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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재 May 10. 2016

천주교 성지순례

미리 위치를 확인해뒀기에 발걸음은 거침이 없다. 전주 시외버스터미널 앞에 있는 다리를 건넌 후 진북 고등학교를 지나 동국 아파트로 향한다. 15분 남짓 걸었을까. 동국 아파트 우측 편에 아담하게 자리한 숲정이 성지가 보인다. 칼 모양의 탑이 우뚝 서 있고 그 옆에는 순례자들을 위한 안내판과 의자가 놓여있다. 본래 숲정이 성지는 동국 아파트 터에 있었으나 도시화 개발로 인해 철거돼 현재 이곳으로부터 150미터 거리에 있는 윤호관에 새롭게 조성돼 있다. 이곳은 순교 터를 잃고 애석해하던 신도들이 뜻을 모아 작은 땅을 매입해 복원한 곳이다. 숲이 칙칙하게 우거져있다 하여 숲정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곳에서 1801년 신유박해 때 호남의 사도 유항검 가족들이 순교했으며 이후 기해박해와 병인박해를 거치는 동안 수많은 천주교인이 순교하였다. 당시의 슬픈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파트 앞 놀이터에 있는 아이들은 뛰노느라 여념이 없다. 


숲정이 성지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골목길을 빠져나온다. 전주천을 따라 흐드러지게 우거진 갈대숲이 나를 반긴다. 마법에 걸린 듯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입가의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이윽고 서천교가 모습을 드러낸다. 한국 역사상 가장 큰 종교박해였던 병인박해 때 조윤호가 처형당한 장소다. 그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과 그림에서 성스러운 기운이 감도는 듯하다. 쇄국정책으로 나라를 다스리던 흥선대원군은 전국 각지의 천주교 신자 만여 명을 처형했는데 그중 완주군에 살던 그는 아버지 조화서와 함께 체포되었다. 조화서는 숲정이에서 처형됐으나 당시 법이 아버지와 아들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같은 칼로 처형할 수 없게끔 규정돼 있어 그의 처형은 미뤄졌다. 전주 진영장의 배교 강요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그는 서천교 다리 밑에서 태장 200대를 맞았지만 신앙의 힘이었는지 죽지 않았다. 결국 군인들이 그의 목에 밧줄을 감았고 걸인들을 시켜 줄질하여 죽였다. 그 끔찍한 광경을 생생히 지켜보았을 전주천은 오늘도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매곡교를 지나 싸전다리를 향해 걸어간다. 싸전다리 앞에는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인 두 소년, 남명희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홍보주의 아들이 순교한 장소 초록 바위가 있다. 옛날에는 이곳 주위가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도로가 개통되어 본모습을 찾을 수 없다. 두 소년은 일 년 남짓 투옥된 후 법적 처형 나이인 15세가 되었을 때 이곳에서 떠밀려 전주천에 빠져 죽었다.

싸전다리를 건너 남부시장 입구로 들어선다. 다양한 볼거리로 인해 재미가 쏠쏠하다. 어느새 풍남문이 눈앞에 서 있다. 옛 전주 읍성의 남문으로서 현재는 전주를 대표하는 관광명소 중 하나로 손꼽힌다. 또한 천주교 성지순례에서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장소다. 처형된 유항검이 효시된 곳이기 때문이다.


콩나물국밥 한 그릇 뚝딱 비우고 풍남문 맞은편에 위치한 전동성당으로 걸음을 옮긴다. 전동성당은 한국 천주교회 순교 1번지다. 윤지충, 권상연, 유항검 그리고 초기 전라도 지도급 인물들이 순교했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로서 아름답고 정교하여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영화 ‘약속’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정문을 통과하자 두 손을 활짝 벌린 예수상이 따스하게 맞아준다. 순교자들의 석상과 성모 마리아상을 둘러본 후 옷매무시를 단정히 하고서 성당 안으로 살며시 들어가 본다. 입구에 놓인 성수에 손을 대니 영혼이 맑아지는 듯하다. 다소곳이 앉아 두 손을 모으고 지그시 눈을 감는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있는 경기전을 지나 한옥마을로 들어선다. 옛 전주의 고결한 숨결이 물씬 풍긴다. 조선 시대 양반 자제의 교육을 담당하던 전주향교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한참을 죽 올라가니 옛 누각 하나가 외로이 서 있다. 한벽루다. 바위에 부딪혀 흰 옥처럼 부서지는 물이 시리도록 차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번 성지순례의 종착지인 치명자산 성지는 대학교 재학 시절에 한 번 가본 적이 있다. 헌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어쩔 수 없이 동네 아주머니에게 길을 물어본다. 입구에 다다르자 별안간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우산을 펴든 채 가파른 계단을 묵묵히 오른다.

치명자산 성지는 유항검과 그의 아내 신희, 동정부부로 유명한 장남 유중철과 며느리 이순이, 차남 유문철, 재수 이육희 그리고 조카 유주성의 무덤이 있는 장소다. 그들이 처형됐을 때 교우들이 유항검의 고향인 초남리와 인접한 제남리에 임시로 묻어두었는데 1914년 보두네 신부와 신자들이 이곳으로 옮겨 모셨다. 길 중간중간에 예수님의 귀한 말씀이 아로새겨진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등이 땀으로 흥건하다. 육신은 힘들지만 정신은 어느 때보다 고요하다. 자그마한 성당에 들러 잠시 기도를 올린 후 순교자 묘소로 향한다. 전주시의 모습이 훤히 내다보이는 묘소 앞에서 기도문을 차분히 읊조려 본다. 묘소 위 정상에 있는 십자가 비석과 성모 마리아를 닮은 기암이 무척 서글퍼 보인다. 


교인인지 등산객인지 알 수 없는 한 어르신이 성당 옆 쉼터에 앉아 있다. 인사라도 드릴까 하다가 그저 저만치 떨어져 앉는다. 자판기 커피는 아쉽게 매진이다. 한동안 멍하니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낡은 나무 의자를 바라보니 예전 일이 문득 떠오른다. 환히 웃으며 천주교 역사에 관해 설명하시던 교수님이 금방이라도 번쩍 나타날 것만 같다. 어디선가 새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어르신과 나는 아무 말이 없다. 가방에 넣어둔 요구르트라도 나눠 먹을까 싶어 가방을 열었으나 달랑 하나밖에 없다.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하산한다. 비 때문에 음산해진 분위기도 분위기려니와 맞은편 산마저 안개로 자욱하니 그럴 일은 절대 없겠지만, 저 어르신이 혹시 유항검이 아닐까 하는 묘한 생각이 든다. 내 인간성을 시험해보기 위해 또는 답답해서 잠시 산책하러 나왔을지도 모른다.


성직자 묘역을 잠깐 둘러본 후 입구 우측에 있는 몽마르트르 정원으로 발걸음을 내디딘다. 벤치에 앉아 고된 몸을 달래 본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의 굳은 신념을 지켜낸 순교자들을 떠올리니 가슴이 바위에 깔린 듯 먹먹해진다. 그들의 육체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숭고한 정신은 변함없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깨닫는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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