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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Nov 19. 2024

41살에도 엄마가 필요해

덴마크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 세 번째 이야기


루이즈 부르주아의 거미 조각상을 처음 접했던 것은 리움미술관에서였다. 그때는 그저 SNS 업로드용 사진의 배경으로 제격이잖아 라는 생각으로 거미 앞에서 열심히 사진만 찍었더랬다.


그 후 세월이 흘러 2년 전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그녀의 개인전을 보고 나서 그녀가 천착한 주제에 여성, 엄마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루이지애나 미술관의 시그니처 포토스폿으로 알려진 곳에도 루이즈 부르주아의 마망이 있었다. 내게 있어 거미라는 동물은 외관상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비주얼이 아니다. 현실에서 거미줄을 치고 있는 거미를 만나게 되면 깜짝 놀라 도망치기 바쁘다.

그런데 이런 거미 조각상에 마망(엄마)이라고 이름 붙인 예술가덕에, 모성애가 강한 동물이라는 거미의 속성에 주목하게 되었다.


 




11월의 첫날 늦은 저녁, 황톳길 걷기 트렌드에 빠져 열심히 황톳길을 걸으셨던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물기를 머금고 있던 황톳길에 미끄러지셔서 응급실에 계시다는 연락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엄마의 부상 부위는 팔이었고 팔 중에서도 왼팔이었다. 엄마는 그날 바로 입원을 하셨고 그다음 날 수술을 하셨다.

엄마의 수술 날 아침, 입원기간 동안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 병실로 갔다. 병실 입장 전, 병동의 간호사가 내게 방문록을 내밀며 작성하라고 했다. 나는 그날 그 층의 9번째 방문객이었는데, 9명 중 (나를 포함한) 5명이  환자하고의 관계란에 딸이라고 적었다. 이 땅의 모든 아들들의 효심을 의심하고 이 세상 모든 딸들의 효심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공교롭게도 내가 갔던 그날, 그 층의 병원 방문객 명단에 아들은 없었다.  


엄마가 집에 안 계신 동안 나는 아무 일 없다는 듯 회사를 가고 일상의 내 생활을 했지만, 엄마가 입원한 지 4일 만에 엄마와의 분리를 두려워하는 여자로 분해 길바닥에서 꺼이꺼이 우는 꿈을 꾸었다. 내가 장기간 집을 떠날 때는 몰라도 엄마가 장기간 집을 떠날 일이 있을 때면 실제로 늘 불안감에 휩싸인다. (엄마말에 따르면) 내가 꼬맹이었던 시절 엄마가 어쩌다 친정에 가서 한 밤이라도 자고 오면 꼬맹이인 내가 엄마의 부재를 귀신같이 알아채고 갑작스러운 고열로 응급실에 실려갔다고 한다. 지금은 그 지경까지는 아니지만 나이 40이 넘어서도 엄마를 향한 separation anxiety를 앓고 있는 것이 꿈에서 드러나고 말았다.


엄마와 딸의 관계는 참으로 묘하다. 엄마의 잦은 잔소리에 짜증을 부리고 도 넘은 참견에 화를 내면서도, 엄마의 저의에 그 어떤 불순물이 없는 순도 100%의 걱정뿐이란 걸 잘 아는 이가 딸이다. 엄마의 저런 점은 닮지 말아야지, 나는 엄마처럼은 안 살 거야 했던 부분을 그대로 재연하는 이도 역시 딸이다. 엉엉 운 꿈을 꾼 날 아침, 잠에서 깨고 나서 한참 동안 요동치는 감정을 추스르는데 힘이 들었다. 엄마의 수술은 잘 되었고, 곧 퇴원만을 앞두고 있는데 언젠가는 오고 말 엄마와의 헤어짐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하는 감당불가의 공포가 엄습했다.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해 주는 한 사람, 단 한순간도 의심한 적 없는 원 앤 온리 사랑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가정만으로 몹시 슬퍼졌다.




루이지애나 미술관의 모든 관람을 마치고, 계단에 걸터앉아 한참을 바다만 바라봤다. 미술관 내부에서는 혼자 온 방문객을 많이 봤건만 그곳에서는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연인, 친구, 가족과 함께였다. 가만있어도 활활 타오른 고독이란 불에 기름까지 부을 의도는 아니었는데 하필 그때 내가 선곡해 귀에 흐르는 노래가 Lady Gaga, Bradley Cooper의 I'll never love again이었다. Lady Gaga가 연인을 잃은 후 여인의 마음을 구구절절 토해내는데, 모든 헤어짐과 상실에 대입해도 어색하지 않은 가사 때문인지 내 안의 묻어두었던 온갖 설움이 고개를 들었다.


찬란한 날씨에 이토록 아름다운 바다를 앞에 두고 이럴 일인가 싶을 정도로 노래 한 곡이 재생되는 내내 눈물이 줄줄 새어 나왔다. 그때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 사진 찍기 바쁜 관광객들이고, 비교적 남에게 관심 없는 외국인들이라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꼭 덴마크가 아니더라도, 가까운 미래에 나의 마망과 함께 루이즈 부르주아의 마망을 보러 가야겠다는 계획을 세워본다. 비록 엄마의 바람은 거두절미하고 내가 시집가는 것뿐이지만, 더 늦기 전에 엄마와 딸만이 할 수 있는 얘기를 나의 엄마와 실컷 나누고 싶다.


생각보다 세월은 더 빨리 흐르고, 엄마가 건강하게 나를 기다려주는 시간도 생각보다 길지 않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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