엘레스 보다는 뿌자가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에게 전해 주었다. 

자신의 어릴 적 얼굴을 기억할 사진도, 그 사진이 걸릴 벽도 없었던 아이에게 이제는 다른 현실과 다른 미래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으므로 꾹꾹 누르고 참은 눈물이 그렇게 슬퍼 보이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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