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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유청 Oct 24. 2021

오키나와 백수5

아무 생각없이 떠난 첫 여행

오늘도 루틴대로 조식을 먹고 들어가서 한잠 더 잤다. 조식을 먹으러 내려갔다가 망했다 싶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 조식을 먹고 그냥 잤다가는 왠지 호텔 방을 벗어나지 않을 것 같아서 알람을 맞췄다. 알람 소리에 일어나서 나갈 준비를 하고, 캐리어에서 우산을 꺼냈다. 쓸 일이 없었으면 하면서 챙긴 우산인데, 이렇게 쓰게 되나 싶어서 씁쓸했지만. 호텔 로비에 내려와서 와이파이를 접속하고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망했다!”

“비 오냐? ㅋㅋㅋㅋ.”

“오늘 슈리성 가려고 일정 다 짰는데...”

“ㅋㅋㅋㅋ. 망했네?”

“그래도 우산 쓰고 나가려고”

“뭐 그것도 나름 운치 있겠네. 언제 오키나와에서 비를 맞아보겠어. ㅋㅋㅋㅋ.”

“그건 그렇네? ㅋㅋㅋㅋ.”


망한 여행은 되레 좋은 글감이 되니까. ㅎㅎㅎㅎ. 나하 버스 터미널 이라 적힌 영어가 진짜 한글처럼 읽혀서 놀라웠다.  


와이파이 접속을 끊고 호텔을 나섰다. 슈리성은 내일 가는 걸로 하고, 나중에 버스를 탈 일이 있을 것 같아서 나하 버스 터미널 위치를 한번 봐두려고 우산을 받쳐 들고 걸었다. 대충 버스터미널인 것 같은 곳에 도착해서 알 수 없을 히라가나를 보고 잠시 당황할 무렵 바로 나하 버스 터미널이라고 영어로 쓰인 것이 눈에 한글처럼 들어 왔다. 혹시나 유이레일에서 파는 이찌니찌 후리파스(일일권)같은 것이 있나 확인해볼 심산에 터미널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용기였는지 창구에가서 다짜고짜 되도 않는 일본어로 물었는데 소통이 될 리가 없지. ㅎㅎㅎㅎ. 결국 서로 다른 소리만 한 참 하고 포기한 것 같다. “아노 스미마셍, 간꼬꾸진 강꼬데”이 이후로는 도대체 뭔 말을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미리 확인해둔 버스 승차위치. 루프라인이 마키시 가이난 루프라인이라고 쓰인 14번 버스. 루프라인이 그렇게 사람을 당황하게 할지는 이땐 몰랐지. ㅎㅎㅎㅎ.


나중에 아메리칸 빌리지와 시키나엔을 갈 땐 버스를 타야 했으니 출발하는 위치를 한번 찾아봤다. 시키나엔은 14번 버스를 타면 됐는데, 아메리칸 빌리지 가는 버스는 도통 찾을 수가 없었다. 마키시 가이난 루프라인이라고 쓰인 14번 버스. 루프라인이 그렇게 사람을 당황하게 할지는 이땐 몰랐지. ㅎㅎㅎㅎ.  터미널 구경을 마치고 나와서 점심을 먹으러 편의점에 들렀다. 주먹밥 하나와 컵라면. 니신 컵누들 처음 먹어봤는데 왜 지난 나흘 동안 이걸 안 먹었나 싶어서 조금 후회했다.


점심을 먹고 나오니 다행히 비가 그쳐있었다. 우산을 접고 본격적으로 또 동네 구경. 그러다가 비디오숍을 구경하게 됐는데... 음... 검은색 커튼과 마치 베란다처럼 섀시 문으로 닫혀 있던 공간. 뭔가 싶어서 열었다가 당황. AV만 잔뜩 모아둔 공간이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역시 일본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잽싸게 한번 휙 둘러보긴 했다. ㅎㅎㅎㅎ. 비디오숍을 나와서 동네를 걸었다. 그러다가 건물의 출입구에서 차와 살짝 물리는 상황이 있었는데, 거리가 있어서 당연히 지나가겠지 하는 생각에 걸음을 내딛는 속도를 줄였다. 그런데 차는 멈췄고 먼저 운전자는 지나가라는 눈빛을 보냈는데, 이걸 내가 먼저 지나가면 너무 딜레이되는 것 같아서 먼저 가라고 손으로 제스처를 취했다. 그랬더니 최대한 천천히 자를 몰면서 창문을 내리고 가볍게 눈인사를 하며 지나가는 걸 보며 이것 또한 일본이구나 싶었다. 오키나와를 편애하게 된 이유 중엔 이 경험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물론 모든 일본인이 이렇게 배려심이 깊고 그러진 않겠지만. 아무튼 굉장히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우산들 받쳐 들고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문제의 비디오숍. 그래 이것 또한 일본의 모습. ㅎㅎㅎㅎ. 


동네 구경을 좀 더 하다가 저녁이 되어서 류보백화점 1층에 있는 모스버거에 갔다. 지금이야 국내에도 지점이 있지만, 그때만 해도 여행 책자에 “한번 들러볼 만한 곳”이런 식으로 소개되는 곳이 었으니. 패스트푸드보다는 괜찮고 그렇다고 제대로 각 잡고 만드는 버거 하우스 느낌은 아닌. 정성을 좀 더 들이는 프랜차이즈 정도였다. 물론 당연히 맛은 있었고. 비가 와서 평소보다 덜 움직이기도 했고, 뭔가 아쉬워서 밤 산책을 해볼 겸 오노야마 애슬레틱 파크로 향했다. 야구장을 비롯해 무도관이 있는 곳. 공원 산책로도 잘 되어 있어서 산책하기에 딱 좋은 곳이다. 밤이라 너무 오래 있지는 못하고 적당히 걷다가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당연히 편의점에서 맥주와 간단한 스낵을 사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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