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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 Apr 06. 2016

어쩌면 행복이란, 나를 위한 음악을 듣는 것

UK, heaven for music lovers

부부가 비슷한 취향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미끼씨와 내 성격과 가치관이 정말 다름에도 불구하고 둘의 사이가 아주 좋은 이유 중에 하나가 둘 다 음악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거의 항상 음악을 틀어 놓고 있으며, 영국으로 올 때도 CD를 왕창 가지고 왔다 - 그런데 CD를 재생할 오디오가 없어서 쌓여만 있다. 허허.


상대적으로 커리어면에서 덜 대중적인 영국으로 일치감치 가겠다고 결심한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가, 젊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 여행과 문화를 많이 즐겨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유럽에선 여행 가기가 상대적으로 편리하고, 어릴 때부터 영국의 공연 문화는 동경해왔으니까. 그리고 사실 그런 식으로 꼬셔서 결혼에 성공(?)했다.


지금은... '어...음... 삶에 치여 여유가 없어서...'라는 핑계로 애초에 약속했던 만큼의 십 분의 일도 못 해주고는 있지만 (미끼씨 표현에 의하면 전혀 안 해준다나), 흠흠, 뭐, 다른 남자들도 다 그렇게 사기(?) 쳐서 결혼한다고 우기면서 뻔뻔하게 버티고 있다, 괜히 미안하니까 더욱더 우긴다. 방귀 뀐 놈이 성질 더 낸다고.



아무리 세월이 많이 지났어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국 음악 하면 그래도 비틀즈 (Beatles)를 제일 많이 떠올리지 않을까? 아직도 폴 매카트니 (Paul McCartney)는 활발히 음악 활동을 하고 있고 - TV에도 은근히 자주 나온다 - 비틀즈의 곡으로 채워진 뮤지컬 렛 잇 비 (Let it be)도 흥행 성적이 괜찮다 (이번에 내한 공연도 한다고 한다). 이른바 비틀즈를 필두로 하는 1960년대의 브리티쉬 인베이젼 (British Invasion) 이후 아직까지도 수많은 영국 아티스트들이 음악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 부부는 둘 다 장르를 안 가리는 음악팬이라, 비틀즈같은 오래된 팝도 물론 좋아한다. 나는 소위 말하는 브릿팝(BritPop)의 팬이다 - 오아시스 (Oasis), 블러 (Blur), 콜드플레이 (Coldplay), 라디오헤드 (Radiohead)등 조금 지난(?) 밴드들을 사랑한다 (쓰고 보니 누구나 좋아하는...)


이런 대중적으로 이미 성공한 밴드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아티스트들과 신인들, 인디 음악가들, 아마추어 음악가들까지 하면 정말 많은 음악을 영국에서는 쉽게 접할 수 있다. 버스킹 (Busking) 음악가들은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고, 수많은 라이브 클럽에선 거의 매일 여러 장르의 공연이 있다. 라디오헤드가 옥스퍼드 (Oxford) 외곽의 제리코 타번 (Jericho Tavern)에서 데뷔한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아마 지금도 아직 빛을 못 본 묻혀 있는 진주들이 자신들의 음악에 혼을 불태우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주말에 서는 시장 같은 곳에서 버스킹 하는 밴드들도 의외로 상당한 실력을 지닌 경우가 많다.


유명한 gig venue, Jericho tavern, Radiohead가 데뷔한 곳으로 유명하다 (다른 이름으로 데뷔했지만). 지금도 활발히 성업중.


이렇게 음악의 공급(?)이 많은데도, 유명한 아티스트의 공연은 즐기기가 쉽지 않다. 티켓 가격 때문에? 물론 유명한 아티스트들의 공연은 비싸다. 그래도 음악팬이라면 돈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티켓이 미친 듯이 빠르게 팔린다는 것이다. 아델 (Adele) 같은 소위 대세 가수는 말할 필요도 없다 - 티켓 오픈과 동시에 거의 매진이다. - 조금 알만한 아티스트들의 공연도 티켓 오픈이 조금만 지나면 괜찮은 자리는 이미 다 팔리고 없다. 심지어 쇼디치 (Shoreditch)의 라이브 클럽들도 조금만 늦게 가면 매진이다.


상대적으로 젊은 팬들, 공연에 관심이 많고 구매 의사가 높은 층을 대상으로 하는 공연만 이런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전혀 그렇지가 않다. 클래식, 오페라, 발레, 뮤지컬까지 티켓 구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서양 특유의 예약 문화 때문이기도 하지만. - 일찍 예매할수록 가격이 싸기도 하고. 어쨋든 그래서 영국에서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공연을 합리적인 가격에 보기 위해서는 꽤 부지런해야 한다.


