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의 동침
그럼, 티브이랑 작은 냉장고 하나 방 안에 놔줄게. 집에 들어와라.
당시 운영하고 있던 카페는 코로나 타격부터 시작해, 바로 주변에 1500원짜리 저가 커피점이 여러 군데 생기면서부터 매출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설상가상 같은 건물 1층 바로 옆에까지 카페가 하나 더 생기면서 내 매출은 말 그대로 반토막이 났다. 부모님께 내는 가게 월세도 제대로 못 내는 주제에 분가해서 따로 월세 내고 살고 있는 게 말이 안 되는 상황이긴 했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어떻게 해서든 부모님 집에 들어가고 싶진 않았다.
엄마 아빠랑 사는 게 왜 그렇게 싫어? 혼자 있으면 뭐가 그렇게 좋아?
완전한 자유. 그것을 위해서라면 빚을 내서라도 어떻게라도 계속 따로 살고 싶었지만 더 이상 버티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걸 나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엄마의 물음에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내가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 필요한 게 뭘까? 아니, 내가 원하는 자유란 뭘까?
외출 후에 돌아와서 씻지도 않고 침대에 뒹굴거리는 자유, 발가벗고 집 안을 돌아다니는 자유, 먹고 싶지 않을 때 안 먹고 먹고 싶을 때 뭐든 먹을 수 있는 자유, 밤늦게 집에 들어와도, 또 집에 누굴 데려와도 괜찮은 자유 같은 것들이 마구 떠올랐지만 중요한 건 어쨌든 나만의 공간을 갖는 거였다. 내가 집에서 하던 건 뭐든 내 방에서 할 수 있게 해 준다고 엄마가 계속 나를 설득했다. 속으로 그래도 남자는 못 데려오겠죠, 하긴 했다. 내 방에서 혼자 마음껏 놀고 쉴 수 있게 해 주세요. 술도 혼자 자유롭게 마시고 싶어요, 했더니 엄마가 내놓은 해결안이 바로 티브이와 냉장고였다.
티브이까지 사준다는 말을 들으니 나는 더 이상 물러날 데가 없는 것 같았다. 엄마 아빠는 그만큼 나를 집에 다시 데려오는데 진심이었다. 나는 고민 끝에 냉장고는 그냥 부엌 냉장고를 쓸 테니까 한 칸 정도를 내 것으로 달라고 하고, 티브이는 중소기업 것으로 저렴한 것을 하나 사기로 했다. 대신 약속 몇 가지를 추가했다.
내 방에는 노크하고 들어오기, 청소하거나 씻으라고 잔소리하지 않기, 일찍 자라고 하지 않기, 술 마신다고 뭐라 하지 않기 등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 기억이 희미해진 이유는 몇 개는 지켜지고 있지만 몇 개는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님 댁과 내 집과는 차로 10분 거리로 운동삼아 걸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부모님이 하시는 부동산을 반 쪼개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카페 월세는 부모님께 내고 있었던 것이라 즉 일터도 같은 장소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아침 일찍 출근해서 카페를 오픈하고 한바탕 아침 출근 손님을 받아내고 나면 오전 10시 즈음 아빠가 출근해서 내 아침인 야채 주스를 건네주셨다. 점심시간 손님을 또 한바탕 쳐내고 난 뒤 오후에는 알바에게 잠시 카페를 맡겨두고 부동산에 가서 늦은 점심을 먹고 한숨 자기도 했다. 엄마가 전날 만든 음식을 수시로 갖다 주면서 그날 저녁거리까지 해결해 줬기 때문에 따로 살긴 하지만 부모님께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카페는 더 이상 앞날이 보이지 않았다. 4년을 운영하면서 허리 디스크와 족저근막염이 생겼다. 손님 없는 시간 여유롭게 앉아서 글이나 쓰고 싶다는 애초의 계획은 포기한 지 오래였다. 아침과 점심에 전쟁같이 손님을 치르고 나면 글 같은 걸 쓸 체력 따위 남아있지 않았다. 알바에게 마감을 맡기고 집에 일찍 가는 날이면 그대로 침대에 누워 두세 시간을 죽은 듯이 잠자곤 했다.
한참 전부터 부모님은 부모님이 운영하는 부동산을 내가 물려받아했으면 했다. 처음에는 죽어도 싫다고 했지만, 카페 운영이 힘들어지자 조금씩 생각이 바뀌었다. 카페 같은 요식업에 비해 부동산 매출은 꾸준한 것 같았고 무엇보다 절대적인 일 양이 적어 보였다. 손님이 없는 시간에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 얼마나 좋겠냐며 아빠가 나를 설득했다. 확실히 내게 중요한 건 사이드로 꾸준히 돈을 벌면서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이었다. 게다가 공인중개사 일은 평생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나는 결국 티브이를 받고 부모님 집으로 들어갔고, 다음 해 5월에는 카페를 접고 공인중개사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전부터 동영상 수업을 듣고 있었기 때문에 막판 6개월 스퍼트가 잘 먹혔고, 11월 말에 합격 발표를 하자마자 12월부터 부동산 일을 시작했다. 아빠는 대표 소장 자리를 바로 나에게 넘겼고 나는 시험에 합격하자마자 또다시 사장님이 된 셈이다.
새로운 일도 일이지만 엄마 아빠와 함께 살면서 또 같은 곳으로 출근하는 삼위일체 시대가 열렸다. 먹고 자고 일하고 노는 것까지 부모님과 함께 하게 된 지 이제 1년 반이 되었다. 처음에 약속했던 것 몇 가지는 잘 안 지켜지지만 되려 새로운 룰이 생겨나기도 했다.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면서 배려하는 마음이 커지기도 했다. 우리의 생활과 관계 또한 많이 변해왔다.
오늘은 엄마가 저녁을 하기 싫었는지 갑자기 외식을 하자고 하길래 훠궈집에 가서 마라탕과 지삼선을 먹었다. 그러고 보니 아빠는 마라탕을 처음 먹는 거라서 조금 놀랐다. 엄마는 티브이에서 어떤 음식을 보면 가서 먹어보자고 하거나 시켜달라고 하는데 나는 그런 엄마의 도전 정신이 좋았다. 엄마 아직 한창인 듯 하다며 한바탕 웃고 나니까 아빠 눈치가 보였다.
아빠는 내나 엄마가 뭘 먹자고 해도 싫다고 안 하고 우선 먹어보잖아. 나는 그런 마인드가 참 좋다.
새로운 것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려는 마음 자체가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마음과도 같이 느껴진다는 말까지는 하지 않았다. 집에 들어오기 질색하던 내가 2년 가까이 부모님과 잘 지내고 있는 건 팔 할은 부모님 덕분이다. 그래서 앞으로 부모님 이야기를 좀 적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