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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Aug 26. 2023

이리오너라, 마흔아


 올 해는 나의 사십 대가 시작되는 첫 해, 불혹의 원년이다. 생일이 지난 지도 벌써 수개월, 만나이 나이든 (이제는 사라진) 한국식 나이든 그 무엇으로 계산해도 세상에 던져진 지 40년이란 세월이 흘렀음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아직은 정이 안 가는 40이란 숫자는 도통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것인지 내 신체와 얼굴에도 '꾸밈없음'의 미덕을 알려주었다.

 지난 6월에 받은 건강검진에서 처음으로 생체나이검사를 해봤는데, 나의 생체나이는 얄짤없는 "39.8세"였다. 부연된 설명은 어찌나 또 단호한지 "당신의 종합생체나이는 주민등록나이와 별로 차이가 나지 않고, 전반적인 건강상태가 나쁘지도 좋지도 않으며, 노화 또한 평균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라고 적혀 있었다. 불규칙한 식습관, 만성적인 운동 부족, 스트레스에 취약한 멘털상태를 고려하면 선방한 결과였지만 40년 만에 처음 받아본 생체나이 성적표는 나에게 위기감을 안겨 주었다.


 얼마 전에는 타로카드를 보러 갔다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탓에 사주까지 보는 걸로 번진 적이 있었다. 타로에 사주까지 봐주시는 선생님이 생년월일을 물었을 때 되려 내가 몇 살로 보이냐고 질문을 했다. 나름 동안이란 소리를 들으며 살아왔기에 호기롭게 여쭈었는데, 곧바로 40대 초반? 이란 답변이 두 귀를 때리었다. 헛된 기대에 대한 멋쩍음과 이제 더 이상 베이비페이스가 아니라는 실망감에 표정관리가 안 되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부쩍 친구들의 얼굴에서 나의 노화를 추정하고 인정하는 일이 잦긴 했다.

눈가에, 이마에, 입 주변에, 목 한가운데에 자리 잡아가는 주름들. 잠깐이라도 방치하면 삐져나와있는 새치들. 서로에게 발견되는 이 반갑지 않은 것들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얘네는, 나는, 우리는 어느새 이렇게 나이 들어버렸을까?


 민원을 상대할 때 반드시 신분증으로 본인 확인을 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내 또래 갑남을녀의 얼굴을 마주할 때도 놀랄 때가 많아졌다.

특히 세월의 풍파를 정면으로 맞은 얼굴로부터는 시선을 쉽게 못 거둔다. 그래, 이제 우리 나이가 이렇게 보일 나이 맞지 싶다가도 나도 남들 눈에 저렇게 보일까 싶어 아찔해지기 일쑤다.

 

신체와 얼굴에 나이가 드러나는 것으로 모자라 체력저하 역시 예사롭지가 않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은 너스레도 과장도 아닌 그냥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되어버렸다.



 나이 듦에 대한 정황들이 이토록 직접적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마흔 맞이가 혼란스러운데, 응당 그런 줄 알았고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던 가치와 신념들에 대한 의문도 솟구치기 시작했다. 사십 평생 나 자신과 세상에 밀어붙인 방식들이 이젠 잘 먹히지도 않거니와, 더 이상 그 필살기(?)를 써먹고 싶지 않다는 반발심마저 생기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몇십 년 전, 이렇다 할 증상 없이 사춘기를 지나와서일까. 그 시절 깨지 못한 알까지 마흔 먹어 깨부수려니 머리와 마음이 터질 것 같다

(믿거나 말거나, 내 사주팔자조차 올해 나는 미치고 괴로울 시기라 말하고 있다)


 신기하면서도 다행인 건 혼돈의 한가운데에 있는 내가 이 상황이 싫지 않다는 것이다. 마흔이 된 이후로 두둥실 떠오른 낯선 생각들과 불편한 감정들을 단 하나도 놓치고 싶지 다.

괴롭지만 결코 피하고 싶지 않다는 것, 어쩌면 이것이 내가 나의 사십 대를 잘 감당할 깜냥이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불혹이 돼서도 미숙하기 그지없는 손놀림이지만 유일한 무기인 거침없는 기세를 이어받아 40세에 맞닥뜨린 변화와 소박한 깨달음을 언박싱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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