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velyanna Apr 25. 2019

산 안드레스섬의 시한부, 지금 여기

우리 오늘을 살자


뜨겁게 내리쬐는 지중해 태양 아래 오늘을 사는 우리가 있다. 매일 시한부 같은 여행자의 시간. 다시 올지 아니 올지 모를 생에 마지막 날.


언제부터 삶의 마지막 날에 대해 생각하며 사는 것이 낯설지 않았는지 기억을 더듬는다. 딱 십 년 전, 홀로 이별을 준비하고 있던 낯선 나라의 뜨거운 여름날이었다. 다시는 밟을 수 없을지 모를 건물 도로 거리 식당이라 생각하자 흘려보내던 매일의 일상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평생 다시는 만나지 못할 사람이라 생각되자 누구의 어떠함이든 쉬이 용서됐다. 여기 이 곳에서 지금 이 사람들을 다시 만나 함께하는 시간이 허락될까 자문해 보았으나 그럴 수 없다는 것이 명백했다. 그러자 원망도 미움도 질투도 시기도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생의 마지막 날엔 그런 이기적인 마음은 갈 곳을 잃었다.


많이도 아프고 많이도 행복했던, 그곳에서 지켜 낸 700여 일의 시간이 여름 바람처럼 귓등 너머로 사라지던 그 날. 그때 처음 알았다. 삶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산다는 것의 의미. 내 인생이 이곳에 머물던 시간을 통째로 꿈이라 말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일상도 그리움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아차린 그 날 이후 나는 매일을 생의 마지막 날처럼 살고자 했다. 무엇이든 누구하고든 언제든 이별할 수도 있겠으니. 오늘을 아끼고 내일을 기약하며 살지 않기로 했다. 오늘 부서지는 태양 아래 마신 커피 한잔이 생의 마지막 기억이 된다 할지라도 억울하거나 아쉽지 않게 살겠노라. 야무지게 기지개를 켠다.


2018 11_일곱 빛깔을 내뿜는 산안드레스섬 파도 아래의 휴가





매거진의 이전글 콜롬비아 산안드레스 섬의 허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