그렇게 문화의 선순환이 이루어져서 수요가 많으니 공급도 많고, 또 이것이 새로운 수요와 공급을 낳는다. 실제로, 공연만을 즐기기 위해서 영국에 오는 관광객 수도 상당하다고 한다. 하긴 우리나라 관광객들도 보통 뮤지컬 한 편씩은 보고 가는 편이니까. 재미있는 것은, 어떤 기사에서 읽었는데, 아티스트 입장에서도 좋은 공연 장소 (venue)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엄청 심하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영국인들은 음악 공연, 특히 야외 공연을 엄청 즐긴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글라스톤버리 페스티벌 (Glastonbury Festival)이 대표적이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이 축제는, 5일 동안 음악만을 위한 축제다. 전 세계수많은 비슷한 축제들에게 영감을 줬으며, 많은 아티스트들이 한번 서보고 싶어 하는 곳이다. 2015년에 13만 5천 명의 음악팬들이 축제를 즐겼다. 티켓은 한 사람당 35만원 선이니 나쁘지 않다 -비싸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5일 동안 하는데다가, '나는 음악은 크게 관심 없어' 하는 사람도 한 번쯤 들어 본 아티스트들이 라인업에 포진해있다. 당연히 미친듯한 티켓 구매 경쟁이 있고 암표 같은 부정 구입을 막기 위해서, 1년 전에 (보통 9월) 구입 예약 신청을 받는다. 보증금을 내고 구입 예약을 할 수 있게 되면, 보통 4월에 남은 잔금을 치르고 티켓을 배송받는다. 암표를 막기 위해서 처음에 사진까지 등록해야만 구입할 수 있다. 승인과 등록에도 제법 시간이 걸리므로 1년 전에 계획해야 한다. - 혹시  '오! 재미있겠다! 가봐야지!'.. 하시는 분들, 그러니까 올해는 못 갑니다. 저도 시기를 사정상 놓쳐서 미끼씨에게 깨지고 있습니다. 2016년 가을에 준비하시고 2017년에 가세요 - 보통 각 주요 도시에서 글라스톤버리까지 가는 버스가 포함된 패키지로 많이들 다녀온다. 비록 장소가 여러 모로 불편하고, 작년엔 카니예 웨스트 (Kanye West)의 공연 태도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고, 이제는 너무 상업화되어 변질되었다는 비판도 많이 받지만... 음악팬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이벤트임에는 분명하다. 얼마 전에 1차 라인업이 올라왔다. 역시 올해도 장난 아니다. BBC 홈페이지에서 2015년 축제의 하이라이트를 제공한다. http://bbc.in/1KiXaPA


현재는 관람 정원이 13만5천명이다. 징그러울 정도로 많은 인파다.
올해 2016년 라인업엔 Coldplay-Adele-Muse-FOALS-BECK-LCD sound sytem....etc.. ㅠㅜ


신기한 것은 이런 식의 음악 페스티벌은 영국 전역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을 뿐이지, 대부분이 항상 매진이다. 참가하는 아티스트들도 말 그대로 빠방하다. 하긴 뭐 자국 아티스트만 모아도 라인업이야... 한 예로, 런던의 주변 도시 중에 하나인 레딩 (Reading)에서 하는 락 페스티벌도 유명한데,  올해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 (Red Hot Chilli Peppers), 이메진 드래곤스 (Imagine Dragons)등이 참가한다고 한다. 락 페스티벌 외에도 음악이 중심이 되는 축제는 정말 많다. 알려진 거의 모든 음악 장르의 축제가 있다고 생각해도 될 정도다.




