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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유청 Jul 03. 2023

드디어 약을 먹을 수 있게 됐다.

로묘일기2

2022-11-9


본격적인 수액처방이 시작됐다. 절망적인 진단을 받은 지난주 토요일(11월 5일)부터 계속. 매일 맞아야 하는 상황 있었지만 그럴 수는 없으니, 지난번에 예약한 월요일, 수요일, 토요일 이렇게 주 3회. 이 병원 의사쌤의 가장 큰 장점은 집사에게 과한 감정적 짐을 덜어주려 노력한다는 점이다. 집사로써 너무 자격 없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에 “직장 때문에 매일은 어렵겠는데요”라는 말을 선뜻하지 못하고 있을 때 “그럼요 집사도 집사의 삶이 있고 직장생활을 해야 하는 거니까...”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오전에 출근해서 간단히 업무를 처리하고 점심을 포기할 생각으로 외근 길에 올라 로이를 병원에 맡기고 다시 회사로 복귀. 이번 주는 별 수 없이 이런 사이클로 살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외근에 자유로운 편이라, 이 직업이 이렇게 도움이 되네 싶을 생각을 했다. 동물병원의 평일 진료시간은 저녁 7시 30분까지였지만, 좀 늦어도 괜찮으니 여유 있게 오라는 사려 깊음에 또 감동해 버리고. 6시 40분쯤 집에 도착해서 차를 끌고 바로 병원으로 넘어가는 길이었다. 시동을 걸자마자 스피커폰으로 울린 의사쌤의 전화.      

      

“로이 컨디션 엄청 좋아졌어요!”

“그래요?”

“지난주 토요일 보다 확실히 활동반응도 좋고, 이래저래 호기심도 보이고...”

“지금 로이 데리러 가고 있습니다”

“천천히 와요, 무리하지 마시고”     


병원에 도착해 로이를 봤다. 확실히 지난주 토요일에 비해서 컨디션이 괜찮아진 느낌. 의사쌤은 수요일에 수액을 맞고 지금 컨디션이 계속 유지되면 약 처방을 시작해 보자고 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설명을 해준 뒤 “구체적인 건 수요일에 컨디션을 보고 한번 미팅을 해봅시다”라는 말을 끝으로 오늘 진료 끝. 집에 와서 보니 더 확실하게 보였다. 주말 보다 컨디션이 좋아졌다는 점이. 이제는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도 고개를 돌려서 쳐다볼 정도로 활동 반응이 좋아졌다. 그리고 우는 소리도 좀 더 힘찬 것 같고, 무엇보다 3일 만에 맛동산을 생산했다는 점이… 잘 먹고 잘 싸는 게 이렇게 기쁠 일인가 싶으면서도 너무 기특해서 한참을 끌어안고 있었다. 수요일에 컨디션이 계속 좋아져서 약 처방을 시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널브러져서 잘 수 있다는 건 그나마 좀 편해졌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수요일이 됐고, 오늘도 월요일과 마찬가지로 점심을 포기하고 병원에 로이를 맡겼다. 퇴근 후에 병원에 들러 의사쌤과 상담을 했다. 지난번 수액처방 후 좋아진 컨디션이 잘 유지됐고, 이제 약을 하나하나 처방해 보자는 이야기. 3가지(아미나바스트, 아조딜, 크레메진) 약을 다 먹는 게 제일 좋지만 현재로선 일단 하나만 먼저 해보자고 했다. 그래서 제일 먼저 받은 약은 아미나바스트.      


로이는 어린 시절부터 극단적으로 알약을 싫어했기에 츄르에 섞어 먹이는 방법을 택했다. 물론 이건 집사가 제대로 훈련시키지 못한 탓이 크지만... 상호 간에 윈윈 할 수 있는 방안이었다. 로이에겐 약이지만 간식을 먹는 기분이고, 나에겐 좀 더 편하게 약을 먹일 수 있고. 아무튼 드디어 약을 먹일 수 있게 됐다. 계속 더 좋아져서 다른 약도 같이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올해를 넘길 수 있는 희망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간식인 줄 알고 찹찹 먹었지만 그건 약이었지. 이렇게 약을 먹을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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