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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 Mar 23. 2016

런던에서는 다 외국인

Multicultural London

영국 악센트는 왠지 멋지게 들린다 (당연히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실제 영국 전문이라고 광고하는 유학원들이 영국 유학을 추천할 때,

'정통 영국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라는 식의 광고를 많이 하고 있다. 영국으로 오는 사람들에겐 '영국 영어'에 대한 환상이 다들 어느 정도는 있을 것이다 - 유학이든 관광이든.


보통 히드로 (Heathrow) 공항에서부터 뭔가 상상과는 다를 것이다.


비행기를 내려서 제일 처음 보게 되는 공항 직원들은 대부분 유색인종이다. 뭔가 잠재적인 불법 체류자를 취조하는 듯한 태도의 출입국 관리국 요원(Border Agency)들도 유색인종이 많은 편이다. 당연히 다들 영국 시민권자, 즉 영국인이다. 그러나 뭔가 상상하던 이미지와는 다르다.


보통 지하철(tube)나 히드로 익스프레스 (Heathrow Express)를 타고 런던 시내에 들어온다. 호텔 등의 숙박 업소에서 일하는 스태프는 동유럽인이 많다. 어학원/호스텔에서는 스페인/이탈리아에서 온 친구랑 베프가 되기 쉽다.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데... 하고 있는데, 어떤 동양인이 말을 건다, 안녕하세요, 한국분이죠? 앙???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서울 시내에서 한국어 학원에 다니는 한국 사람이 직원과 강사 외엔 누가 있을까? 어학원은 둘째 치고, 대학이나 전문학교 등의 고등교육 기관에도 뭔가 일반적으로 우리 이미지의 정형화된(sterotype) 영국인들은 많이 없다. 숙박업소에서 묵는 사람들은 대부분 관광객일 것이고.


잉? 그러면, 엠마 왓슨(Emma Watson), 브릿지 존스는?? (Bridge Johnes)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Benedict Cumberbatch) 콜린 퍼스는??!!! (Colin Firth) 영국 악센트의 영국인은 못 만나는 거야?! - 네. 그렇게 많이, 쉽게 만나지는 못할 거여요, 미안요, 그리고 르네 젤위거는 (Renée Zellweger)는 미국인이여요.




내게 유학은 오랫동안 가진 꿈이었다. 뭔가 대단한 야망과 목표를 갖고 시작한 것은 아니고, 막연히 다른 나라에서 젊을 때 살아보고 싶은, 철없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그러하다는 점은 문제지만). 어학 연수나 배낭여행도 안 가본 나는, 그래서 영어 공부에 나름 공을 많이 들였고 (보통 사람과 다른 관점에서 매우 소심하다;;), 나름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고 영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패딩턴 (Paddington) 역에 도착해서는 배가 고파서 샌드위치를 사러 갔다.


"Um, one TLC and one latte, please"
"Sopklhsadjb dhfs egeOFG GJAWUEG?"
"(헉; 뭐라는 거지) uh;; sorry?"
"Pruwahr gihaieyrhfw, asgdag  AOSHFUHWG??"
"(헉; 그래도 모르겠네;; 아마 뭐 더 필요한 거 없나라고 물어보는 거겠지? 영수증 줄까라고 물어보는 건가? 모르겠다;;) Ah... no. Cheers."


꽤 오래전 일이지만 아직도 그때 뭐라고 했을까 궁금할 때가 있다.


사실은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를 못하는 것에 대해서, 심하게 부끄러워하는 경향이 있다. 한 외국인 동료는 아시안들, 특히 일본인이나 한국인들은 꼭 그런 말을 한다고 했다 - "아엠 쏘리, 영어 잘 못해요"

왜 미안하지? 모국어도 아닌데? 언어라는 건 그냥 도구 아닌가? 당연히 외국인들도 (겉으로 표현은 안 할지라도) 악센트를 신경 쓰고, 영어가 능숙하지 못한 걸 눈치채면 은근한 (때로는 대놓고) 차별과 무시를 한다. 특히 영국은 계급의식이 남아 있는 사회라서, 사용하는 영어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그건 그 사람들의 문제고, 우선되어야 할 것은 영어를 잘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바를 전달하고 소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말은 그럴싸하게 하지만, 나도 아직 완전히 극복은 하지 못했다. 영어로 한 시간을 발표도 하고, 에세이나 논문을 수천수만 단어 분량으로 쓰지만, 구청 (council, 의역입니다)이나 우체국에 전화하는 것은 두렵다. 전화 상담원들의 영어는 보통 알아듣기가 힘들다. 특히 인도계나 중동 계열의 상담원이라면 서로 갑갑해질 수도 있다. 나를 당황시켰던 그 샌드위치를 팔던 아저씨는 인도 출신이었던 것 같다. 즉 내 영어가 부족해서 못 알아 들었지만, 또한 그 사람의 영어가 알아듣기 힘들었던 것이었을 테다.


