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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화수요자 Oct 28. 2018

밖에서 바라 본 내 나라 한국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 홍세화

전혀 진보적이지 않은 분께 추천받은 진보 서적

고등학생 때, 논술 과외를 받은 적이 있었다. 한 달 남짓 배우고 그만둔 선생님이었는데, 다른 건 기억 안 남지만, 꼭 읽어야 할 도서 리스트만큼은 와닿았다. 글도 못 쓰고, 논리적이지 못한 나를 다른 학생들과 비교하면서 타박 준 선생님이었기에.. 매 수업 긴장한 채 들었지만, 신기하게 책 소개할 때만큼은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셨다.


선생님은 이 책을 왜 꼭 읽어야 하는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간략하게 설명해줬고, 그럴 때마다 난 굉장히 흥미진진했다. 선생님이 추천해준 책 중 몇 권은 내 인생 도서가 되기도 했다. 아무튼 그 중 한 권이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였는데 언젠가 읽어야지 하고 킵해두었다가 몇 달 전,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산 후 올해 들어서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알라딘에서 책 사도 돈 아까운 책들이 있는데 이 책은 정말.. 득템이었다!


새 책 같은 헌책, 상태도 좋았다! 헤헤


저자 홍세화 님은 진보 쪽에서 이미 유명한 인사(?), 아니 ‘이미’가 아니고 내가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일로 이 책을 쓰셨으니 뭐..내가 몰랐던 것이었다. 아무튼 어릴 적 한참 한겨레 신문을 볼 때도 이름을 봤던 거 같고 여기저기서 한 번씩 들어봤던 분이었다. 짐작했던 것처럼 프랑스에서 택시 운전사를 한다는 것부터 평범한 인생 얘기는 아니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이런 특별한 인생이, 거기다 1990년대 초반에 나온 책인데도 불구하고 2018년에 읽는 나까지 고개를 끄덕이며 와닿은 부분이 많았다.


75 page /  빠리에서는 각자가 자기에게 맞는 유행을 찾는 데 비하여, 서울에서는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한 유행을 따르고 있다. 다른 말로, 빠리에서는 유행이 사람에게 종속되어 있는 데에 비하여 서울에서는 사람들이 유행에 종속되어 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이러한 경향도 결국 한국 사회의 획일성과 프랑스 사회의 다양성을 나타내는 것이라 하겠다.



해외에서 바라보는 우리나라

저자는 80년대에 자유권을 잃고 망명의 길로 프랑스에 오게 되었다.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고 저자가 말하긴 했지만 여러 요건으로 인해 택시 운전사를 하게 되었고,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자기 생각도 말하며 여러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111 page / (프랑스인과) 싸운 이튿날 그는 나에게 자연스럽게 평소처럼 대했고 나는 계속 앙심을 품고 있었다. 이 차이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프랑스에선 이 주장과 저 주장이 싸우고 이 사상과 저 사상이 논쟁하는 데 비하여 한국에선 사람과 사람이 싸우고 또 서로 미워한다는 사실이다.


112 page / (프랑스에서는) 택시운전사인 내가 택시운전을 잘못할 때는 손님의 지청구를 들을 수 있으나 택시운전사라는 이유 때문에 업신여김을 당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단적인 예로 택시운전사로서 모습, 일상에서 지인들과 지내는 이야기에서 겪은 걸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단면을 비교해 준다. 이게 밖에서 보면 더 잘 보인다고 나도 저자처럼 살아본 적은 없지만 여행으로만 나가있어도 그런 부분을 볼 수있다. 그리고 이런 책을 읽다 보면 확실히 내가 가졌던 고정관념이 어떤 것들이었는지 되짚어 볼 수가 있다.


