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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편선 Jul 01. 2022

2022 상반기 일들

저녁에는 직장동료들이 모여 오뎅탕을 먹기로 했단다. 오후쯤, 혹시 같이 드실? 하고 연락이 와 어차피 별 계획이 없었으니 잠깐 동석하기로 했다. (일하는 직장이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오픈하는 곳인 탓에 저녁만 빨리 먹고 다시 돌아와야함.) 오뎅 나눠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하다가 그러고보니 오늘이 6월 마지막 날이네요, 2022년 상반기가 이렇게 지날 줄이야, 그런 얘기를 누가 꺼냈다. 새삼 마지막 날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집에 돌아와 씻고 나오니 10시 반쯤 되었다. 내일까지 내야하는 제안서 같은 게 있긴 한데, 거의 다 써서 오늘은 그냥 오프하기로 했다. 10시 반이면 나 치고는 조금 빨리 휴식에 들어가는 것. 상반기에 뭐했나, 쓰면서 생각해보기로 했음.


1월.


전복들이랑 경주에 있는 경북음악창작소 갔다. 라이브로 세 곡 연주했다. 전복들이 아주 오래전에 냈던 싱글 [우주를 전복해]를 다시 리이슈 하는 프로젝트. 원래 합주 레코딩을 선호하는 편이 아닌데 전복들은 (그전 EP 작업할 때) 각잡고 통상 스튜디오 레코딩 하듯이 해보니까 뭔가 잘 안 맞는 옷을 입힌 기분이었다. 풋풋함이 날아갔달까. 그래서 이번에는 그냥 합주 레코딩으로 해봤다. 해보니까, 웃겼고, 좋았다. 음악창작소 맞은편의 햄버거집에서 매우 육즙 줄줄 햄버거 먹었는데 기분 좋았다. 그런 기분으로 헤헤거리며 녹음하고 (이렇게 쓰면 무슨 놀다 온 것 같지만 거의 10시간 쯤은 작업한 것 같다) 근처 숙소 잡아서 또 헤헤거리며 맥주 먹고, 그랬다. 그냥 계속 그렇기만 하면 좋겠다, 뭐 그랬던 것 같다.


보일이 정규 앨범 마무리 작업을 하러 또 원주에 갔다. 원주에서는 짬뽕을 먹었었나. 여하간 현지인인 공동 프로듀서 허민(룸306과 퍼스트 에이드 같은 것을 한다)이 데리고 다니는대로 갔다. 보일은 직장 때문에 1박 2일, 나는 연차 내고 2박 3일 쯤 일정으로 있었다. 주로 전자음악에 기반한 음반을 내는 건 처음인 탓에 조금 어려웠다. 한편으론 허민 입장에선 완전 전자음악이라기 보다는 어쿠스틱한 부분이 많고, 게다가 프로듀서가 두 명인 작업이라 어려웠을 것. 보일도 처음 해보는 공동작업이라 어려웠을 것이고, 하여간에 순탄치는 않았다. 순탄치 않았다는 게 쌈박질 했다는 건 아니고 서로가 생각하는 어떤 상들의 교집합을 찾아가는 과정이 지난했다는 뜻. 비트 찾고, 신서사이저 음색 찾고, 이것저것 이펙터를 걸었다 뺐다, 하다가 완성. 어떤 사람들은 이 음반을 절충주의적이라 생각하는 것 같고, 그게 맞다. 나는 왠지 보일과의 다음 작업은, 역시 힘들겠지만 지금보다는 더 맑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1월 마지막날에는 춘천에 한달 간 머무르며 곡쓰러 가는 유동을 배웅했다. 다진, 권형, 마음 등도 함께. 부평에서 돈까스 비스무리한 (어떤 경양식집의 정식 같은 것인데 이것저것 잡다해 돈까스 비스무리한 무엇이라고 밖에 이야기할 수 없는) 무엇을 먹고선 커피 한잔 먹고 사진 찍고 헤어질라다가 아쉬워서, 헤어졌다가 밤에 또 만나기로 했다. 사이에는 권형이 작업하고 있는 인천 주안의 스튜디오를 잠깐 들렀다가, 담배를 몇 대 피고선, 이번엔 동인천으로. 동인천에선 스지탕, 이라는 도가니를 넣었는데 도가니탕이 아니라 약간 토마토 스튜 같은, 희한한 혼종을 파는 노포에서 1차로 식사, 2차로 야채치킨을 먹었다. 스지탕은 색다른 맛이었고 야채치킨은 매우 예상가능한 맛이었다. 매우 예상가능한 맛이 도대체 동네 명물일 것은 또 뭐람.


