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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편선 May 23. 2024

저는 착한 거에 별로 관심 없거든요

전유동 [관찰자로서의 숲] LP 발매 기념 음감회 토크세션의 기록

2024년 3월 18일 월요일, 25일 월요일에는 싱어송라이터 전유동의 데뷔 앨범 [관찰자로서의 숲]의 LP 발매를 기념하는 음감회가 열렸다. 북아현동의 카페 침묵에서 양일 진행된 이벤트는 LP의 제작사인 룰루랄라레코드의 주최로 열렸으며, 전유동과 함께 [관찰자로서의 숲]의 음악 프로듀서인 오소리웍스 단편선이 함께 토크에 참여했다. 이 기록은 25일 진행된 두 번째 음감회에서의 토크 중 주요 부분을 발췌한 것에 기반해, 18일 첫 음감회의 내용을 더하고, 읽기에 편하게 약간의 연극적 각색을 더한 것이다.


전유동 [관찰자로서의 숲] LP 구매 페이지(예스 24)

https://m.yes24.com/Goods/Detail/124478193


(오후 6시. 전유동, 단편선, 룰루랄라레코드의 이성민이 모였다. 세팅을 시작한다.)


(오후 7시. 관객 입장이 시작된다.)


(오후 7시 반이 되었다. 전유동이 운을 띄운다. 오늘 이벤트의 취지, 그리고 함께 토크에 참여하는 프로듀서 단편선을 소개했다. 전유동이 묻는다.)


전유동(이하 전) _ [관찰자로서의 숲]은 2020년 발표 당시에는 디지털 음원으로만 유통되고, CD나 LP 등은 내지 않았어요. 대신 노랫말과 에세이를 담은 책을 냈는데요, 음반을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책을 낸다는 것이 조금 부담이 되었을 수도 있는데요.


단편선(이하 단) _ 제작하는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단가예요. 이를테면 요새는 CD 판매량이 많이 낮아졌는데, 저도 그렇고 다들 아직 CD를 많이 만들잖아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어쨌건 CD가 가장 저렴하다는 것도 큰 이유에요. 그에 비해 책을 만드는 건 공임도 많이 들고 여러모로 수지가 맞지는 않죠. 하지만 그때 그렇게 한 이유는 간단한데, 유동이 책 제작비를 내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전 _ (약간 어이없어 하며) 알겠습니다. 지난 주에 토크할 때는 그냥 “뭐 별로 상관 없습니다"라고만 하신 거 같은데…


단 _ 지난 주에도 비슷한 이야기로 토크를 시작하긴 했는데요, 똑같이 할 수는 없으니까요…


전 _ 네네. 어느 정도 정해진 플롯은 있기는 한데, 오늘은 조금 더 편하게 가보죠. 저도 오늘은 컨디션이 조금 안 좋고, 편선 님도 컨디션이 별로인 것 같기는 하지만.


단 _ 그건 제가 어제 술을 먹어서…


전 _ (무시하듯) 오늘도 즐겁게 진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곡과 두 번째 곡, 이어서 들어보겠습니다. LP로 들으니 공간감이 진짜 확실히 다르거든요.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불이 꺼지고 LP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Track 1 <참새는 귀여워>

Track 2 <이끼>

Track 01. 참새는 귀여워
Track 02. 이끼


단 _ <참새는 귀여워>는 첫 곡으로 좋은 곡이에요. 시작하자마자 앰비언스가 나오죠. 원테이크로 레코딩을 한 곡인데, 자유공원에서 한 거죠?


전 _ 인천대공원인데요.


단 _ (아무 일 없다는 듯) 인천대공원에서 레코딩 했는데, 유튜브에 <참새는 귀여워> 녹음하던 현장이 업로드 되어 있어요. 초등학생도 지나가고, 뭔가 차량 엔진 소리? 같은 것도 나고. 해서 굉장히 여러 번 레코딩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바람 소리, 공기 소리, 숲 소리 같은 것들이 나다가 포크 기타가 등장을 하는데, 굉장히 피아노 같은 느낌으로 등장을 해요. 모짜르트의 작은 곡들 같은 느낌으로. 이렇게 음반이 시작된다는 게 굉장히 근사했죠.


