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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편선 Jul 18. 2022

진정성, 이곳이야말로 내가 계속 살아있음을 느끼는 자리

선과영 첫 싱글 <난 그냥 걸었어> 라이너노트

복태를 처음 만난 것은 2009년이었다. 복태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1년 전인 2008년에 알았다. 당시만 해도 음악을 다루는 웹진이 많았고, 드나들던 웹진 중 어딘가에서 복태의 첫 솔로 앨범인 [Hello, Boktea]를 소개했다. 아마추어리즘과 그로 인한 피치 못할 미니멀리즘으로 가득한 포크 음반이었다. 나는 전역을 앞둔 군인이었다. 제대하면 복귀를 기념한 작은 공연을 할 계획이었다. 왠지 이 사람과 함께 공연을 하면 좋겠다 생각했다. 싸이월드였는지, 이메일이었는지 기억은 잘 나질 않지만 연락을 취했고 복태는 흔쾌히 수락했다. 나는 제대 후 첫 공연을 신촌 엘비오 고다기라는 치킨집에서 가졌다. 지금의 연남동 치킨락의 전신이다. (후일담처럼 들은 이야기로, 복태는 막상 공연을 하러 오니 치킨집이라서 매우 당황했었다 한다.)


이후로도 복태를 오며가며 만났다. 동교동 삼거리의 철거농성장 사막의 우물, 두리반에도 복태는 종종 들렀다. 그때쯤부터는 한군이란 젊은 친구도 함께했다. 모두 다 젊은 시절이었지만 한군은 특별히 더 젊어 갓 스무살을 넘었을 무렵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만나다가, 또 복태가 오래된 친구인 다원예술가 소우 등과 함께 만든 독립잡지 '순진'과 관련되어서도 뭔가를 잠깐 했다가, 여하간 그랬다. 그러다가 복태는 한군과 결혼했다. 텀블벅을 통해 결혼식을 열기위한 모금을 했다. 완전히 D.I.Y.로 진행된 결혼식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축가를 불렀다.


그 뒤로 간간이 소식은 접했지만 오래 보질 못했다. 2021년, 아마 가을쯤의 어느 날 복태에게 마치 일주일 전쯤 통화한 사람인양 연락이 왔다.


단편선, 오랜만이야. 우리 음반 만들려고 하는데 프로듀서를 찾고 있어. 도와줄 수 있을까.


이미 잡힌 일정들이 있고, 일정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려면 봄쯤은 되어야할텐데, 괜찮을까? 그런데 음악을 일단 들어봐야해. 내가 들어봤는데 마음에 안 들거나 하면 만들 수 없잖아.


그 사이 계절이 세 번쯤 변했고 며칠 전에는 그 결과물의 일부가 먼저 공개되었다. 새삼 마법 같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이란 게 종종 그러하듯이.


아래는 라이너노트.


“2022년에 빛을 보게 되었지만, 이 노래는 11년 전 만들어진 오래 묵혀진 곡이다. 마치 담근 사실을 잊고 있다 어느 날 우연히 앞마당을 파다 발견된 된장과도 같은. 노래가 된장처럼 숙성될 리 만무하지만 2011년의 내가 쓴 노래를 2022년의 내가 부른다는 건 시간의 간극만큼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11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나라는 사람이 조금씩이나마 자랐을 테니.” ― 선과영 복태, 인디팝 문예지 《오일링》 66호에서


지난 6월, BTN라디오 『걷다 보니 여기, 김목인입니다』의 마지막 방송에 선과영의 두 멤버, 복태와 한군이 출연했다. 노래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묻는 김목인의 질문에 복태가 스스럼없이 답했다. “진정성.”


진정성이란 무엇일까. 한편으론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서 모든 것을 정당화시키는 ― “작가의 진정성이 느껴진다"며 상찬하는 게으른 예술비평 같은 ― 진정성을 나는 혐오해왔다. 또 한편으론 어느덧 각자도생이 주류 이데올로기가 된 세계에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고자 자신의 삶을 기꺼이 혼돈 속으로 밀어 넣는 어떤 이들의 진정성을 나는 지지해오기도 했다. 복태가 “진정성"이라 답했을 때, 그 진정성의 자리는 어디였을까.


선과영은 복태와 한군, 두 사람으로 이루어진 포크 듀오다. ‘복태와 한군'이란 이름으로 2010년부터 지금에 이르기 오랫동안 활동해왔으나 그 활동의 근간은 주로 공연으로서, 열망해오던 앨범 제작까지 이르진 못했다. 나태하다 탓할 순 없다. 복태와 한군은 듀엣으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지만, 동시에 부부이자 세 아이의 부모고, 때문에 노동을 통해 한 가정의 생계를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 생활인인 까닭에서다.


복태와 한군은 지난 1월, ‘복태와 한군'이 해산했음을, 그리고 ‘선과영'으로 새로 활동을 시작한다는 사실을 알렸다. 굳이 해산하는 이유에 대해, 복태는 “이제는 정말 제대로 하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두 사람이 새로운 이름으로 준비하고 있는 첫 앨범에는 육아와 생계를 위한 노동으로 인해 우선순위에서 밀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몽상 속에서만 존재해온 바로 그 이야기들이 담긴다.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언젠가 복태는 사적인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나는 항상 내가 너무 늦었다고만 생각했어. 그런데 지금이 맞는 것 같아. 예전에 앨범을 냈다면 이런 깊은 감정이 나오지 않았을 것 같아.”


<난 그냥 걸었어>는 앨범에 앞서 미리 공개되는 싱글이다. 앨범에 수록될 예정이 없었으나 곡을 추리는 과정에서 다시 발굴된 노래다. 2011년의 곡과 노랫말의 얼개가 만들어졌다. 계피가 녹음한 내레이션은 2022년에 쓰였다. 사이에는 11년의 시차가 있다. 2011년의 어린 복태는 어딘가로 걷고만 싶어 했다. 2022년의 복태는 어린 복태에게 길을 알려주지 않는다. 안쓰러워하지도 않는다. 대신 마주한다. 그것은 회상이나 반추보다는 차라리 응시와 닮아있다. 지금의 자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난 그냥 걸었어>의 내레이션은 이렇게 끝난다. “그리고 나는 웃었다. 이번엔 진짜였다.”


다시 처음으로. 복태가 “진정성”이라 답했을 때, 그 진정성의 자리는 어디였을까. 이어진 방송에서, 복태는 이내 덧붙였다. “이곳이야말로 내가 계속 살아있음을 느끼는 자리.”


선과영의 첫 정규앨범 《밤과낮》은 오는 9월 발표된다.


― 단편선(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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