다니는 직장 이야기도 굳이 끼워넣자면, 공공시설이니까 이때쯤에는 전년도 사업보고서도 내야하고, 정산보고도 해야하고, 이번년도 사업계획도 좀 매만져야 하고, 뭐 그런 기간이다. 공공이라서 매년의 플로우가 대략 정해져있음. 2020년과 2021년에는 조금 우왕자왕 했는데 3년차 들어오니 한결 나아지긴 했다. 어느 정도로 일을 해야하고 어느 정도로 서비스를 제공해줘야 하고 어느 정도부터는 반발해야하는지 조금은 감이 생겼다는 것.


2월.


2022년의 오소리웍스 첫 작업이 나왔다. 보일의 [나쁜 마음]. 우리가 작업하는 많은 음반들이 그렇듯, 시장의 큰 반향을 일으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좋아했고, 나 역시 지금도 이 음반을 한번 씩 듣는다. 이 음반에는 무드가 있다. 조금 우울한 음반 같은 첫 인상이지만 뜯어보면 우울함 보다는 귀여움이 많다. 아직 예정은 없지만 다음번에는 그 귀여움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퍼뜨리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천용성과 소음발광이 상을 탔다. 천용성이 1개, 소음발광이 2개를 탔는데 천용성 그 전전년도에 2개 탔으니까 합치며 3개라서 천용성이 이겼다. 나도 하나 밖에 못탔다. 천용성은 키도 나보다 큰데(10cm 차이) 상까지 많이 받아 이미 나를 아득히 초월했다. 소음발광도 이미 나를 초월했다. 그러나 노미네이트 된 것은 내가 많으니까 아직도 내가 짱이라 생각하기로 한다. 여하간 기쁜 일이었다. 큰 기대를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언젠가부터 삶에 대한 기대치가 매우 낮아진 상태인데, 조금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늘 괜찮은 편이긴 하다. 감정이 고요한 게 좋다, 요새는. 일을 좀 덜하면 더 고요해지고 좋을 것 같은데, 그치.


BTN 걷다 보니 여기, 김목인입니다에 나가서 떠들다 왔다. 떠들고 왔을 때는 별거 없었는데 생각해보니 이떄쯤부터 뭐가 씌여서 상반기 내내 아티스트인양 깝죽거리고 돌아다닌 듯.


아마 이쯤, 1월과 2월 사이쯤 어딘가에 선과영 작업을 시작한 것 같다.


3월.


선과영은 복태와 한군이란 이름으로 오래 활동했다. 둘은 부부다. 애가 셋 있고 강아지도 한 마리 키운다. (요새는 애완견이라는 말 대신 반려견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하는데 나는 이 두 표현의 차이를 잘 모른다. 맥락을 모른다는 뜻이다. 아는 사람 있으면 누가 알려줬으면 좋겠다.) 여하간에, 복태와 한군이 전년도(2021년) 가을에서 겨울 넘어갈 쯤 연락와서 음반 만드는데 프로듀싱을 하라고 다짜고짜 부탁했다. 10년도 훨씬 넘게 안 사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만, 실은 얼굴 마지막으로 본지 5년도 넘은 거 같은데 그렇게 다짜고짜 부탁하는데 웃겨서 같이 하기로 했다. 돌아보면 천용성도 [김일성이 죽던 해] 처음 만들자고 할 때 예의만 갖췄지 다짜고짜였다. (언젠가 지금 작업 같이 하는 사람들이랑 처음 만났을 때 이야기들만 모아 써보고 싶다.) 가을에서 겨울 넘어갈 떄쯤 같이 하자고 했지만 나도 바빴고 (전년도의 겨울, 특히 12월에는 정말 죽을만큼 바빴다) 그래서 실제 작업은 겨울부터 했다. 성미산 바로 아래 살고 있는 복태와 한군 집에 뺀질나게 드나들었다. 그리고 알게된 것은, 내 강아지 알러지는 생각보다 쎄다는 거.