전 _ 녹음할 때 공원 관계자 분이 와서 막으시기도 했어요. “여기서 이런 거 하시면 안 됩니다.” 그래서 설득을 했죠. 저희가 시끄럽게 구는 것도 아니고 그냥 기타 치는 거라고. 등산객들도 오고 가고요. 실제로는 녹음하는데 2시간 정도 걸렸어요. 오전 7시에 가서 9시 다 되어서 끝났어요.

참새는 귀여워 필드 레코딩 현장

전 _ <이끼>는 애정하는 곡입니다. 그런데 편선 님이 발표한 다음에 한 1년 반 정도를 “진짜 더 잘 만들 수 있었는데! 더 잘 할 수 있었는데!”라고 꾸준히 외쳤거든요. 그런데 그때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구체적인 이유를 못 들었어요.


단 _ 원래 이 곡의 레퍼런스는 본 이베어Bon Iver의 <Perth> 같은 거였는데, 막상 잘 구현이 안 되었어요. 그러다가 저번 주에는 오랜만에 큰 스피커로 듣는데, 이걸 90년대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 같은 팝 사운드 베이스로 했으면 더 명료했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했던 거고, 또 오늘 들으니까 다른데 리버브가 좀 많네요. (편집자 주 : 리버브란, 매우 대충 말하자면, 소리를 울리게 해 공간감을 만들어주는 이펙터다.) 리버브를 많이 끼얹는 것보다는 레코딩 하기 전 편곡에서 악기들을 잘 활용해서 다른 방식으로 공간감을 만들어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그래서 악기들의 소리가 살짝 명료하지 않게 들리는 것 같기도 해요. 오늘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전 _ 리버브 이야기하니까 기억이 나는데, 이 곡의 주된 이야기는 “물이 없어 점점 말라가는 이끼”에 대한 것이에요. 그래서 후반부로 갈수록 리버브가 점점 없어지는 방향으로 해보자는 의견을 냈던 것 같은데.


단 _ 저한테요? 저는 아무런 기억이 없습니다.


전 _ 그때 편선 님이 “그건… 아닌 것 같다…”고 해서 저는 그냥 입을 다물고 있었어요.


단 _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유동의 의견이 맞았던 거 같아요.


전 _ 맞아요.


단 _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불이 꺼지고 LP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Track 3 <무당벌레>

Track 4 <4월이라는 제목의 추상화>

Track 03. 무당벌레
Track 04.  4월이라는 제목의 추상화

전 _ <무당벌레>가 선공개 싱글로 나왔어요. 클라우즈 블록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할 때 이미 발표되었던 곡인데 편선 님이 새로 편곡을 했죠. 클라우즈 블록 때 만든 버전은 주먹구구였어요. 집에서 거의 다 녹음했고, 드럼은 미디로 하나하나 찍었어요. 아이리시 휘슬도 넣었는데, 제가 잘 못 부니까 여러 번 분 다음에 짜집기해서 만든 거예요. 그렇게 주먹구구로 만들었지만 그래도 그 곡을 좋아해서 애정하고 있었는데 편선 님이 분위기를 완전 바꿨어요. 뭔가 보여주고 싶은 게 있었나요.


