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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군 Jun 07. 2019

진주와 함양

경상남도 함양군과 진주시는 여행지로 많이 조명받지 못하는 곳들이다. 그냥 지나치기에도... 그렇다고 진득하게 머물기에도 뭔가 조금은 아쉬움이 남을 것 같은 여행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로 멀지 않은 두 도시를 함께 여행해 보는 건 어떨까? 뭔가 아쉬울 것 같았던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지 않을까? 함양은 좀 더 자연 친화적이고, 진주는 좀 더 도시적이니까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신선하고 재미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상림공원


짧은 일정상 함양에서는 오전에 한 곳만 갈 수 있었다. 어디를 갈 것인가 고민할 필요도 없이 상림공원으로 향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 숲이자 신라시대 때 조성됐을 만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데 함양이 아닌 다른 어떤 도시에 있더라고 꼭 가봐야 하지 않겠는가.


아직 5월의 끝자락임에도 햇살은 단단히 착각한 듯 한여름의 뜨거움을 흩뿌리고 있었다. 하늘은 또 왜 이리 푸르른지 상림공원을 누비고 누리기에 완벽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다. 뜨거운 주차장을 벗어나 숲 속 산책로인 ‘고운숲길’에 들어서니 서늘한 바람이 먼저 달려나와 반겨준다. 빈틈없이 양산을 이어 놓은 듯 햇살을 가려주고 있는 활엽수 나무들의 가지와 입사귀들은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인 듯 묵직하고 근엄한 무게감으로 지나는 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걸어도 좋고 멈춰도 좋은 이 기분. 숲 속에서의 시간은 무의미해진다. 그저 내 온몸과 마음이 평화롭게 환기되고 있을 뿐이다.


진주성


눈부신 승리와 참혹한 패배가 공존했던 진주성의 현재 모습은 예쁘게 잘 정돈된 잔디 위에 아이들이 뛰어놀고, 다정하게 시간을 보내는 커플과 가족들이 한가롭게 거닐고 있는 곳이다.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로 꼽히는 진주대첩에서 진주목사 김시민이 이끄는 3,800여 명은 진주성에서 왜군 2만여 명을 무찌르는 위대한  승리를 거둔다. 하지만 이때 김시민 장군은  이마에 적탄을 맞고 순국한다. 이듬해 전열을 가다듬고 대대적으로 쳐들어온 10만 왜구와의 2차전투에서는 만관군 7만여 명이 치열하게 사투를 벌이지만 패배하여 모두 죽임을 당하게 된다.

승리와 패배. 오늘 난 진주성의 어떤 역사를 마음에 새겨야 할까? 둘 다 새겨야 한다! 그 대단한 승리는 기념하고 자랑스러워해야 하고, 그 처참한 패배는 기억하고 슬퍼해야 한다. 더불어 다시는 이러한 전쟁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작은 힘이라도 보태야 할 것이다.


진주성의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촉석루일 것이다. 촉석루는 진주성의 남쪽 벼랑 위에 우뚝 솟아 있는데 멀리서 바라보는 촉석루의 모습과 촉석루에서 바라보는 남강의 모습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아쉽게도 국보로 남아있던 촉석루는 6.25전쟁 때 불에 탔고 1960년에 국비, 도비, 시비와 시민들의 성금으로 복원된 것이 현재의 촉석루다. 감사하게도 지금의 촉석루는 누구나 신발을 벗고 누각에 들어갈 수 있다. 누각에 올라 마루의 촉감을 발로 느끼며 남강이 잘 내려다 보이는 가장자리로 가보았다. 자리를 잡고 앉아 남강을 바라보고 있자니 역사 속 승리와 패배의 교훈은 온 데 간데없고 시원한 바람과 눈 앞에 펼쳐진 푸르른 풍경만이 온몸의 감각을 들뜨게 만든다.


촉석루에서 내려오면 남강쪽으로 작은 입구와 계단이 있는데 그리로 내려가면 논개가 순국한 바위 ‘의암’이 나온다. 진주성이 함락되고 7만여 명의 가족과 이웃들이 참혹하게 죽어가는 것을 본 논개의 절망감을 생각해보니, 살아있다는 이유가 오직 죽기 위함이 되었을 그녀의 용기가 슬프게 다가왔다. 매일매일 가족과 싸우고 이웃과 담을 쌓고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오늘날의 모습이 진주성과 논개 앞에서는 부끄럽기만 하다.



황포냉면


나는 냉면을 별로 안 좋아한다. 그래서 어떤 냉면이 맛이 있고 깊은 맛을 내는지 구분하지 못한다. 그런 나지만 진주의 황포냉면은 신세계였다. 이미 지역에서는 맛집으로 소문이 자자한지 회전율이 좋음에도 끊임없이 번호표를 뽑는 사람들이 들락거렸고, 사방에서 경상도 사투리가 들려왔다.

물냉과 비냉을 섞은 오묘한 맛의 특미냉면(섞어냉면)과 육전, 손만두를 먹었다. 특히 특미 냉면은 정말 맛이 있었는데 고명의 양이 많고, 황태, 육전이 들어가 있어 부드럽고 다양한 식감으로 심심할 틈이 없이 조화로운 맛을 냈다. 난 앞으로 평양냉면도 함흥냉면도 아닌 진주 황포냉면이 짱이야! 라고 외치고 다닐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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