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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Dec 16. 2024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

마흔의 정치


TV에서 정치 얘기가 나오면 채널을 돌리던 내가 정치 관련 뉴스와 토론 프로그램을 부러 찾아보기 시작한 건 마흔 즈음이었다. 20, 30대에도 선거 때마다 투표를 해왔지만 후보자가 제시하는 정책과 공약보다는 개인적인 상식과 가치관에 그나마(?) 부합하는 정당과 후보에 한 표를 행사해 왔다. 그러다 정치인들의 언행하나에 나의 소소한 경제와 일상이 좌지우지된다는 것을 체감한 이후부터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주시하게 되었다.


엄밀히 따지면 태어난 이후부터 정치의 결과물에 영향을 받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싶다. 노는 게 바빴던 학생 때도 정치 아닌 사회에는 관심이 많았다. (사실 이 두 가지는 닭과 계란 같은 사이인데 그땐 그 역학관계를 이해하지 못했다)

먹고사는 게 중한 직장인이 되고 나서야 급여를 비롯한 나의 근로환경, 주택청약 및 부동산 대출요건, 금리와 물가, 보험료를 비롯한 각종 세율 등등 내 의식주 전반 구석구석이 정치적 합의물(?)에 의해 컨트롤되고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12월 3일 밤, 나는 마루에 앉아 끙끙거리며 몇 개의 문장들을 끄적이고 있었다. 생각한 대로 풀리지 않아  스트레스 수치가 치솟고 있던 찰나 안방에 있던 엄마가 갑자기 뛰어나와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말씀하셨다. 사실 처음의 내 반응은 듣는 둥 마는 둥 무덤덤 그 자체였다. 우리 세대에게 비상계엄은 책 또는 영상에서나 있는 것, 현실에  있을 리 없는 해태나 유니콘과 같은 것이었다. 그 엄중함과 무게감을 알지 못했기에 엄마가 어디서 카더라 통신의 가짜 뉴스를 보셨겠거니 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러다 TV를 켜고 국회에서 벌어지는 장면들을 생중계로 보게 되었는데, 그제야 내 얼굴에 모든 웃음기가 싹 가시었다.




 그날 이후 나의 불면증은 극도로 악화됐고, 퇴근 이후에는 TV 중독자가 되어 뉴스에 집착하게 되었다. 비상계엄 그 자체의 충격도 가시지 않았는데, 뒤이어 터지는 후속 기사들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과장되거나 극단적인 표현을 좋아하지 않지만 정치인을 믿느니 처음 보는 사람을 믿겠다는 그 싸늘한 명제를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만약 ~하지 않았다면"이라는 가정법이 이토록 소름 끼치고 무서웠던 적도 처음이었다. 계획했던 일정과 일상을 소화할 때면 죄책감을 느꼈고, 다른 국민들처럼 집회에 나가 함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부채의식이 생겼다.(아직도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탄핵소추안이 통과되기 전까진 그야말로 커다란 돌덩이가 나의 머리와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이 기간 중 한 달 전에 잡혔던 대학동기 모임도 자연스럽게 미뤄졌다. 약속이 취소된 날, 불안정한 시국에 매몰된 나 자신에게서 의도적으로 멀어지려고 도서관에 갔다. 좋아하는 작가와 글에 기대서 비상계엄도 탄핵도 잠시 잊고 싶었다.

북 콘서트에 초대된 가수 분이 참여자들의 앙코르 요청에 노래한 곡을 더 불러주셨는데  바로  '행복의 나라로'란 노래였다. 원래도 좋아했지만 가사 한 구절 한 구절이 2024년 12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위로의 말들이라 울컥했다. 혹한의 추위에 벌벌 떨고 있는데 누군가 내 손에 핫팩을 쥐어주는 것처럼 따뜻했다.




 그 어느 때보다 어수선한 요즘이지만 적나라하게 드러난 민낯들로 역사의 한 장막이 거둬진 측면도 있다.


말로는 존경하고 사랑한다면서 국민의 일상 속 평화를 너무 쉽게 박살 낸 통수권자.

행간을 이해하려고 아무리 애써도 해석 불가의 궤변을 늘어놓는 결사체.


이번 사태를 목도하며 말이란 것은 참으로 무의미하고 헛된 것임을 또 한 번 깨닫는다. 언제나 그렇듯 사람의 진짜 의지는 그 사람의 말이 아닌 그 사람이 하는 행동에 있다.


요 며칠은 나의 선입견이 와장창 깨진 시간이기도 했다. 집회라면 모름지기 민중가요를 부르고 투쟁을 외치는 건 줄만 알았는데 1020세대의 집회 문화를 보고 되려 한 수 배웠다. 내가 옛 방식 그대로 따라 흔들던 맨 주먹 대신 그들은 응원봉을 흔들었고, 너무 웅장해 따라 부르기 힘든 민중가요 대신 그들은 친근한 아이돌 노래에 하고 싶은 말들을 담았다.


몇십 년을 더 산 세월이 무색하고 부끄러운 어른들. 인생 선배들의 무책임함이 쏘아 올린 무겁고 중차대한 사안을 젊은이답게 응수하고 즐기는 걸 보면서 이 땅의 아름다운 청년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인구소멸위기의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한 줄기의 빛을 기대할 수 있다면 그건 저들이 내뿜는 것이겠구나 싶어 다행이었다.






부당한 것, 상식적이지 않은 것, 의롭지 않은 것을 분간하는데 보통 사람들의 눈보다 더 예리한 잣대가  있을까.


언제일지 모르지만 곧 닥칠 심판의 날. 국민의 집단 기억력과 그에 따른 모든 행동이 행복의 나라로 향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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