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는 왜 아를과 사랑에 빠졌을까
적당한 바람과 햇살이 정수리를 들락거렸다. 계절을 짚어보는 것이 이미 무의미한 날을 지나오고 있다. 봄같이 포근한 바람과 가을같이 스산한 공기가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팍을 드나들었다.
그가 걸었던 골목과 멈추어 섰을 정원 앞에서 나도 길을 잃었다. 삶이 애절하고 애달프기만 했던 시대의 이단아는 이 작은 마을 길 끝에서 무엇을 목놓아 그려내려 했을까. 그의 호흡을 뒤 따라 한 걸음씩 걷다 보니 여리고 까칠한 마음이 조금씩 헤아려졌다. 고흐, 입술 사이로 금세 빠져나가 사라져 버리는 이름만큼 외롭고 처절하던 한 생이 거기 있었다.
우리가 머무는 몇 시간 동안 아를은 구름으로 가득 찼다. 밝은 해를 나침반 삼을 수는 없었으나 이 흐린 하늘과 구름이 고흐의 도시인 아를과 매우 잘 어울린다 생각했다. 회색빛 하늘을 편식하는 내게 매우 반가운 오후, 아를의 지도를 구름 끝까지 펼쳐 들었다. 골목을 오고 가는 사람들은 모두 속삭이며 걸었다. 행여 그의 여린 마음이 깨어질까 조심히 숨죽여 셔터를 눌렀다.
흐린 아를은 사무치게 그리운 마음을 내게 들이밀었고 나는 조금 더 길을 잃고 헤매고 싶어 졌다. 늘 알 수 없는 질문에 더 막막한 답을 요구하는 삶에게 침묵하고 싶었다. 앙다문 입술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쥐고 막다른 길에 이르고 싶었다. 남프랑스 소도시 이 작은 마을 길을 떠돌며 내 마음의 길을 묻고 싶었던 날. 몇 시간을 헤매며 그의 생과 내 마음을 만났다. 그럴 수 없을 것 같던 것들이 아무렇지 않아 졌고 그렇게만 하겠다 다짐하던 것들은 까마득하게 잊혔다.
아를을 등지고 돌아가야 하는 곳을 향해 기차에 몸을 안겼다. 다시 꼭 와야지. 그땐 고흐 당신의 억울하고 슬펐던 과거의 모든 날들을 마음껏 응원하며 행복했으리라 믿어주리라. 더불어 막다른 골목길 끝에 기꺼이 기쁘게 서서 내 생을 따뜻하게 안아줘야겠다 다짐했다.
창을 열고 달리는 늦 오후의 계절 사이로 생의 유연함과 행복이 들이친다. 마음에 드는, 괜찮은 시절을 마주하고 있다.
2018 1030_ 프랑스 소도시 아를, 론강을 거닐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