천용성 보리차 한국대중음악상 수상기념으로 천하제일보리차대회라는 걸 했다. 대단한 대회 아니고, 그냥 보리차를 불러서 SNS에 올리거나, 뭐 여튼 아무렇게나 보리차를 찧고 빻고 뭐 이러면 되는 대회.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많은, 아마 60명이 넘는 분들이 참여해주셨고, 오히려 별로 차린 게 없어 조금 민망해졌다. 그때 보리차 컵을 만들었는데, 한정이라고 만들긴 했는데 솔직히 너무 예쁘고 또 기능성도 좋아서 조금 더 만들고 싶은 마음이다. 시와 님이 부른 버젼이 정말 기가 막혔다.



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사실 나는 대통령 선거에는 큰 관심 없었다. 그냥 적당한 수준의 관심만 있었달까. 내가 더 관심 있는 건 지방선거였다. 일하고 있는 직장이 마포구에 있고, 내가 직장에서 하는 일은 어쨌건 문화예술정책이랑 맞닿아있는 일이라서. (여기서 내가 무슨 직장에 다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기도 한데 매우 요약해서 설명하자면 1) 홍대앞 지역 기반 문화예술생태계의 지속가능성과 관련된 여러 일을 하는 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이라는 곳에서 일하고 2) 공공시설인 서울생활문화센터 서교에서 일하고 3) 독립음악 프로덕션인 오소리웍스에서 일을 하고 그외에도 여러가지 일을 한다. 이렇게 쓰면 사람들은 많이 버는지 물어보는데 단연코 많이 벌지 않는다, 라고 말할 수 있다. 노동시간 대비 급여 최저의 사나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노동시간이 너무 길어.) 여하간 대통령 선거야 윗사람들 리그지만 지방선거는 정말 '동네' 리그니까, 마포 지역 동네사람들도 이쯤부터 슬슬 지역 커뮤니티에서 정치권에 제안할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4월.


3월에서 4월 넘어가는 마지막날 JTBC 뉴스룸 엔딩곡으로 전유동 4월이라는 제목의 추상화가 나오는 거야. 정말 웃기지 않니?


그런데 진짜 웃긴 건 내가 2012년에 냈던 첫 정규 앨범 [백년]이랑 2013년에 낸 EP [처녀]를 음원으로 발매하게 되었다는 거임. 좀 쪽팔렸는데. 왜냐면 예전에는 대자본 반대한답시고 음원 플랫폼 안 올리고선 10년 있다가 올리는게 스스로도 칠푼이짓이라고 생각함. 하지만 이제는 CD 플레이어로 듣는 사람도 별로 없고, 또 곧 LP 나오는데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음반 LP 리이슈 되어봤자 뭐해, 그런 마음에서 스스로 칠푼이짓 했다. (이런 걸 보고 단편선 타협했다, 이런 얘기 하는 사람들 있는 것으로 아는데 뒤에서 얘기하지 말고 앞에서 좀 했으면 좋겠다. 그것도 칠푼이짓이다.)


