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학예회를 할 거야. 그림, 글, 노래 등 장르 불문이고, 총 3등까지 소정의 상품이 걸려있어. 어때?”
중학교 2학년 2학기가 시작된 지 일주일 정도 지났을 무렵, 담임선생님이 중대 발표를 하셨다. 어수선한 분위기를 다잡으려는 의도로 비쳤다.
나대는 성격이 아니라서 애초부터 참여할 의사가 없었다. 그야말로 우연한 사건이 계기가 돼 시 한 편을 완성했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제출했다. 우연한 사건이란 주말에 단짝이랑 단둘이 방울 낚시하러 갔던 일을 말한다. 녀석의 신통방통한 실력, 떡밥 던지기 전 외웠던 묘한 주문, 적막한 호숫가 풍경은 꿈속에 나올 만큼 깊은 인상을 남겼다. 초등학교 시절, 여러 글짓기 대회를 전전하며 얻은 내공이 묵혀 있다가 자연스레 꽃피듯 되살아난 것이다.
결전의 날이 밝았다. 담임선생님은 2등 수상자를 호명하기에 앞서 수상자의 작품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하시면서 눈부실 정도로 환하게 웃었다. 대망의 수상자는 다름 아닌 바로 나였다.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애써 꾹꾹 누르며 수줍게 미소 지었다. 담임선생님은 직접 내 시를 여성 특유의 낭랑한 목소리로 읊어주셨다. 그 목소리엔 ‘내가 너를 응원하고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번쩍이는 황홀한 순간이 지나가자, 난데없이 교실에 매서운 찬바람이 휘몰아쳤다. 나와 선생님을 제외한 대다수가 대동단결한 듯 인상을 찌푸렸다. 수차례 엉덩방아를 찧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사다 마오가 그녀보다 월등한 연기를 선보인 김연아 선수를 제치고 금메달을 땄을 경우 나타나는 시청자 반응과 흡사했다. 노골적인 야유 소리가 새어 나오기도 했다.
아이들의 항변을 두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랬다. 무슨 시가 그 모양이냐! 너무 우습다! 나야 그렇다 쳐도 담임선생님의 결정사항에 이렇게 반응한다는 건 분명 무례한 처사였다. 당황한 담임선생님은 별다른 말 한마디 하지 못한 채 서둘러 1등을 발표했다. 열화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수상작이 뭐였는지 확실히 기억나진 않는다. 모범 답안에 가까운, 매우 그럴싸한 작품이었던 것 같다.
그날의 일은 세월이 흐르고 흘러 내 머릿속 어딘가에 숨어버렸다. 며칠 전 목욕탕에서 반신욕을 하는 와중에 짜잔, 하고 나타나 나를 놀라게 했다. 왜 그랬을까, 곰곰이 따져봤다. 문제는 고정관념이었다. 시라고 해서 반드시 진지하게 쓸 필요는 없다. 유쾌하게 써도 나름대로 해학미를 지니게 된다.
대학교 시절, 「일회용 시」라는 다소 파격적인 제목의 시 한 편을 교내 신문사에 보냈다가 아주 가볍게 무시당한 적이 있다. 제목부터가 얼토당토않고 내용도 가벼워서 별 볼 일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기발한 착상을 통해 탄생한 실험 작품은 지저분한 쓰레기통에서 짧은 생애를 마감하고 말았다. 문학적 표현을 배제한 채 평범한 일상의 언어로만 완성한 시를 합평회에 냈다가 빈축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쓴 시들이 절대 하찮게 취급될 존재가 아님을 알고 있었고 시인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굽히지 않았다. 이러한 믿음이 2011년도에는 작은 결실을 이뤄냈다. 제7회 사계 김장생 신인 문학상에 당선돼 시인이란 호칭을 얻게 된 것이다. 고정관념을 가지고 나를 대했던 이들에게 통쾌한 주먹 한 방을 날린 셈이다.
에디슨은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천재는 1퍼센트의 영감과 99퍼센트의 땀으로 이루어진다.” 영감보다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우쳐 주기 위함이었다. 허나 생각을 약간 달리하면 전혀 다른 뜻이 된다. 일반 사람이 99퍼센트의 노력을 기울이더라도 1퍼센트의 영감을 얻지 못하면 죽었다 깨어나도 천재가 될 수 없다고 해석된다. 이처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남과 다른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선을 가져야 한다. 그건 정말 엉뚱한 일이기도 하고 매우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