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네타 해변이 내게로 걸어와서는
청춘이라는 이름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겁고 버겁던 날들이 있었다. 모든 게 불안정했다. 밥벌이의 부담감은 매달 꼬박꼬박 내야 하는 월세만큼 묵직했고 자아를 다독이는 시간은 분에 넘치는 사치 같았다. 가만히 있어도 흘러가는 시간은 경력이라 불리며 쉬이 차 올랐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는 동안 꾸역꾸역 연차는 쌓여갔다. 더욱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시간만 내 앞에 무겁게 침묵했다. 주어진 날들을 즐기지도 누리지도 못한 채 청춘이라는 불안정함에 내도록 떨었던, 그러나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아 뭐든 눈에 보이는 대로 열심히 하며 지냈던 불안정한 내 20대. 그저 절반을 염려와 걱정 가운데 절반을 비교와 체념 가운데 살았다. 가장 청춘스럽게 살아야 했던 내 청춘은 거기 없었다.
위로받고 싶었다. 타의 혹은 자의에 의해 쫓기듯 살아온 시간이 모두 불행했던 것은 아니었으나, 행복의 순간들을 기억해 내는 것이 그저 기쁨이지 않으니 뭐라도 좋을 위로가 필요했다. 느슨하게 살기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 누구에게도 바라지 않고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나를 다독이는 시간을 허락하고 싶었던 것. 그게 전부였다.
이제 그저 다 괜찮아지는 시절이 올 것 같다. 큰일이라 여겼던 것들이 사실 돌아보면 그리 호들갑스럽지 않아도 충분했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너무나 괜찮았던 나날들이었으니 괜찮지 않다고 울상 짓고 원망할 일이 생에 얼마나 있을까. 과거가 현재에게 안겨 온전히 토닥여지는 몇 시간이면 조금 서러웠던 청춘의 위로는 이미 충분하다.
2018 11_ 바르셀로네타 해변의 맨발의 청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