(이 분은 그리스 택시 운전사이긴 하지만^^;)


190 page / (택시 운전사를 보고) 우선 프랑스인을 비롯한 다른 나라 사람들은 길을 모르면 가만히 있지 당신처럼 “이놈이 돌아가고 있는 거 아냐”하는 의심은커녕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당신은 별로 속아 살지 않았을 만큼 영악한 사람인데도 다른 사람이 항상 당신을 속일 수 있다는 피해망상을 갖고 있다.



자유로운 나라

이렇게 저자는 자유, 박애, 평등이 이데올로기인 프랑스와 당시 우리나라를 계속 비교하며 자유에 대한 갈망이 점점 더 커졌던 거로 보인다.


54 page /  나도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모르면서 벌써 공산주의자를 철저히 증오하고 있었으니까요. 그것은 무서운 발견이었지요. 인간을 알기도 전에 이미 인간을 증오하고 있었다니. 인간에 대한 사랑을 알기 전에 증오부터 배웠다니. 그 충격이 있은 뒤에 남한의 권력이 모두 이 증오의 이데올로기만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것이 보였지요. 나는 저항하여 나에게 강요된 증오를 거부했지요. 그 결과가 이렇게 된 셈이지요.


210 page /  “21세기의 벽두에, 단지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을 감옥에 집어넣는 행위는 완전히 사라져야 할 것입니다. 그 행위는 인간의 가장 나쁜 재앙 중의 하나입니다.”


나 역시 우리 역사를 돌이켜보면 많은 분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이 존재한다는 걸 안다. 희미해진 과거를 텍스트로만 받아들인 우리 세대, 또 그 이후의 세대가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런 책과 여러 가지 흔적들이 있기에 보다 단단한 미래가 그려져 가는 거 같다.


우리나라의 아픈 과거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군산 근대 미술관


아 참, 마지막으로 빠리의 택시 운전사 이야기를 보면서 떠오른 곡도 하나 소개한다. JTBC에서 종영한 ‘비긴 어게인2’에서 가수 박정현이 ‘좋은 나라’라는 곡을 부른다. 80년대 후반에 ‘시인과 촌장’이라는 그룹이 부른 노래라는데 이 노래를 우리 역사와 유사한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부른다.


'비긴 어게인2' 명장면 클립에서 볼 수 있다▼

http://tv.jtbc.joins.com/clip/pr10010761/pm10048016/vo10232551/view


나 역시 그곳을 다녀와 봐서 어떤 의미로 선곡을 했는지 알 거 같은데 우리뿐만 아니라 비극적인 역사를 가진 국가는 세계 곳곳에 존재한다는 걸 또 한 번 느꼈다. 프랑스 역시 프랑스 혁명 등 아주 과거에 그런 과정을 한 번 솎아내었기에 지금 모습을 갖게 되었다. 동유럽 곳곳을 다녀와 본 나는 우리만큼 투쟁을 한 각국의 유적을 봐왔다. 저자가 우리나라에서 운동했던 때와 동시대인 1980년대에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 체코에서는 공산주의를 반대한 젊은이들이 프라하에 '존 레논 벽'을 만들어 존 레논의 가사를 썼다고 한다. 참 자유에 대한 갈망은 어떤 이념에 반대하였건 간에, 보편적이면서도 나라마다 각자의 아픔이 있는 게 공통점인가 보다.


지금은 많은 관광객이 찾는 체코 프라하의 존 레논 벽


아무튼 그 언젠가 내가 내 자식에게 책을 추천해준다면 새 책 같은 이 헌 책,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는 간직했다가 꼭 물려줄 것이다. 그리고 작가만큼은(?) 아니지만 나 역시 좋은 나라를 만드는 데 조금씩 이바지해서(사소하게 개념 챙기는 것부터!) 후손이 살기 좋도록 만들어 줘야지이~~~



메인 사진 : 대구 동성로 축제에서 태극기 만들기, 대구 동성로 축제, 2011


*캡처나 출처를 밝힌 경우를 제외한 모든 사진은 본인이 직접 찍었고, 저작권은 본인(@yuoossoo)에게 귀속되어 있습니다. 불펌을 금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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