락 페스티벌에 글라스톤버리가 있다면, 클래식에는 프롬(Proms)이 있다. 매해 여름 열리는 세계 최대의 클래식 음악 축제다 - 정식 이름은 The Henry Wood Promenade Concerts presented by the BBC. 여기서 말하는 Promenade Concert란 원래 관객이 편하게 감상할 수 있게, 공원에서  열리는 콘서트 같은 것이라고 한다, 그걸 줄여서 프롬. 로열 알버트 홀 (Roya Albert Hall)과 몇 군데 장소에서 (Proms Extra, 공연뿐만 아니라 강연과 토론 등의 교육 프로그램도 있다. 무료도 많다) 열리는 프롬은, 어떤 사람들의 말처럼 가장 민주적인 공연이라고도 하는데 - 왜냐하면 로열 알버트 홀에서 서서보는 프로머 (prommer)를 위한 스톨 (stall)의 가격이 5파운드다! 샌드위치 하나와 커피 한잔 마실 돈이면, 세계적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일찍 줄을 서서 표만 살 수 있다면 말이다 - 프롬 티켓은 선착순 판매인 관계로 (약 1000장), 유명한 지휘자나 오케스트라가 오면 - 작년 프로그램엔 발레리 게르기예프 (Valery Gergiev)와 런던 심포니의, 사이먼 래틀 (Simon Rattle)과 비엔나 필의 협연이 있었다 -  짧게는 3-4시간, 길게는 6-7시간 이상 기다려도 못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정말 보고 싶은 연주가 있다면 좌석을 예매하면 된다. 물론 명성에 따라 가격은 다르며, 티켓의 매진 속도도 거기에 몇 배 비례한다고 보면 된다. 가격도 정규 공연에 비교하면 엄청나게 싸다. 가장 비싼 티켓도 100파운드 내외니까. 재미있는 것은 티켓의 가격을 보면 프롬 티켓을 사기 위해서는 언제쯤 가야 할지 감이 온다고 한다, 즉 티켓이 비쌀수록 = 명성 있는 아티스트의 연주 = 프롬 티켓 수요도 높기 때문에 일찍 가야 한다는 것. 비록 줄을 아주 오래 서야 하고, 공연도 서서 봐야 하지만, 오케스트라 바로 앞에서 같이 호흡하며 느끼는 감동을 상상해보면 클래식 팬이라면 한 번쯤 프로머가 되어 보고 싶을 것이다 - 가족 팬 등을 배려해서 클래식만을 연주하지는 않는다. 다양한 크로스 오버 음악이 있다. 원래 프롬의 취지가 좀 더 대중을 위한 음악회인 만큼, 프롬 기간에는 BBC에서 라디오와 TV를 통해 중계도 한다. 2015년의 프롬 하이라이트는 BBC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http://bbc.in/1PC8vN3


RAH의 Proms. 오케스트라 바로 앞 둥근 stall에 서서 듣는 팬들이 보인다 . 올해 프로그램은 다음 주에 나오고 예약은 5월 7일 부터 시작한다.


 영국 사람들이 예술과 문화에 특히 더 뛰어난 소양과 재능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오디션 프로만 봐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훨씬 노래 잘한다). 다만 훨씬 많은 예술과 문화를 접할 기회가 있으니 자연스럽게 그 중요성과 울림을 체득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예술인들에 대한 존중과 애정이 배어나는 것이고. 얼마 전에 데이빗 보위 (David Bowie)가 사망했을 때, 모든 주요 신문은 특별 커버를 제작해서 위대한 예술가와의 이별을 진심으로 애도했다. 특별 방송도 한주 내내 이어졌다. 아직도 캠든(Camden)에 있는 에이미 와인하우스 (Amy WInehouse)의 추모 동상 앞엔 그녀를 그리워하는 팬들의 꽃이 끊이지 않는다. 음악팬의 한 사람으로서, 그런 영국인들의 예술에 대한 존중과 사랑은 참 부럽다. 왜냐하면 그런 아티스트와 그들의 예술에 대한 애정은 다시 대중에게로 돌아와서 삶의 큰 에너지가 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교회의 성가대나 아마추어 음악가들의 자선 공연에서도 관객들은 그냥 퇴장하는 법이 없다 - 각자 소정의 기부를 해서 그들의 예술에 감사하는 태도를 보인다. 거리의 버스킹 음악을 잠깐이라도 지나치지 않고 들었다면 성의 표시를 꼭 한다.


David Bowei의 사망을 알리는 주요 신문사들의 커버. 개인적으로는 Guardian의 것이 제일 멋졌다. 출처는 telegraph.


사실 영국에서 각종 공연의 티켓 가격은 외국인들에게만 비싼 편이 아니다. 그럼에도 어느 공연장에도 항상 관객들은 빼곡하다. 아티스트가 직접 들려주는 음악은 그냥 음악 이상의 것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건 한 번이라도 공연장에 가본 사람은 누구나 알게 된다. 콘서트를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밖에 가보지 않은 사람은 없지 않을까.


음악을 사랑하는 민족이라면 우리나라 사람들도 세계에서 손꼽힐 텐데. 슬프게도 문화를 즐기는 것 마저도 특권이 되어가고 있다. 팍팍한 살림에 점점 더 음악을 즐길 시간적/경제적 여유는 없어지고, 비슷한 사정으로 음악가들도 그들의 문화를 나눠 줄 기회가 줄어드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점점 개선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정착된 악순환은 쉽게 없어지지 않음을 알기에 씁쓸하다. 때로는 세상 어떤 것 보다도 한곡의 음악이 더 큰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된다. 일찍이 백범 김구 선생이 말한 대로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을 행복하게 한다. 지금 힘들고 지친다면, 자신을 위한 음악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가능하면 직접 라이브로. 당신을 위로해줄 아티스트들이 어딘가에는 반드시 있다. 비록 영국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쉽게 찾을 수 없을지라도, 그렇게 힘들게 찾아낸 음악은 반드시 당신에게 더 큰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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