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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결이 있듯이

[4. 각자의 결이 있듯이]



동네에 작은 서점 2개가 있다. 3년 정도 터울 진 오누이 같은 서점이다.

한 곳은 아담하고 한 곳은  조금 더 크다. 언니에게 없는 책이 동생 서점에 있고 동생 서점에 있는 책이 때론 언니 서점에 있어서 이곳저곳 둘러보며 필요한 사물을 구입한다. 대동소이한 두 서점이지만 결국 '소이'한 작은 차이 덕분에 늘 번갈아 방문하게 되는 것이다.

서점에서 가치 있는 사물은 응당 책이겠지만 아이들과 같이 가면 연습장이며 샤프며 지우개까지 야무지게 담아 서점의 가치를 다시 한번 다시 새기고 온다. 또 편협한 사고를 반성하고 온다.

'그렇지. 서점에서 책 외에 가치 있는 것들은 넘쳐나는 것이었구나.'

(때론 포토카드와 퍼즐까지 섭렵하는 아이들의 서점 세계)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지만 있을 건 다 있는 서점은 아이들과 나에게 놀이터 같은 공간이었다.

도서관은 맘 놓고 편하게 뒹굴뒹굴하는 안방이었고 서점은 지루하면 들러 새로운 소리 책이나 신간 도서, 구경하기 재미있는 놀이터 같은 곳이라고나 할까. 지금은 아이들과 같이 서점을 가는 횟수보다 혼자 커피 한 잔 뽑아 오는 길에 슬쩍 들르는 경우가 많다. 도서관에서 7권 최대 권수를 대여하기도 하지만 산책길에 서점에 들러 마음에 드는 책은 홀린 듯 데려오기도 하고 대여한 책이 마음에 들면 소장용으로 다시 구입하기도 한다.

인터넷 구입은 10퍼센트 할인이 되지만 곧바로 읽고 싶은 마음이 동할 때는 기다리는 값으로 10퍼센트를 대신한다 치고 바로 사 읽는 기쁨은 나름 나에게 분명한 쾌락이 맞다.



서점에서 책들을 바라보며 나는 책들, 그들만의 결을 생각한다. 철학 책은 깊이를, 에세이는 관찰을, 산문은 담백함을, 소설은 용기를 건네주는 것 같다. 각자가 가진 그들만의 올곳은 결로 한없이 나를 매료시킨다. 혼을 쏙 빼놓는다.



나는 쉽게 마음이 흔들리는 갈대 같은 여자인지라 서점에서 때론 철학에 빠지고, 때론 산문에 빠져 한참 동안 허우적거린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 잠시 거리를 둔 소설에게 다가가 미안한 마음으로 쓰다듬기도 한다.



 동양 고전 낭독 수업에 참여한 적이 있다. 랩스커트를 휘날리며 도착한 강의실에서 초록 무늬 랩스커트를 입은 나는 고즈넉한 찻집에서 이질감 느껴지는 마카롱 같은 존재가 된 것 같았다. 늘 입는 옷이었는데 조금 더 차분한 옷으로 차분한 분위기를 만들어야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낭독과 옷은 전혀 상관이 없는 관계지만 모르겠다 나는 그때 강의실에서 문득 괴리감 느껴지는 초록 랩스커트에 마음에 쪼그라들었던 것 같다. 명심보감과 동의보감 낭독을 하면서 마음이, 정신이 엄숙해졌다. 고전을 읽으면서 쌓인 시간에 압도당하고 자연스럽게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이다. 고전이 가진 힘이자 그것만의 결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에게 각자가 가진 기질이 존재하듯 사물도 개별적인 결을 가지고 있다. 무생물이라는 의미를 너머 그 사물이 가진 존재의 의미를 생각하면, 그 사물 너머의 뭔가를 발견하기 위해 조금 애쓰는 시간을 투자하면 우리는 그들의 '결'을 만끽할 수 있는 행복을 누리게 된다.



서점이야말로, 책장에서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책들이야말로 '그들만의 결'을 찾아내기 좋은 친구들이다.

첫 만남에서부터 그에 대해 모든 걸 꿰뚫을 수 없는 일이다. 오래 보고, 자주 보고, 애정으로 볼 때 그의 결이 보이고 느껴진다. 책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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