단 _ 원래 버전은 정서적으로 좀 평화로워요. 저도 원래 버전도 좋아해요. 그런데 제가 프로듀싱을 시작할 때, 중점을 두는 것 중 하나는 ‘이 음악들로부터 무언가 다른 가능성을 더 끌어낼 수 있는지?’의 여부에요. 물론 원래 아티스트가 생각했던 방향이 좋은 경우도 많고, 만약 그렇다면 그대로 또 따라가면 되죠. 하지만 무언가 ‘더 가볼 수 있다'라는 판단이 있다면 이를 제안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보아요. <무당벌레>가 그런 경우였죠. 특히 드럼 리듬에 많이 신경을 썼는데, 일렉트릭 기타와 드럼이 무드를 주도하면서 어디론가 비상하는 무드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곡의 풍경도 바꾸고, 뉘앙스도 바꾼 거죠.

클라우즈 블록의 명의로 낸 2019년의 무당벌레


단 _ 저는 전유동과 2018년 쯤부터 알고 지냈어요. 그때도 유동을 ‘음악을 잘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한편으로는 너무 착해보이기만 하는 인상도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착한 거에 별로 관심 없거든요. 동료로서, 친구로서 지낼 때는 착한 사람인 게 좋지만 유동은 아티스트니까요. 착한 음악을 하는 착한 이미지의 아티스트라는 게 무언가를 표현할 때 오히려 제약이 된다고 느끼기도 했습니다.


전 _ 그때 프로필 사진도 엄청 강렬하게 찍었잖아요. 태어나서 포마드도, 눈썹 정리도 처음 해보고. 찍으면서는 독립신문 만드는 서재필처럼 보이면 좋겠다, 했는데 막상 모니터 하면서 “이건 서재필이 아니고 친일파 같잖아!”라고 했던. 그래서 우리끼리 ‘야망 친일파' 사진으로 부르곤 했죠. (웃음)

야망 친일파

단 _ <4월이라는 제목의 추상화> 이야기도 잠깐 하죠.


전 _ 저는 이 곡이 앨범에서 가장 아쉬운 곡이에요. 2018년에 네이버 뮤직에 ‘뮤지션 리그'라는 플랫폼이 있었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인디 뮤지션들이 자신의 곡이나 데모를 공유할 수 있는 곳이었어요. 뮤지션 리그에는 인디 뮤지션들의 레코딩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제가 거기서 뽑혀서 스튜디오 가서 녹음을 하게 된 거예요. 그때 <4월이라는 제목의 추상화>를 처음 녹음했어요. 그런데 막상 스튜디오에서 작업이 잘 되지를 않았어요. 네이버 뮤직과 뭔가 서로 간의 이슈가 있었는지, 여유롭게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어요. 1절 부른 다음에 목이 살짝 쉬었는데, 그래서 2절에서는 보컬톤이 살짝 달라지기도 해요.


단 _ 제작비 문제도 있고 해서, 2018년에 녹음된 보컬, 포크 기타 소리를 그대로 쓰기로 했어요. 그런데 옛 버전과 새 버전을 비교해보면 생각보다 차이가 많아요. 옛 버전에서는 저역을 담당하는 악기가 없으니까 아마 엔지니어 분이 젬베를 상당히 크게 둔 것 같은데, 그게 곡의 무드와 잘 맞지 않아서 감상에 불편함이 있어요. 차분하게 곡을 이끌어 나가야 하는데 젬베의 슬랩톤이 어택이 너무 강해. 그런데 콘트라베이스가 들어오고 젬베 볼륨을 낮춰주고, 하니까 지금 버전은 훨씬 정갈해졌죠.


전 _ 우드블럭이나 코러스도 추가가 되었고, 후주에서 비올라가 들어오면서 무드를 한 번 더 잡아주고요.


단 _ 유동은 아쉬워할 수 있지만 저는 이 곡 되게 좋아해요. 수익이 가장 괜찮아요. 특히 4월에 쏠쏠해요.


전 _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수익이) 많이 차이나는 건 아니고요.