그래서 런던에서는 영어에 뻔뻔해질 필요가 좀 더 있다. 앞서 말했듯이, 어학원의 선생님이 아니면 (사실은 선생님도 영국인이 아닌 경우가 있다고 한다), 런던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외국인 (foreign-born people)이다. 2011년 통계에 따르면 전체 런던 인구 830만 명 중에 3백만 이상이 foreigm-born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인도계, 유럽계 2세까지 더하면 훨씬 많아진다. 런던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3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지만 잘 사는 사람도 많다. 가끔은 라틴 계열 친구들의 영어에 대한 태도가 부럽기도 하다 - 명백히 자기가 못 알아들어서 발생한 상황일 때도 화를 낸다, 못 알아듣겠으니 다시 말하라고!!!




사실 언어로 인한 갈등은, 에피소드가 될 귀여운 수준이다. 다양한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살기 때문에, 문화 차이로 인한 갈등은 때로는 심각하다. 어떤 나라 사람들의 주식인 음식은, 다른 어떤 나라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으며, 특정한 문화권의 생활양식은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에게는 무례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가끔은 이러한 갈등이 극단적으로 충돌하는 경우도 있다.


유럽 전체에 이미 퍼져있는 무슬림 이민자 문제는 영국도 예외가 아니다. 영국의 대부분의 대도시에는 큰 모스크(mosque)가 있다. 대한항공도 쓰는 터미널 4에는 다양한 믿음을 위한 큰 기도실 (multi-faith prayer room)이 있다. 런던, 옥스퍼드(Oxford), 케임브리지(Cambrdige)등의 외국인 수요가 많은 도시들의 부동산은 중동인, 중국인들에게 많이 잠식된 지 오래라 한다. 그래서 그런 도시들의 중심부에는 영국인들이 살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비싼 집세를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에.


East London, whiechapel에 있는 London Muslim Center, 출처는 Guardian.


무슬림들이 지금도 제일 많이 거주하는 동부 런던에서는, 2013년에 극단적 이슬람 주의자들에 의한 'Sharia law zone' 사건이 있었다. 이들은 무슬림 법인 sharia를 수호하는 자경대를 조직하여 음주/가무와 여성 들의 복장 단속 등을 주장하며 행인들을 무차별 폭행한 혐의 등으로 체포되었다. 같은 무슬림 단체에서조차 강하게 비난받았던 사건이지만, BBC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내심 그들에게 동조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Sharia Zone 사건의 주동자로 체포된 극단 이슬람 주의자인 Jamaal Uddin, 스스로 개종한 Jordan Horner라는 영국인이다.


사실 문화 차이, 언어 차이에서 오는 갈등은 한 민족 내에서도 존재한다. 우리나라처럼 작은 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 갈등은 세계 어디를 가나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막상 겪어보고 이야기를 해보면 다 같은 사람이며, 보편적 가치관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정말 상종 못하겠다는 사람은 오히려 만나기가 드물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주로 욕하는, 이웃의 큰 나라 사람들도 막상 친구가 되면 오히려 같은 문화권 사람들이라 더 친해지기 쉽고 익숙하다. 완전히 다를 것만 같은, 다양한 문화들은 막상 접해보면 재미있고 배울 점이 있으며, 궁극적인 점에서 유사한 점이 있다 - 가령 브라질에는 가부장적 분위기가 남아있고, 폴란드 사람들은 노인을 공경하는 예절을 중시하며, 프랑스 사람들은 내장탕 비슷한 요리를 해 먹는다. 어느 나라 외국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Brick Lane의 Sunday market에 가면 정말 온갖 나라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BTripes Mode de Caen

런던, 유럽의 이런 갈등은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다. 서울은 이미 수많은 외국인들이 살고 있으며, 성비 불균형으로 인한 국제결혼의 인기 때문에 조금만 지방으로 가도 외국인 주부를 찾기 어렵지 않다. 국도의 휴게소에서는 동남아시아 출신 직원들을 꽤 보았다. 다양한 문화권은 도입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점점 커지는 우리나라의 영향력 때문에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고, 통제할 수도 관리할 수도 없는 사회적 현상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무작정 사회적 이슈로 만들기만 할 때가 아니라 (특히 특정 의도를 가지고), 한 번쯤 자연스럽게 환기시켜 생각해 봐야 할 주제라고 생각한다.




글을 써놓고 퇴고하기 위해 저장만 해놓았는데, 벨기에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결국 이러한 갈등으로 귀한 생명을 잃는 사람들은 보통의 서민이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이런 의미 없고 슬픈 폭력의 순환이 언젠가는 없어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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