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만월 Feb 26. 2019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냉장고에 붙은 것들을 천천히 떼야할 시간이 다가온다. 

출발선에 있던 모습들과 다짐들을 거둬야 할 시간이 되어온다. 

빳빳했던 메모들이, 사진들이 낡고 바랜 모습을 보니 시간이 꽤 지나긴 했나 보다. 

자석이 모자라 세 겹으로 네 겹으로 겹쳐 붙여두었던 것들을 모으면 꽤나 짐이 될 것 같다. 

짧은 시간 동안 꽤나 많이 쌓였다. 


마음먹고 시작해 달리는 것 까지는 참 좋다 이거야. 

터질 것만 같은 뭔가를 분출하기만 하면 되니 말이다. 

그러다가 멈춰야 할 때가 오면, 브레이크를 천천히 밟아 정지선에 맞춰 멈추고 시동을 꺼야 할 때가 오면 

항상 그렇듯이 어쩔 줄을 모른다. 그때가 다가온다. 

아름다운 마무리라든지 갈무리라든지 뭐 그런 거 할 줄 모르는 나는 

언제나 그렇든 지키지 못할 무수한 약속들을 흩뿌리고 그들의 인생에서 사라지겠지. 

다시 만나자, 그래 꼭 만나자, 돌아와 볼게, 물론 그럴 수 있다면. 아마도 그럴 수 없겠지만. 


늘 새로운 시도를 위해 멈추는 것은 해봤어도 

멈추어야만 하기 때문에 멈추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다음 상대가 없이 이별을 맞아야만 한다.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으로 이전의 것을 미련 없이 남기고 떠나는 

그런 이별은 꽤 있었으나 이번의 것은 다르다. 

새로운 열망이 없으니 남겨진 것은 나의 쪽이다. 

산뜻하게 사라져줘야 하는데 자꾸 미련이 남는다.


하기 싫은 일을 앞두면 게을러지는 법 

떠올리면 벌써 불쾌한 감각이 들러 붙는 것 같아, 그것을 잊으려고 허튼 시간을 보낸다. 

생리대를 만들기도 하고, 인터넷을 열심히 하기도 한다. 

돈도 없으면서 쓸데없이 갖고 싶은 것들에 대한 정보를 찾아다니기도 하고 

'나란 인간은 누구인가' 하는 찰나의 호기심 때문에 답을 찾는다고 오랜 시간을 보낸다. 

남들이 규정한 나는 누구일까, 남들은 무엇을 가지고 있을까.

이런 것들이 갑자기 궁금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할 일이 없다는 뜻이다. 

할 일이 없고,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이 딱히 없어서이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뜻이다.


때문에 

'뭐라도 해보자, 움직이는 것 말고 그런거 있잖아'

하는 마음에

명상을 꾸준히 하려고 하는데도 

가부좌를 틀고 앉으면 머릿속에는 능구렁이 수십 마리가 뒤엉켜 똬리를 틀고 앉아 

심심하면 미끄러지고, 심심하면 와작 아픈 곳을 깨물기도 한다. 

허튼 생각을 많이 한다는 뜻이다. 

명상하려고 앉아서 하는 일이라고는 

문득 드는 생각이 번뇌인지 고민하고 자빠져있는 것 뿐.

그 고민이 번뇌가 되면 번뇌가 어떻게 번뇌를 낳는지 생각하다가

그렇게 꼬리를 물어 번뇌를 따라가다가 보면 

도무지 명상을 하던 어둑한 공간이 어디인지 현실감이 없어진다.  

갑작스럽게 깨어나 출근을 해야 하는지 저녁밥을 먹어야 하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 개념이 없어지는 경우나

부산스러운 꿈을 꾸느라 일어나고 나서 내가 어디로 머리맡을 하여 잠에 들었었는지를 잊어버리는 

그런 지경과 비슷하다. 

어쨌든 허튼 생각을 잔뜩 한다는 뜻이다. 

자의식이 하도 강하여 명상으로 자기 자신을 녹이는 것보다는 

되려 나는 누구인지 남과 어떻게 구별되는지를 곰곰이 고민하고 자빠져 있다는 뜻이고. 

이렇게라도 뱉는 고해성사에 조금 속이 시원하다. 


사실 당장의 삶에 대한 고민보다 

가려워오는 머릿속이 더 걱정이다. 

오늘 학교에서 엄청난 마릿수의 머릿니를 보았고

나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대체로 꽤나 많은 수의 머릿니를 가지고 있고 

유독 미소가 맑고 예뻐서 

안아주고 싶고 

머리가 가렵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신 진리의 말씀보다는 

어른은 두피의 온도가 어린이들보다 낮아 살기 어렵다든지, 

하루에 머리를 두 번 감으면 괜찮아 지리라든지, 

머리가 건조한 탓일 뿐일 테니 귀찮은 김에 그냥 자자든 지

별 유치한 핑계를 다 가져다 대느라 

두피의 온도가 높아져 

상상 속의 머릿니들은 이미 알을 낳고 

알 속의 머릿니들이 이미 알을 가지고 태어날 것이라는 것에까지 미치면 


아 부처님은 거짓말씀은 하지 않으시는구나. 

번뇌가 별게 아니구나 

이렇게 미쳐 돌아가는 것이었구나 

그래서 삶이 고통인가보다

생각이라는 놈을 멈출 수가 없으니 말이다. 

하며

머리를 긁는다. 

번뇌, 이 머릿니 같은 놈. 서캐는 하나씩 뽑아야 하는데 번뇌도 그와 같다면 엄두가 안나 머리를 밀어야.

아! 그래서 머리를 미는겁니까?

아닙니다. 미안합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지. 

그래.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이지만 

다음에 또 만날 것을 약속하지는 않겠어요.

주사위를 세 번 던져 세 번 모두 삼이 나올 경우의 수보다도 희박할 테니 

거짓말을 하지는 않겠어요. 

우리 이 곳에서, 이 먼 곳에서 이렇게 인연을 맺었으니 

언제 어디서라도 다시 스치겠지요. 

그때까지 건강하세요. 

우리 어디에서라도 다시 스칠 그 날까지 

평화롭고 자유롭게 먹고 자고 싸며 행복합시다. 알겠지요?



매거진의 이전글 토끼처럼 살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