(불이 꺼지고 LP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Track 5 <그 뻐꾸기>

Track 6 <The Beetle>

Track 05. 그 뻐꾸기
Track 06. The Beetle


전 _ <그 뻐꾸기>는 정규 앨범의 셋리스트가 이미 다 정해져있고, 작업을 하고 있는 와중에 썼어요. 여러분, 시험 기간 되면 다른 게 다 재밌어지는 거 아시죠. 앨범 만드는데 집중을 해야하는데 갑자기 곡을 쓰게 된 거예요. 비트도 샘플링 베이스로 만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드럼 녹음이 끝난 시점이라서 또 녹음을 하기 어려우니까 비트도 막 해본 것 같아요. 데모를 만들어 편선 님 들려드리니까 조금 짧게 느껴져서, 후주가 조금 더 필요하다고 얘기를 해주셨어요.


단 _ “빠빠빠빠" 파트가 그렇게 나오게 된 건데, 아마 시규어 로스Sigur Ros의 <Gobbledigook>을 레퍼런스로 들려주면서 진행했던 것 같아요. 들어보시면 비슷한 작법이 녹아져 있는 부분이 있음을 캐치하실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사실 활용되는 방식이나 무드 같은 건 완전히 다르죠. 요새는 이 부분을 착각하시는 분이 많은 것 같은데, 무언가를 끌어다 쓴다고 표절이 되는 건 아녜요. 반대로 완전히 새로운 것을 들고 오면 그걸 사람들이 좋아할까요. 저는 아닐 것 같아요. 사람들이 들었을 때 ‘좋다'라는 느낌을 받는 영역은 생각보다 한정적이에요. 그리고 이미 좋은 접근법들도 많이 나와있죠. 이를 잘 분리하고, 분류하고, 섞고, 또 다른 맥락이나 사운드로 만들어나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전 _ 후반부에 “빠빠빠빠"를 만들 때, 저는 그걸 부르는데 어려움이 없어서 보통 다 할 수 있는 건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안 그렇더라고요.


단 _ 저는 지금도 못 합니다.

원조 빠빠빠

전 _ <The Beetle>에서는 제 또래 청년 세대들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아픔'에 대해 표현하고자 했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너무 공감이 되더라" 하며 좋아해주셔서, 이게 우리 만의 이야기가 아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죠. 그런데 이 곡 레코딩 할 때 너무 어려웠어요. 원래 제가 혼자 만든 버전에서도 고음이 나오긴 하는데, 다진과 같이 피아노를 메인 악기로 해서 만든 버전에서는 코드 플로우가 조금 바뀌면서 완전히 더 높이 올라가는 노래가 되었거든요. 이 곡은 편선 님이 직접 편곡하지는 않았지만 전체적인 컨셉을 이렇게 해보면 좋겠다, 는 식으로 제안을 주었는데요, ‘발라드'를 해보면 좋곘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하셨죠.

단 _ 님 천주교잖아요. 천주교니까 좀 경건한 것도 하나 있으면 좋지.


전 _ 성당에선 이렇게 고음으로 소리를 지르지 않아요.


단 _ 보통 지르는 건 개신교에서 많이 하더라고요.


전 _ 편선 님도 천주교 잖아요. 어쨌든 종교가 중요한 게 아니고요. 왜 발라드냐는 거죠.


단 _ 사실 많은 경우에, 앨범을 한 번에 다 듣지는 않죠. 저도 앨범 만드는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음악을 앨범으로 감상하지는 않아요. 그럼에도 어떤 앨범은 ‘앨범다운', ‘앨범으로서 좋은' 앨범이기도 하죠. 저도 앨범 만드는 입장에서는 청자들이 순서대로 들었을 때 (감정적으로) 어떤 플롯을 따라가게 만들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해요. <참새가 귀여워>가 오프닝을 열어주고, <이끼>와 <무당벌레>, <4월이라는 제목의 추상화>에서 앨범의 전반적인 이미지를 규정짓는 메인 테마를 선보이고 있다면, <그 뻐꾸기>는 살짝 경쾌하게 틀어주는 역할이죠. 그렇다면 <The Beetle>은 차분하게 가라앉혀주고 앨범의 2부를 시작해주는 곡인 거죠. 이 곡을 처음 듣고서는 패닉의 발라드들, 이를테면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 같은 곡들과 닮은 정서가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The Beetle>에서는 중간에 돌고래 소리 같은 것도 나죠.


