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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편선 May 22. 2022

회기동 단편선 - 물 2017 recorded ver.


사라졌던 레코딩

회기동 단편선 Hoegidong Danpyunsun - 물 Material 2017 recorded ver.


새로운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르면 가을이 될 것이나 기약은 없다. 집중하고 있는 다른 일들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창작과 공연을 주업으로 살아가던 예전으로 돌아가고자함이 아닌, 너른 의미에서의 기획자로 살아온 지난 5년 간을 정리하기 위한 작업이다. 주업도 아닌 주제에, 가끔은 분수에 맞지 않는 감상에 젖어 습속처럼 무언가를 써내려갔다. 단편선과 선원들이 해체하던 시기부터 최근까지 써내려간 몇몇 곡들을 이 작업을 통해 갈무리하고자 한다.


굳이 그것을 정리하고자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부분의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욕망과 비슷하게, 무어라도 되고 / 하고 싶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이미 쓰인 노래들에 미안하기도 했다. 언젠가 낼 정규앨범을 위해 오랫동안 생각을 정리해왔다. 갈팡질팡 하던 생각들이 올해 들어 얼추 가지치기 되었다. 가지치기의 결론 중 하나는, 지금까지 만들어온 음악들이 수록될 일은 없다는 것. 싫거나 부끄러워서가 아닌, 그냥 방향이 달라져서. 마음이 그리 향하니 원래 만들어둔 곡들에게 미안해졌다. 임자를 잘못 만나 제 뜻을 충분히 펼치지 못하게 된 것 같아서다. 품어줄 뜻이 없으니 일단 빠르게 내보내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예정에 없던 새로운 작업을 진행하게 된 연유다.


지난 5년 간 만든 음악들에 대한 자료가 전혀 정리 되어있지 않아 이리저리 뒤졌다. 그러다 잊고 있던 레코딩을 발견했다. 2017년 버전의 물material이다. 실제 녹음은 2016년에 진행했다. 내가 출연한 다큐멘터리 영화 ‘백년의 노래’의 엔딩 크레딧을 위해 녹음된 버전이다. 노령의 제주 4.3 사건 생존자와 몇 개월 간 제주를 오가며 인터뷰했던 기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노래다. (4.3에 대해 이야기하면) 기억이 어디론가 어두운 곳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하다는 할머니의 이야기가 주된 모티브가 되었다. 당시 제주에서 스튜디오를 꾸리고 있던 류호성 엔지니어가 레코딩, 믹싱, 마스터링을 모두 담당했다. 어느덧 오랜 친구 같은 형으로 남은 ‘백년의 노래’ 이상목 감독에게도 감사를 전한다.


2017년 이후 이 곡은 간혹 있던 단편선의 공연에서 주요 레퍼토리로 빠지지 않고 연주되었다. 밴드셋으로는 두 번, 단편선과 선원들 해체 즈음 열린 2017년 국립극장 공연에선 선원들과의 버전으로, 2020년 오소리웍스 연말 파티에선 선원들의 장도혁, 베이시스트 정수민과의 3인조로 연주되었다. 돌아보면 모두 행복한 시간이었다. 올해 예정된 새 작업에선 또 다르게 연주하고 싶다. 최초의 레코딩을 궁금해할 매우 소수의 사람들을 위해, 이르지만 공개해두기로 한다. (그럼 서두에 ‘사라진’ 운운은 뭐요, 할수도 있다. 실은 그냥 잊어먹은 거다. 내 기억에서 사라졌을 뿐이다. 하지만 원래 기억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법이다.) (또 습관처럼 옛 레코딩의 연주와 편곡, 가창 등에 대해 평하려는 마음이 슬금슬금 올라온다. 이것도 나고 저것도 나인데 까서 뭐하나, 싶은 마음으로 오늘은 덮어둔다.)


- 단편선 (음악가,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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