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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군 Jun 20. 2019

남해여행 원! 투! 쓰리!


 서울에 살면서 남해여행을 간다는 것은 해외여행을 가는 것만큼이나 가볍지 않은 떠남의 결정이다. 당일치기로 가기도 어렵거니와 언제 또 갈 수 있을지 모르니 제대로 보고 와야 한다는 강박도 찾아온다. 그러다 보면 일정은 길어지고, 가야 할 곳들은 많아지고, 그에 따른 비용도 천정부지로 치솟게 된다. 이렇게 큰 맘을 먹고 떠나야 하는 남해여행인데 적당히 다녀오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래서 그런 사람들에게 잠시 속삭여본다. 남해여행 원! 투! 쓰리! 가장 대표적인 관광지이면서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곳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는 옛말이 무색하게 소문난 남해 여행지에는 보고 느낄 것들이 많았다.^^



원. 독일마을


 남해에 독일마을이라니! 처음 들었을 땐 너무 쌩뚱맞아 보였다. 그래서일까 제주도에 있는 소인국 테마파크나 파주에 있는 프로방스 마을처럼 관광과 쇼핑을 즐기기 위한 유원지 정도 되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가서 보니 더더욱 그렇지가 않았다. 남해여행의 관광지와 숙박지로 점점 더 각광을 받고 있지만, 거기에만 그쳐서는 절대로 안 되는 곳이다.


 독일마을은 1963년부터 1977년까지 독일에 파견된 간호사와 광부들이 조국에 돌아와 정착할 수 있도록 남해군이 적극적으로 나서 50세대 정도가 독일양식의 건축을 하기 시작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곳이다. 경제발전이 시급했던 시절 독일인들이 꺼리던 힘든 일들을 도맡아 했던 그분들의 수고는 고스란히 우리나라 곳곳에 녹아져 눈부신 경제발전의 초석이 된 것이다.

 경사진 독일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는 파독전시관과 추모공원이 함께 있다. 여느 박물관이나 전시관만큼 크지는 않지만 그들의 향취를 느끼고 오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탄광 속으로 들어가는 듯 꾸며진 입구에서부터 마음이 겸허해진다. 입구를 지나 본 전시관에 들어서면 그리 크지 않은 실내에 각종 전시물들이 전시되어 있고, 전시관 안쪽 끝에서는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보통 전시관에서 틀어놓는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일은 드문데, 이곳에서는 꼭 보아야 한다. 앞서 보고 있던 젊은 두 여성들이 눈시울을 붉히며 나오길래 너무 과한 반응 아닌가 싶었는데, 10분 뒤 눈시울을 붉히며 나오는 내 모습이라니.. 뒷사람들도 나를 보며 과한 반응이라 여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영상을 보며 그냥 그분들을 모르고 살았던 것이 죄송했고, 그분들이 계셔서 감사했다. 우리나라의 급격한 발전은 거저 된 것이 아닌데 너무 당연하게 누리고 살다 보니 나의 부함과 편함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전시관 옆에 있는 추모공원에 들러 감사함과 죄송한 마음을 살짝 묻어 두고 나왔다.


 독일마을에 다시 오고 싶게 만드는 힘은 숙소에 있다. ‘하이디하임’이란 숙소를 찾아가게 되었는데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에 바다와 별을 볼 수 있는 테라스까지 마음이 쏙 든다. 나이가 아주 많아 보이지 않는 주인아주머니는 바로 앞 하이디하우스에 지내시는 듯한데 조식 먹을 때만 볼 수 있었지만  항상 다정하게 인사해 주신다.

 조식은 그 어떤 기대도 뛰어넘을 만큼 경험해 보지 못했던 놀라움이었다. 독일 어느 큰 성에 초대되어 접대받는 기분이랄까? 미리 잘 세팅된 테이블에 앉으면 아주머니가 과일과 빵, 치즈, 소시지 등과 커피를 따라 주신다. 평소 아침식사를 즐겨하지 않는 나이지만 분위기에 취해 40분간이나 조식을 즐기고 있었고, 먹지 않던 진한 커피도 한잔을 다 비우게 될 정도였다. 이곳에선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편안하고 안락하게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것만 같다.


물건리 방조어부림

 독일마을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기 원한다면 파독전시관 옆에 있는 전망대에 오르면 된다. 이 전망대에선 독일마을부터 그 너머 바다까지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반대로 아래에서 위쪽으로 독일마을을 올려다보고 싶다면 바로 이곳 ‘물건리 방조어부림’으로 가면 된다. 독일마을에서 바다 쪽으로 쭉 내려오면 금세 도착하는 방조어부림에서 오밀조밀 모여있는 독일마을의 오렌지색 지붕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유럽의 어느 시골 마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방조어부림은 해안가에 붙어 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울창한 숲 속이라는 느낌을 준다. 바람은 막고 물고기는 불러들이기 위해 조성된 곳이라 하는데, 물고기가 녹색을 좋아하는 습성이 있어서란다. 그렇담 낚시를 즐기기에도 아주 좋은 장소이려나? 낚시하기 완벽한 곳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조용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걷기에는 아주 그만인 곳이다.  숲 사이로 곡선의 나무데크를 깔아 놓아서 남녀노소 누구나 힘들이지 않고 지루하지 않게 거닐 수 있다. 또한 숲 사이로 하얀 등대와 빨간 등대의 조우를 보게 된다면 간절히 원하던 사랑이 이루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서로 사랑하는 이들은 사랑이 더욱 깊어지고, 사랑에 갈급한 이들은 숲 속에서 그 목마름을 잠시나마 잊어보자구요.



