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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만월 Jan 17. 2019

토끼처럼 살았다

종종 강렬한 꿈을 꾼다. 

요즘 더 그렇다. 

얼마 전 꿈에는 처음 만난 여자의 쌍둥이 딸 장례식에 다녀왔다. 

오늘 낮에 꾼 꿈은 더 그랬다. 

굉장히 달콤해 보이는 장소에서 굉장히 매력적인 사람들을 만나 놀고 있었다. 

그러다 그곳을 잠시 벗어나게 되었고 돌아와 보니 아비규환이었다. 

모두가 무언가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으나 출구를 찾지 못하고 발버둥 쳤다. 

모두가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서로를 두려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당장 죽을 것만 같아 보였다. 

그들에게 돌아가려는 내게,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이 입구를 버티고 서서는 온갖 물건을 닥치는 대로 집어던졌다. 

미소 띤 얼굴로. 여기는 되었다는 듯. 뒤돌아 가라는 듯. 

갑자기 나는 뒤돌아서 이상한 몸짓으로 공중을 날아 필사적으로 멀어졌다. 

벽장에 숨어볼까도 생각했지만 누군가가 이미 차지하고 앉아있었다.

그에게 같이 가자고 하지 않았다. 조용히 벽장문을 닫아주었다. 

예쁘고 부드러운 옷을 입고 다시 이상한 몸짓으로 하늘을 날았다. 

사실 꿈이란 걸 계속 알고 있었다. 

'이쯤이면 괜찮겠다' 싶어 졌을 때 눈을 살며시 뜨니 

시간은 오후 4시가 다 되어가고 

해는 부드럽게 넘어가고 

부엌엔 그쯤 되면 뜨는 무지개도 함께 넘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팔도비빔면이 먹고 싶어 졌다. 


비빔면을 먹으면서 

넷플릭스의 애니메이션 '힐다'를 보았다. 

마지막 회였다. 늘 그렇듯 모험과 자연을 사랑하는 힐다는 모두에게 감화를 주고 행복해했다. 

나는 아마 그런 사람이고 싶었던 것 같은데 서브주인공이 눈이 밟힌다. 

겁 많고 만만하고 매사에 자신이 없어 실수하는 아이. 

마지막 회에서 그도 누군가에게 '난 이제 두렵지 않아, 특히 너!'라고 말했다. 

그도 결국 행복해졌다. 다행이다. 


짧게 다른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토끼들이 등장했다. 

긴 뒷다리와 무엇이든 들을 수 있는 예민한 귀를 선물로 받았으나 

그것이 진정 선물인지 저주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 귀라면 아무리 작은 소리도 두려울 것이다. 

그 다리로는 아주 조금 앞지를 수 있을 뿐 잠시도 숨 돌릴 틈이 없을 것이다. 

마침내 모든 것이 그의 천적이 되었다. 

그가 그 뒷다리로 그의 천적에게 버티고 서서 두 귀로 겁을 주며 

'난 이제 두렵지 않아, 특히 너!' 

라고 해버린다면 1초 후엔 더 이상 토끼가 아니라 토끼 고기가 되려나. 


예비 토끼고기로 사느니 

미친 토끼가 낫지 않을까? 

1초쯤 생각해보았다. 

창문을 흔드는 바람소리에 

2초도 생각을 이어가지 못하고는 움츠리는 예비 고기.

비빔면을 다 먹어치우고 나니 

힐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마시던 핫초코가 아쉬워진다. 

토끼 생각은 저 멀리

그저 핫초코나 마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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