전 _ 신디사이저로 만든 소리들이에요.


단 _ 레코딩 할 때 기억나는 게, 이 곡의 절정부가 이 음반 전체에서 가장 강하고 높은 음이 나는 구간이거든요. 마치 국카스텐의 하현우 선생님처럼 잘 불러야 한다면서, 스튜디오에 있던 모두가 다같이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이러면서 응원해줬던.


전 _ 다른 때는 안 그랬는데 이 곡 할 때만 엄청 응원을 했어요. 다들 그만큼 걱정이 되었나봐요. 평소에는 다들 핸드폰만 보고 있는데. (웃음)


단 _ 언제나 당근과 채찍이 필요하기 때문에…


전 _ 어느새 여섯 곡을 들었습니다. 한 시간이 넘게 흘렀는데요, 10분 정도 쉬었다가 할 게요.


(10분 간 쉬는 시간을 갖는다.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가만히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 전유동은 물을 마신다. 단편선은 담배를 피우고 온다.)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 착석한다.)


(불이 꺼지고 LP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Track 7 <미네르바의 올빼미>

Track 8 <75데시벨>

Track 07. 미네르바의 올빼미
Track 08. 75데시벨

전 _ <미네르바의 올빼미>와 <75데시벨>을 들을 때면 드럼(박재준)이랑 베이스(송현우)가 너무 잘 해주었구나, 하는 생각을 매번 해요. 제가 만든 <미네르바의 올뺴미>의 데모에서는 원래 드럼을 브러시로만 연주하고 있어요. 그런데 레코딩을 할 때는 앞 부분만 브러시로 하고 중간부터는 스틱으로 했죠. 라이브 할 때도 그렇게 하는데 저는 재준이 언제 스틱을 바꾸는 지도 모르겠어요. 너무 자연스럽게. <75데시벨>은 현우가 엄청 많이 신경쓴 게 느껴져요. 레코딩 끝난 다음에야 알았지만 현우가 앨범 단위로 세션으로 참여했던 것은 우리 녹음이 처음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현우 딴에는 ‘내가 정규 앨범을 다 연주하게 되다니!’ 같은 마음이 있었나봐요. 그때는 현우도 차가 없을 때라서 합주하고선 둘 다 빨간 버스 한참 타서 인천 가는데 “형의 음악은 뭐랄까… 정수가 담겨 있어요.” 그런 이야기를 한참 해주던 기억이 나요. (웃음)


단 _ 현우는 진심으로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지. (웃음)


전 _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데모가 2개 버전으로 있었는데 한 버전에서는 후반부에 브라스도 있고, 현악도 있고, 상당히 화려했죠. 실제 레코딩 할 때는 꽤 덜어냈는데요.


단 _ 그게 미디로 찍은 소스들이니까, 좀 퀄리티가 아쉬워서. 음반 작업을 하면 예산 상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원하는 걸 다 할 수는 없고, 그래서 미디를 쓰는 경우도 많이 있긴 한데 그게 뭔가 최적화된 소리들로 느껴지지 않았어요. 한편으로는 꽉꽉 채우는 건 좋지만 그래도 소리를 경제적으로 쓰는 게 타이트함이 느껴진달까. 그래서 사족처럼 느껴지는 부분을 좀 덜어냈습니다.


전 _ 하지만 저는 넣고 싶었으니까.


