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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랑에는 돈이 든다

by 앤디


개인정보유출이 아닌 나의 선택으로 전국의 공연 홍보 문자가 핸드폰에 쌓이고 있다. 거의 매일 오다시피 하는 문자들을 보며 이토록 수많은 공연이 사계절 내내 펼쳐지고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작년 이맘때 나는 한 뮤지션에 꽂히게 되었다. 십 대에도 해본 적 없던 소위 덕질이라는 것을 40대가 되어 시작한 것이다. 그 뮤지션의 퍼포먼스를 직접 봐야겠다 결심하고 그의 공연 예매를 처음 시도한 날을 기억한다. 예매일시를 알람처리하고 정각에 접속했지만, 덕질 초보자인 내 손은 원하는 자리를 차지하기엔 터무니없이 느렸다.

단 몇 초만에 공연장 상석이 눈앞에서 속속들이 사라지는 걸 보며 이 놀라운 속도의 능력자들은 누굴까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하자 공연장의 좋은 자리에 앉고 싶다는 욕망은 점점 더 커져갔다. 시행착오를 거쳐 공연 예매 시스템에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선예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경험칙상 10곳의 공연장 중 9곳이 일정 금액의 회비를 낸 유료회원들에게 일반 예매보다 하루 앞서 티켓오픈을 해주었다. 공연장에서 Very Important Person석과 Royal석의 티켓값은 이미 비싼데 티켓 경쟁에서의 우위와 편의성을 위해 미리 또 돈을 내야 하는 체계였다. 해당 뮤지션의 공연이 아니면 갈 일 없는 지방의 먼 공연장들까지 유료회원이 되려니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나의 스타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보고 싶다는 바람은 나를 기꺼이 자릿세 장사의 고객이 되게 만들었다. 한창 미쳐있을 땐 유료회원의 선예매 시스템에 고마움마저 느꼈다. 예매 경쟁에 대한 스트레스를 돈으로 경감시킬 수 있으니 되려 속 편하단 생각 때문이었다.




덕질 선배인 회사 동료 중 한 명은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션의 팬 사인회를 참석하기 위해 같은 음반을 수십 장씩 샀다. 음반을 사야 사인회 응모권을 주기 때문에 확률을 높이려면 어쩔 수 없다며 그나마 그 뮤지션이 신인이고 덜 유명해서 이 정도로 가능한 것이라고도 했다. 사실 나도 내가 뒤늦게 꽂힌 대상이 아이돌이나 트로트 가수가 아니어서 다행이란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나로서는 경쟁이 덜 한 곳도 이렇게 따라가기 벅찬데, 메가 팬덤이 있는 곳은 어떨까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고도화된 자본주의의 세상에서 40년 넘게 살고 있지만 여전히 각성할 것이 남아 있다.


모든 취미... 아니 사랑에는 많은 돈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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