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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유청 Oct 22. 2021

서울 외할머니댁

공간다반사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친척 동생에게 카톡을 보냈다. “여기 진짜 예전에 외할머니댁 느낌이야!”라고. 공간다반사를 보자마자 어린 시절의 기억이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외할머니댁은 서오릉 근처였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많이 생겨서 어디인지 알 수가 없지만... 용인에 살던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 종종 서오릉으로 향했다. 광역버스가 없던 시절이라 용인에서 남부터미널로 가는 직행버스를 타고 양재역에 있는 간이정류장에 내렸다. 마치 성냥을 긁어도 될 것 같은 느낌의 마그네틱이 칠해진 노란색 티켓을 끊어서 3호선 지하철에 몸을 싣고 녹번역까지 간다. 그리고 녹번역에서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 서오릉 근처 어느 정류장에 내리면 마을까지 10분을 넘게 걸어야 닿을 수 있었던 외할머니댁. 지금 생각해보면 용인에서 녹번역까지 버스+지하철 환승 코스만 생각해도 허리가 쑤셔 오는데 그때는 마냥 신 났던 것 같다. 서울여행 같기도 했고.


아무튼 공간다반사는 그 시절 서울의 집 같은 느낌을 잔뜩 담고 있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뭐랄까 서울에 사는 외할머니댁 같은 느낌이라고 하면 적절할 것 같다. 지방의 시골에 사는 친할머니의 느낌과는 약간 다른 서울 외할머니 특유의 아우라가 있다. 할머니지만 미약하게나마 이른바 서울깍쟁이의 기질이 느껴지는 그 묘한 느낌. 공간다반사는 서울 속의 제주 등등 다양한 수식어로 SNS에서 소비되는 것 같은데, 서울 외할머니에 대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느낌에 공감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외부에 전동 킥보드와 따릉이가 없으면 충청도 어디, 경상도 어디, 전라도 어디, 강원도 어디 시골 마을이라고 해도 전혀 이질감이 없을 것 같아서 재밌는 카페가 공간다반사다. 어쩌면 SNS의 그런 다양한 반응은 이런 묘한 느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공간다반사는 그 시절 서울의 집 같은 느낌을 잔뜩 담고 있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뭐랄까 서울에 사는 외할머니댁 같은 느낌이라고 하면 적절할 것 같다. 


공간다반사는 당산역 4번 출구 뒤편 정말 한적한 곳에 있다. 너무 한적한 공간이라 혹시 손님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주변을 잠시 살펴보면 기우였음을 깨닫게 된다. 카페 바로 앞에 한강공원 산책로가 있고, 따릉이 대여소와 전동 킥보드가 꽤 서 있는 걸 보면 트래픽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현재 서울에서 공간의 가치는 이제 모빌리티 위주로 재편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을 잠시 해봤다. 대로와 역세권을 끼고 있는 부동산의 가치와는 별개로 카페에 좋은 목이라 함은. 하긴 공간다반사는 당산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역세권인 셈이지만.


공간다반사 앞에는 나무와 수풀이 꽤 넓은 범위로 우거져 있다. 가독성 측면에서 가게의 간판과 익스테리어를 가리는 것 같지만, 그 풍경 자체가 사이니지 같아서 흥미롭다. 왠지 나무와 수풀이 있어야 비로소 익스테리어가 완성되는 것 같아서. 여름엔 푸르게, 가을엔 노랗게, 겨울엔 좀 쓸쓸하게, 공간다반사의 사계를 만드는 디자인 요소가 아닐까 생각했다. 특히 공간다반사의 포토존인 큼직한 통유리가 있는 자리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은 서울에서 쉽사리 볼 수 없는 풍경이라 꽤 흥미롭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 와있거나 혹은 오래전 서울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어서. 


통유리창이 있는 자리에 배치한 테이블은 마치 응답하라 시리즈에나 나올 법한 벽돌같이 무식한 크기의 무선전화기가 놓여 있을 것 같은 느낌이라 더더욱 추억을 끄집어내는 것 같다.


당산역을 나설 때까지만 해도 소음과 빌딩 등 도시의 스트레스가 너무 명확해서 고개를 갸웃하며 골목을 들어서는 순간 공간 자체를 풍성하게 채우고 있는 녹지로 인해서 잠시나마 해방감을 느끼는데, 공간다반사는 그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서울의 외할머니댁이란 느낌을 받은 건 아마도 녹지를 품고 있어서 그렇지 않나 싶었다. 그 시절 외할머니댁에서 담장 밖으로 올려다본 풍경은 녹색이 꽤 많이 보였기 때문에. 그리고 통유리창이 있는 자리에 배치한 테이블은 마치 응답하라 시리즈에나 나올 법한 벽돌같이 무식한 크기의 무선전화기가 놓여 있을 것 같은 느낌이라 더더욱 그 시절 추억을 끄집어내는 것 같다. 나무와 수풀이 노랗게 물들어가는 가을에 가도 좋겠지만, 녹색이 한껏 짙어지는 여름에 다시 한 번 와봐야겠다. 더운 여름 기온을 식혀주는 그늘 밑에 있으면 오래전 추억이 되살아날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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