단 _ 그에 대해서는 저희도 이견이 좀 있었고. 그런데 저보다 엔지니어(천학주)가 훨씬 더 경제적인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웃음)


전 _ 그래서 제가 편선 님에게 “그래도… 이건 넣었으면…” 했죠. 제가 직접 엔지니어에게 얘기하면 좀 맞지가 않을 것 같아서. 프로듀서가 있으면 이럴 때 좋은 점이 있는데, 뭔가 이견이 있고 말하기 곤란한 게 있을 때 중간에서 조율을 부탁하기가 편해지기도 합니다.


단 _ 프로듀서의 역할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중간에서 잘 커뮤니케이션 해서 조율하는 것이니까. 예를 들면 이런 경우들도 있는데, 첫 믹싱이 끝났는데 결과물이 아티스트 마음에 안 들 때도 있거든요. 그럼 그 사이에서 잘 조율을 해야죠. 아티스트도 납득할 부분은 납득을 해야하고, 또 요청할 부분은 요청을 해야하고. 엔지니어와도 그의 일하는 방식이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고려해 잘 설득해서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가야 하고. 어떻게 보면 회사 다닐 때, 내부에서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과도 비슷할 수 있는데, 같은 이야기를 해도 서로 기분 나쁜 거랑 서로 목표를 잘 공유하면서 기분 좋은 결론을 만드는 거랑, 결과물이 같더라도 과정이 다르니까요. 그리고 결과물도 실은 다르죠.


전 _ <미네르바의 올빼미>에는 파두 기타 같은 익숙치 않은 소리들도 넣었는데요, [관찰자로서의 숲]에 참여한 기타리스트인 파제 님은 원래 일렉트릭 기타를 주로 치시는 분은 아녜요. 클래식 기타나 스패니시 기타를 주로 연주하는데 악기에 관심이 많아서 집에 희한한 악기들이 많죠. 저랑 편선 님이랑 파제 님 집에 가서 가이드 데모를 다듬고 있었는데, 그런 악기들을 보고선 이것도 넣어볼까 저것도 넣어볼까 하면서 이것저것 테스트했던 기억이 나요. 카눈, 파두 기타, 라우드 등이 쓰였는데 신의 한 수였던 것 같아요.


단 _ 그런데 파제가 그거 하나하나를 다 잘 연주하는 건 아니라서. 그걸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은 또 아니니까. (웃음)


전 _ 그래서 파제 님이 엄청 연습하고 또 레코딩 할 때도 엄청 희생정신을 발휘해서… 연주한 것들 다 잘라서 편집하고…


단 _ 편집하는 게 이상한 건 아닙니다. 아이돌들 보면 한 글자 씩 잘라 부르고 편집해서 노래 만들기도 해요. 현대 과학기술의 승리. 어쨌든 결과물이 중요하죠.


전 _ <75데시벨>은 편선 님이 편곡을 한 결과물을 받고, 가장 기분이 좋았던 곡이에요. 제가 혼자 데모 만들었을 때는 조금 더 느리고, 핸드드럼으로 ‘통통통'하는 소리가 많이 들어간 차분한 곡이었는데 전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편곡이 되었어요. 나도 이런 걸 할 수 있구나, 했죠.


단 _ 아녜요. 할 수 없었어. (웃음)


전 _ 방향이 그렇다는…


단 _ <75데시벨> 레코딩 할 때 힘들었던 게, 유동이 좀 목소리에 흥이 없달까. 경쾌함이 없어서.


전 _ 맞아요. 그 DNA가 없어요.


단 _ 그래서 녹음을 하는데 신이 나야 하는데 신이 나질 않아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완성된 결과물은 상당히 신이 나지만 어쨌든 거기까지 가는데 상당히 어려웠다…


전 _ 저는 진짜 “신이 나고 흥이 나고 너무 신이 나서 미칠 것 같아!”라고 스스로 세뇌를 하면서 춤도 추면서 부르고 했는데 스튜디오 바깥 컨트롤룸에서 다들 “신이 안 나… 큰 일이야…” 하는 거예요.