여하간 데뷔 10주년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거 기준이 좀 이상한 게 정확히는 데뷔 앨범 발매 10주년이다. 라이브클럽에서 공연하기 시작한 걸로 하면 데뷔 18년차다. (숫자가 정말 징그럽다.) 뭐가 맞는지 기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건 10주년 기념 공연을 재미공작소에서 하기로 했다. 10년 전에도 [백년] 발매 기념 쇼케이스를 재미공작소와 가톨릭청년회관에서 했다. (지금은 가톨릭청년회관이 아니라 청년공간JU 라는 이름으로 바뀐 것 같은데 멋이 떨어진 것 같다.) 그때는 상수, 지금은 문래동에 있긴 하지만, 어쨌건 재미공작소라는 정체성으로 운영되고 있는 공간이 10년을 넘기고 있다는 것이 실은 더 기념할만한 일. (아티스트야 나이를 먹은 것 외에 한 게 뭐가 있나, 일단 아티스트로 산다고 매월 세금을 내는 것도 아닌데.)


공연을 하기로 했는데,


코로나19에 걸렸다. 나는 정말 안 걸릴 줄 알았는데 (혹은 이미 걸렸는데 그냥 통과한 게 아닐까 믿었는데) 진짜로 걸려버렸다. 원래는 집에 있으려 했는데 가족들도 직장 다녀야하는데 괜히 옮아 일하는데 지장있으면 민폐니까 그길로 밖으로 나왔다. (실은 혼자 있고 싶기도 했고.) 홍대앞 근처에 확진자가 머무를 수 있는 숙소가 있다 해서 일주일 동안 숙소에만 틀어박혀있었다. 쉬었으면 좋았겠는데 못 쉬고 일만 했다. 직장 B인 서울생활문화센터 서교가 하필이면 올해 2022년도 상반기에 너무 많은 점검과 감사, 뭐 이런 것들이 몰려있어 작성해야하는 보고서의 양이 넘쳐나는데 코로나19로 숙소 들어가니 옳다꾸나 하고 매일 자정까지 일. (나도 아직 경험치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공공의 점검이나 감사 같은 것에서 요구하는 양은 민간이 상상하긴 어려운. 상상하지 마시고 다들 편하게 잘 지내셨으면 좋겠다.) 직장 A인 협동조합 신임 이사회 워크숍도 혼자 참석 못해서 비대면으로 참가하고, 직장 C인 오소리웍스에서의 일들은 모두 다 연기나 취소. 4월 한 주 뻐그러지니까 5월 중순까지도 뻐그러진 것 메꾸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5월.


일단 상반기 중 2분기의 직장 B에서의 생활은 연이은 감사 같은 걸로 너무 정신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매주 하루 정도는 짬을 내서 선과영과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4월에 선과영 얘기 안 쓴 건 당연히 작업하고 있으니까 안 썼고.) 악기 레코딩을 한창 하고 있던 시기. 노동절 다음날에 베이스를 레코딩 했었구나. 실은 밴드로 합주를 해보기 전까지 내가 뭘 하고 있는건지 잘 몰랐다고 복태가 얘기했던 적이 있다. 손에 잡히는 게 아닌 일을 하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지 뭐, 그랬다. 


전복들이 1월 레코딩한 것들을 5월 되어서야 풀기 시작했고 보일도 밀린 쇼케이스를 진행했다. 밀린 나의 10주년 공연도 진행. 중간에 전유동 공연 세션을 뛰러 다녀오기도 하고. 4월의 여파가 5월에 정말. 전복들의 봄나물파티는 내가 직접 가진 못해서 아쉬움. 그러고보니 전복들 공연 마지막으로 본지도 반년 쯤 되었네. 보일은 쇼케이스에 신경을 많이 썼다. 하지만 아직은 곡이 많지는 않아 조금 아쉬운 분량일 수밖에. 보일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선 새로운 일을 찾기로 했다. 새로운 일을 찾아가면서, 또 무언가를 조금씩 만들고 있다. 아직 듣지 못해서 궁금. 소음발광은 새 싱글을 준비하고 있고, 후하도 새 싱글을 준비중. 각각 가을과 여름에 나온다. 전유동은 정규 앨범을 준비중인데 아직 곡을 조금 더 써야하는 시기. 뭐 이런 것들을 계속 체크하고 있었다.