투. 다랭이마을


 남해도는 우리나라에서 5번째로 큰 섬이다. 작지 않은 이 섬에서도 가장 아래쪽 끝까지 가야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다랭이마을이다. 누구에게도 로망이 될 수 있을 만큼 먼, 남쪽 땅끝에 있는 곳이다. 지금은 남해 여행의 상징이 될 만큼 유명해졌지만, ‘아직은’이라는 말을 붙일 만큼 옛 느낌이 여전히 살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찾아오는 사람들의 기대는 아마도 바다를 배경으로 층층이 수 놓인 멋진 다랭이 논을 보고 싶고 찍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막상 가보면 그것은 겉모습일 뿐 다랭이마을의 진짜 매력은 마을 구석구석과 해안 산책로에 더 많이 깃들어 있다. 마을로 내려가는 가파른 시멘트 길, 작은 마을임에도 어디가 어디인지 혼동되는 좁은 골목길, 그 골목길 사이사이 숨바꼭질하듯이 숨어있는 상점들, 그 길을 지나 펼쳐지는 해안산책로까지 정신없이 아름답다. 해안가로 내려가는 입구에 는 색색의 꽃들이 심겨 있는데 누구 하나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사진을 찍는다. 나도 저 꽃처럼 누군가의 시선과 발걸음을 붙잡고 사진으로 담을 수 없는 설렘과 즐거움을 멈춘이들에게 선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저 꽃들의 매력에 질투를 느껴본다.

 해안 산책로는 거칠지만 그것이 전혀 어려움이 되지 않을 만큼 멋진 길이다. 투박하지만 아기자기한 다랭이마을의 감성이 해안에도 그대로 배어있는 것 같다. 어느새 두어 시간이 금세 지나갔지만 다랭이 마을의 반전매력에 두 다리가 쉴 틈도, 두 눈이 지루할 틈도 없는 ‘순간’이었다.


코나하우스

 다랭이마을에서 차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브런치 카페다. 도로쪽에서 보기에는 허름한 모텔이나 펜션 한 채가 덩그러니 놓여 있어 그다지 멈춰 서고 싶지 않게 생겼다. 야심차게 브런치를 먹기로 하고 주린 배를 움켜쥐며 왔는데 뭔가 불안하다. 문을 닫은 것만 같다. 입구를 찾아보니 우측 계단 아래로 내려오라는 표시가 보인다. 그리고 계단을 내려가니 그제야 아름다운 정원과 바다 뷰를 품은 카페가 나타난다. 휴~ 도로변의 주차장 쪽에서는 카페가 지하에 해당하고 바다쪽에서는 1층에 해당하는 구조로 되어 있어서인지 이런 극적인 반전 효과가 나타난다. 들뜬 마음으로 카페 안에 들어섰다. 직원분이 반갑게 맞아주신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사장님이 안 계신 관계로 브런치 음식은 준비가 안된다는 것이다. 크헉!!! 우린 커피를 마시러 온 게 아닌데... 밥 먹고 느긋하게 들렀다면 천국이었을텐데 지금 내 배속은 지옥을 경험하고 있다. 그렇게 아름다운 정원을 뒤로하고 서둘러 떠나야만 했다. 다랭이마을 여행길에 들리기 좋은 카페임에는 분명하지만 브런치가 먹고 싶다면 꼭 전화해보고 가자!!



쓰리. 보리암


 금산에서 남해의 풍광을 한눈에 내려다보기 위해 10분만 걸으면 된다는 말은 사실일까? 놀랍게도 사실이다. 한려해상국립공원 내의 유일한 산악공원인 금산의 높이는 681미터! 정상 좀 아래쪽에 위치한 보리암은 거대한 기암괴석들 사이에 남해를 바라보며 절묘하게 지어져 있다. 사람 대신 자동차 엔진이 힘겨운 소리를 내며 가파른 산길을 한참 올라서면 어린아이부터 임신부까지 누구나 가벼운 산책 정도의 발걸음으로 갈 수 있게 도로와 주차장 산책로가 정비되어 있다. 하지만 쉽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도착한 보리암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풍광은 결코 가볍지가 않다. 본래 힘겹게 산을 올라야 그에 대한 보상과 보람으로서 더 큰 감동을 느끼게 되는 법인데, 보리암의 양쪽 처마 끝 사이로 펼쳐진 한려해상의 모습은 그마저도 무력화시킬 만큼 모든 이들에게 숨막히는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과연 남해 제1경답다. 살짝 안개가 낀 듯 선명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파란 하늘 아래 올록볼록한 산새와 섬들, 그 너머 아득하게 그어진 가로의 수평선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그림같은 풍경을 눈 앞에 선사한다. 누구라도 한동안 먹먹하게 바라보고 겸허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삶의 무게를 견디기 힘들 때 족쇄같은 그 짐을 벗어던지게 해 줄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곳인 것 같다. 그래서 보리암에 그리도 많은 이들이 찾아와 기도를 드리고 가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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