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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원들이 만들어준 늦된 성장캐

by 앤디


7월에 인사이동이 있어 새 부서에서 일하게 되었다. 내 팀의 팀원은 이제 막 수습을 뗀 입사 3개월 차 신입사원, 작년 입사자, 4년 차 대리 이렇게 총 3명이다. 셋의 부서 업무 경력은 0~3개월로 다 합쳐봐야 1년이 안 되고, 그들의 중간 관리자인 나는 무려 10년 전에 일했던 부서에 재배치된 입장이다. 업무 특성상 그 난이도가 낮지 않고 업무량도 만만치 않아 여러모로 막막한 상황이 되었다.


이렇게 직원 한 명 한 명이 아쉬운 와중에 부서장이 처음 배정해 준 팀원 4명 중 1명은 받지 않는 호기를 부렸으니 일정 부분 자초한 것도 있다.

내가 완강하게 거부한 1명은 직전 지점에서 같이 일했던 직원이었다. 열 번 넘게 한 업무 지시에 대해 두 달 가까이 방치한 그 덕분에 인사이동 직전 지점장으로부터 무책임한 책임자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와 두 번 다시 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일을 더 하고 고생하는 한이 있어도 그런 자를 관리하면서 끌고 갈 자신이 없었다. 더 솔직히는 그런 종류의 직원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숨기지 못하는 나를 시험에 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꾸려진 새 팀에서 일하고 나서부터 실제로 몸이 고됐는지 고질병인 불면증이 치유되어 퇴근 후엔 바로 곯아떨어지고 있다. 경력이 짧은 직원들 서류를 결재하다 보니 꼼꼼히 봐야 할 것이 많고, 세 명이 쏟아내는 질문폭격에 대답해주고 나면 하루가 금세 가버린다. 나 역시 공부가 필요한 부분이 많아 의도치 않게 퇴근 시간이 늦어진 날도 많다. 재밌는 건 이런 피로감과 반대로 내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 신나 있다는 사실이다. 15년째 회사를 다니는 동안 회사에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다 보니 이런 나 자신이 너무 낯설다. 뭐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역추적하다 팀원들의 태도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라도 더 배우겠다고 반짝거리는 눈빛, 지적당한 실수는 바로 보완하는 발 빠름, 비기너 특유의 열정을 가진 세 명에 둘러싸이다 보니 무기력한 좀비 그 자체였던 나도 긍정의 기운에 물든 것이다. 특히 막내 신입사원은 질문을 할 때마다 목소리와 손의 떨림이 느껴질 정도인데 부족한 팀장의 말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모습은 절로 무한 책임감을 갖게 만든다. 그런 태도가 기특해서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고 제대로 된 지식을 전수하고 싶어 덩달아 긴장하게 된다.




오늘은 팀의 대리가 올린 보고서를 5번 넘게 수정시켰다. 팀원들의 결과물을 확인하고 검토하는 위치라 뭘 아는 양 잘난척했지만 그 과정에서 나 또한 얼마나 많은 걸 배우고 있는지 그들은 모를 것이다.


적성에 맞는 업무만큼이나 누구와 일하는지는 정말 중요하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고, 성장하는 팀원들은 팀장도 성장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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