참, 그리고 아마 5월 초에 밀린 내 10주년 공연을 한 직후쯤인가, 어느날 침대에서 깼는데 불현듯 뭘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준비하고 있다. 쌓인 음악들한테 조금 미안한 감정이 들어서 예정에는 없었지만 빨리 내보내주려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찾다가 아주 예전에 녹음했던 버전의 물material도 찾게 되었다.



그와중에 오랫동안 오간 부여의 대안공간 생산소를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와 함께 작은 축제도 진행했다. 동네사람들 하모니카 불고, 춤추고, 디제잉하고, 공연도 하고. 시각예술 기반의 커뮤니티인 탓에 공연이나 음악 쪽과는 아무래도 달라서, 나는 사실 별 생각 없었지만 그들은 조금 버거운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축제가 끝나고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또, 그와중에 지방선거가 어느덧 코앞으로 닥쳐왔는데, 직장 A인 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에선 지역 문화예술생태계의 여러 이슈들을 가지고 정책제안을 만들어 여러 후보들에게 제안을 진행했다. 민주당, 정의당, 녹색당의 후보들이 받았고, 이번 지방선거에서 정의당과 녹색당은 마포 지역 당선자를 내지 못했다. 매우 아쉬움. (정의당은 그래도 조금은 메이저 정당 같으니까) 녹색당 이야기를 하자면, 생각보다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미래지향적인 정책들을 내놓았었다. 큰 주목을 받진 못했지만 그래도 8퍼센트 가량을 득표. 녹색당의 당세가 작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지지를 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지만 양당제의 벽을 깨기는 정말 너무 어려운 듯. 그래도 조합과 협약을 진행한 후보 중 당선된 후보가 있고, 이후 문화예술생태계 관련 이슈들을 풀어나갈 동력을 만들어낸 것 같다는 점에는 조금의 다행스러움.


쓰다보니 5월이 정말 박터진 것 같이 보이는데, 실제로도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매우 정신없었다. 나의 여가는 어디로.


6월.


쓰다보니 너무 양이 많고 지쳤으며 심지어 날짜도 7월 1일이 되어버린 탓에 간단히만 쓰겠다. 선과영의 작업은 궤도에 올랐다. 대부분의 기본적인 악기 레코딩이 끝났고 보컬 레코딩에 들어갔다. 디자이너도, 뮤직비디오 감독도, 프로필 사진 등에 대한 계획 등도 서면서 속도가 붙게 되었다. (어차피 선과영 얘기는 7~9월 중 풀게 많아서 짧게만.) 보수동쿨러와 천용성의 합동공연을 진행했다. 판매가 조금 아쉬웠다. 언제나 내가 하는 일들은 판매가 조금 아쉽다. 공연기획 쪽에는 재능이 없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그러나 그와는 관계없이, 공연은 참 좋았다. 천용성의 가요무대 같았던 공연도, 보수동쿨러의 차분한 인디록도.)


상반기가 끝나며 서울생활문화센터 서교도 조금 정리가 되었다. 감사가 다 끝나서 일단은 홀가분해졌음. 그런데 감사에 집중하다보니 사업진행이 안 되서 하반기에는 죽으나 사나 해야할 일들이 많다. 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에도 초여름, 살짝 집중하지 못하고 있던 시기가 생겼는데 해야할 미션이 많으니 속도를 내야지.


그냥 계획없이 썼다. 빠진 것도 많겠지만 안 중요해서 빠뜨렸다기 보다는 그냥 아무렇게나 쓴 글이라서 그럴 것. 그런데 이렇게라도 써놓지 않으면 기억 못할 것 같아서. 그냥 그런 생각 했어. 시덥잖은 이야기들이다.


아. 내 음반 나올 날도 다가오고 있다. (아직 매우 먼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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