단 _ 그게 DNA에 ‘꿀렁꿀렁' 이런 게 없어서. (편집자 주 : 꿀렁꿀렁이란 댄스곡에 맞춰 춤을 출 때 자연스레 웨이브를 넣는 것을 뜻하는 것 같다.)


전 _ 그리고 중간에 “그리고 또다시!”라는 가사가 있는데, 그 부분이 리듬이 진짜 잘 들어 맞는 거.


단 _ 진짜 그때 너무 힘들었다. 이게 왜 안 돼? 하면서.


전 _ 그것만 진짜 몇십 번 했는데 안 되서 결국 부른 것 중 잘라서 편집하고. 현대 과학기술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단 _ 제가 더 편곡을 잘 맞는 옷으로 했어야…


(불이 꺼지고 LP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Track 9 <억새>

Track 09. 억새

전 _ 제가 혼자 만든 데모와 비교하면 음반에 실린 곡 중 가장 드라마틱하게 변화된 곡이에요.


단 _ 원래 곡이 엄청 느린 곡이었어요. 지루하고 졸린 거 같아서 빨리 돌려봤어요.


전 _ 스페드업… 여튼 후주에서는 사운드가 아주 강렬해지는데요, 저는 이전에는 그런 걸 해본 적이 없으니까. 뭔가 제 성향 등을 보면서 의도한 게 있으실까요.


단 _ 아뇨. 전혀 고려하지 않았어요. 이 곡은 특히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막 만들었는데 마침 님이 잘 따라와줘서 잘 됐다.


전 _ 잘 됐다… 알겠습니다…


단 _ 저는 프로듀서나 아티스트 이전에 일단 리스너라고 생각하는데, 제가 상상하는 인디록의 이상적인 형태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3인조나 4인조 포맷의 밴드가 구현할 수 있는 매우 심플한 표현들. 조금 바보 같게 보일 수도 있는데 아주 반복적이고, 테크니컬 하지 않고. 한국에서는 세이수미가 그런 이미지에 가까운 것 같고, 해외에는 벨 앤 세바스찬Belle & Sebastian도 있고, 아주 많은데, 어쨌든 간결하단 말예요. 너무 빠르지도 않고, 너무 시끄럽지도 않고, 너무 조용하지도 않고, 간결하고. 데모를 듣고서는 그걸 이리저리 만져보는데 그런 스타일의 옷이 생각보다 너무 착 붙는 거예요. 유동도 다행히 좋아해주었고.

너무 빠르지도 시끄럽지도 조용하지도 않고 간결하다의 정석

전 _ [관찰자로서의 숲]의 일렉트릭 기타 중 리드 기타(편집자 주 : 리드 기타란 선율을 담당하는 기타 소리임)는 거의 다 파제 님이 쳤는데, 이 곡은 편선 님이 연주하셨어요.


단 _ 저는 일단 기타 레코딩 하는 걸 진짜 싫어하는데. 원래 일렉트릭 기타 치던 사람도 아니고, 잘 못 치니까. 그런데 이 곡은 파제한테 연주를 시켜보니까 잘 치는 거. 나는 이 곡에서 잘 치는 것을 표현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멍청하게 치는 게 어떤 느낌인지 시범을 보여줄려고 기타 잡고 쳤는데 그걸 천학주가 듣더니 그냥 이걸로 갑시다 해서 그렇게 갔어요.


전 _ 재준이한테도 이 곡 잘 치면 안 된다. 고등학교 밴드부처럼 쳐야 한다. 그랬죠.


단 _ 연주자들에게 그런 요구를 굉장히 많이 하는 편이에요. 잘 치면 안 돼요. 잘 치면 맛이 없어져요.


전 _ 합주할 때도 계속 평양냉면처럼 쳐야 한다고…


단 _ 천용성 <대설주의보> 레코딩 할 때도 연주자들한테 평양냉면처럼 연주해야한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그러면 연주자들이 힘들죠. 지금까지 시간 돈 체력 써서 열심히 연습했는데 잘 치면 안 된다고 막 그러잖아. 그런데 잘 치면 안 되니까 안 되는 거거든요. 이를테면 크라잉넛 형들 <말달리자> 같은 거, 그거 잘 치면 그런 느낌 전혀 안 나와요. 굉장히 잘 못 쳐야해!

평양냉면처럼 하는 연주의 정석

전 _ 이제 마지막 두 곡이 남았으니까, 토크를 하고선 듣도록 하겠습니다. <따오기>도 클라우즈 블록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할 때 먼저 냈던 곡인데요, 편선 님이 편곡한 버전에서는 펑크록처럼 연주했어요. 이 곡도 고등학교 밴드부처럼 쳐야한다고…


단 _ 정확히는 요새 인디록 밴드가 90년대 캘리포니아 펑크 흉내내는 것처럼 연주해야 한다는 요지입니다.


전 _ 그래서 이 버전은 이례적으로 동료 뮤지션들에게 악평을 받기도 했었는데요. 원곡이 낫다고.


단 _ 지난 주에도 얘기했었지만 음알못들 하는 소리는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그런데 그 음알못이 누굽니까.


전 _ 이권형입니다. (편집자 주 : 이권형은 인천 출신의 싱어송라이터로서 전유동, 단편선 등과 오랫동안 두터운 우정을 쌓았다.)


단 _ 이권형 이 음알못이! (몹시 분노) 저도 원래 버전도 좋아해요. 단일 곡으로만 보면 그 버전이 더 좋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관찰자로서의 숲] 버전에서 이 곡은 마지막으로 음반을 닫는 부분에 있는 곡이란 말예요. 듣는 사람들이 이 앨범을 경험할 때, 가장 마지막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들어주었으면 좋겠는지 하는 바람이 담겨야 해요.


전 _ 이 곡의 원곡은 좀 애절하게 끝나거든요. 처음 썼을 당시에 부모님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음악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다시 내려간다면 그래도 조금은 좋은 모습으로 뵙고 싶다, 그런 마음을 담아서. 그런데 신나게 편곡이 바뀌니까 뉘앙스가 “잘 다녀올게요, 어머니.” 보다는 “잘 갔다 올게요!” 이런 느낌인 거예요. 그러니까 저는 음알못이 아닌 걸로…

클라우즈 블록의 명의로 발표된 따오기로서 음알못 판독기의 기능을 하고 있다

전 _ <딱딱한 열매>는 다른 전문가들의 도움 없이 스스로 녹음도 하고, 믹싱도 한 곡이에요. 플라스틱 폐기물을 딱딱한 열매에 비유한 곡이에요. 마지막에 나오는 이상하게 연주되는 우크렐레는 다진이가 연주했는데 슬라이드 바 손가락에 끼우고 아무렇게나 연주하는 것을 그냥 바로 레코딩 했어요. 천진난만한 어린 생명이 플라스틱 조각을 먹고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그런 의도를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오히려 그대로 안 나올 것 같아서. 그래서 다진이한테 작업실에서 “아, 맞다. 나 슬라이드 바 샀는데, 한 번 써볼래. 아무렇게나 연주해봐.”라는 식으로만 이야기 하고선 그것을 그대로 레코딩 해서 썼죠. 다진이는 그때 그냥 장난치고 있는 줄 알았다더라고요.


(불이 꺼지고 LP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Track 10 <따오기(36Y)>

Track 11 <딱딱한 열매>

Track 10. 따오기 (36Y)
Track 11. 딱딱한 열매

단 _ 이렇게 [관찰자로서의 숲] 전체를 함께 들어보았습니다.

전 _ 오늘 돌아가시는 길 조심해서 돌아가세요. 감사합니다.


(관객들이 퇴장한다.)


(전유동, 단편선, 이성민이 카페를 정리한다.)


(카페 침묵의 불이 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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